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27

등록 2004.01.05 09:28수정 2004.01.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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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국을 떠난 지 열흘째였다. 일행들은 마침내 울음산(돈항의 명사산)으로 불리는 그 사막 앞에 당도했다. 점심 때쯤이었다. 날씨도 아주 좋아 하늘은 손을 대면 베일 듯이 투명했고 해도 쨍쨍해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그 모랫길도 단숨에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래와 바람의 길이라더니 오늘은 바람도 쉬는가.'
일행들은 멈춰 서서 사막을 바라보며 모두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랬다. 오늘은 바람도 없었다.

이윽고 제후의 낙타가 대열 앞으로 나섰다. 사막의 왕은 단연 낙타이듯이 이제부터는 말들도 그 뒤를 따라야 했다. 군사들도 얼른 재정비를 했다. 은 장수와 군사 스무 명의 말이 먼저 낙타 뒤를 따랐고 그 중간에 마차가 들어섰으며 나머지 군사들은 그 뒤를 이었다. 에인과 선인들은 마지막 차례였다.

제후는 앞만 보고 나아갔다. 낙타는 그 태생적 천성으로 서둘지 않으면서도 곧장 잘 걸었고 말들도 순순히 그 보조를 맞추어주었다. 말이 한가하게 걸을 때면 승마 자에겐 관망이나 사색의 여유가 주어진다. 에인도 그랬다. 그는 우선 사막의 지형에 적이 놀라고 있었다.

그곳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사막이 아니었다. 평편한 모래바닥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는 것은 크고 작은 모래 산이었다.

한참 걷다보면 언덕 같은 모래 산이 불쑥 앞을 가로막는가 하면 그 자락을 에돌아가면 어느새 또 큰 산이 서 있곤 했다. 그런데다 그 산들은 저마다 칼날 같은 예리한 능선들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 산 허리가 쉼 없이 모래를 흘려보냈다. 스스로 몸을 허물어 자꾸만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이 어쩌면 자리를 옮기려고 그러는가, 싶기도 했다.


'산은 절대로 자리를 옮길 수 없다고 했는데 모래산은 저렇게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인가….'
에인이 신기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것들이라 그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었다.

그때였다. 주변의 산에서 모래더미가 좌르르 흘러내리면서 여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묘한 소리를 내질렀다. 울음소리 같았다. 흑흑도 아니고 엉엉도 아닌 희한한 울음의 합창이었다.


'자리를 옮기는 데다 울기까지 한다?'
그곳은 예부터 울음 산으로 불리는 사막이었다. 그도 그렇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상상했던 울음소리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한겨울 나무를 척척 갈기면서 불어대는 바람소리쯤으로 여겼다. 그런 소리라면 사람의 마음을 멀리로 밀어낸다. 설령 울음소리처럼 들릴지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진다.

한데도 여기는 바람도 없는데 저희들끼리 울어댔고 그 울음소리 또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에인은 그만 그 울음소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상한 풍경과 야릇한 소리들이 그를 휘어잡은 것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렸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망연히 서서 한참이나 모래 비탈을 올려다보았다. 모래들은 계속해서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리고 울어댔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건만 스스로 흘러내리면서 쉬지 않고 울고 또 울었다. 그는 그 울음소리에 이끌려 가파른 비탈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잊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행들에게 잠깐 멈추어달라는 지시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그렇게 뛰어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사방에 펼쳐진 모래 산들이 보였다. 그저 산들만이 아니었다. 모래산 자락마다엔 형언할 수 없는 무늬들이 깔려 있었다. 태양과 하늘이 빚어낸 절묘한 채색이었다.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별안간 마음이 시렸다.

세상엔 불가사의함이 아주 많다고 해도 하늘과 대지의 것이 달랐다. 하늘에서 느낀 것은 황홀과 경이였으나 대지에서는 슬픔이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다른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슬픔이 마음이 아리도록 저며 드는 것이었다.

다시 모래 산들이 울었다. 흐흐 휘휘 으으, 하고 크게 울어댔다.
'무슨 뜻인가? 왜 울기만 하는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래 산들이 하늘을 이고 있었다.
'하늘이 무거워서 그러는가?'

그러자 하늘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모래 산은 더 이상 하늘을 이고 있지 않았음에도 쉼 없이 흘러내리며 울기만 했다.
'말하라, 무슨 사연으로 우는지. 보건데 너희들은 태고적부터 이렇게 울어온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냐, 사연이 뭐냐.'

그때였다. 시야의 모든 것이 자주색으로 휘덮였다. 그런가 했더니 다시금 그 색채가 걷혀갔다. 그리고 모래언덕도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좀 전에 본 그대로였다. 그러나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언덕 아래에서였다. 언덕의 허리, 그 골마다에는 빛과 그림자들이 서로 엉켜들면서 심하게 얼룩이 지고 있었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뚝 멈추어졌다.
'그래, 이제 그만 울어라.'

에인이 안심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그 산들은 아직도 에인을 놓아줄 마음이 없는가 보았다. 모래들은 요술을 부리면서 또다시 에인의 시선을 붙잡아버렸다.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여태 아래로 흘러내리던 모래들이 무슨 조화인지 이제는 거꾸로 치올라오는 것이었다.

'대체 이건 또 무슨 변덕인가.'
그 모래들은 이제 울지 않았다. 마치 내가 언제 울었더냐는 듯이 올라오면서 춤을 추었다. 저마다 팔과 다리를 벌리고 빙글빙글 돌듯이 그렇게 춤을 추면서 모래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시작된 것이다. 에인은 알지 못했지만 바람이 불면 여태 흘러내렸던 모래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이 사막의 운행법칙이었다. 바람이 그렇게 제자리로 올려붙이는 것이었다. 낮 동안 모래들은 자기 몸이 떨어져나가는 것이 애달파서 울어대다가도 제자리로 돌아갈 때는 또 그처럼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에인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묘기를 부려 파도를 일으키는가 하면 모래들은 파도를 타고 둥둥 뛰다가 갑자기 출렁거리며 강열한 춤을 추기도 했다. 모래들은 정말로 열정적인 춤을 추었다. 세상의 어떤 생물체도 그토록 높이 뛰어오르면서 춤을 출 수는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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