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길이모 또 들리시게"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28>"그 집"

등록 2004.01.05 13:41수정 2004.01.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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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주 진티 마을에 있는 그 집

경주 진티 마을에 있는 그 집 ⓒ 이종찬

"감포 쪽으로 간다고? 그러면 어차피 불국사 가는 길로 가야 할 거 아냐?"
"구룡포하고 호미곶 쪽으로 갈라카모 그 길이 훨씬 더 빠릅니더."
"그으래. 그러면 마침 잘 되었네. 기왕 가는 길에 그 집에 잠시 들렀다 가자. 근데 그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전국 곳곳에 막걸리 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구먼."


갑신년 1월 3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나는 구룡포와 호미곶 가는 길에 진티마을에 초라하게 엎드려 있는 그 집을 찾았다. 그 집? 그 집은 내가 지지난 해 여름부터 지난 해 여름까지 불국사 아래 머무르고 있을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막걸리를 마시러 가던 3평 남짓한 선술집이었다.

그 집 입구에는 '마을슈퍼'라는 조그만 간판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마을슈퍼'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저 누구와 약속을 할 때에도 '그 집' 또는 '그 할배집'으로 오라고 했다. 또한 마을 사람들도 누구나 그렇게 불렀다. 근데 언제부터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촌에서 어르신들 함자로 함부로 부르는 거 봤능교?"
"택호 아이가, 택호!"

그랬다. 그 집은 택호가 붙을 만큼 진티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돌박마을 사람들까지도 심심하면 그 집에 자주 들렀다. 또한 팔순에 가까운 할아버지께서는 그때마다 "와, 올(오늘)은 초저녁부터 돌박에 있는 막걸리가 다 떨어지뿟는가베" 라며 으레 막걸리 한 병과 신 김치 몇 조각을 꺼내 주셨다.

"김산댁 아들 안 있능교? 그기 또 사고로 치뿟니더."
"와? 또 술 퍼묵고 불국사 앞에 가서 경비로 취직시켜도라꼬 드러누워뿟나?"
"그 정도로 했으모 양반이구로예. 요번에는 오토바이로 타고 가다가 아예 전봇대로 박아뿟다 카니더. 이야기로 들어보이(들어보니까) 얼쭈(거의) 빙신(병신)이 다 되뿟다 카니더."


그 집에 가면 진티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소식을 한꺼번에 들을 수가 있었다. 누구네 집에서 초상이 났다느니, 누구네 딸이 어디로 시집을 간다느니, 누구네 아들이 어디에 취직을 했다느니, 하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집이 그 집이었다.

늘상 오전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자식들이 넣어준 꼬깃꼬깃한 돈 천 원을 내고 막걸리를 마셨고, 오후가 되면 그 노인의 자식들이 찾아와 역시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그 집은 말 그대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 집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한숨을 달래주는 막거리를 비롯한 주류뿐만 아니라 콩나물, 두부, 풋고추, 감자, 양파 같은 찬거리도 골고루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4일마다 한번씩 열리는 불국 장날을 빼고는 모두 그 집에 가서 부족한 먹거리를 해결했다.

a 진티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 집"에 앉아

진티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 집"에 앉아 ⓒ 이종찬

"할아버지! 할아버지 계십니까?"
"아아니, 이게 누구야?"
"요즈음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우째 이곳까지 그 귀한 발걸음을 다 하고."
"지나는 길에 새해 인사차 잠시 들렀습니다. 우선 막걸리부터 몇 병 주이소. 그리고 같이 한 잔 하입시더."

가게에 달린 쪽방에서 TV를 보다가 황급히 나와 내 손을 꼬옥 잡는 내 아버지 같은 할아버지. "한번 떠나고 나모 좀처럼 발길을 하기가 어려운 긴데" 하시면서 막걸리를 주전자에 부어주시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아마도 지난 해 늑막염을 심하게 앓은 탓이리라.

"아이고! 이기 누고? 그렇찮아도 새해라서 디기(많이) 바뿔 낀데 우째 우리 집에 다 들렀능교?"
"선물을 하나 준비하려고 하다가 그냥 맨 손으로 왔습니다. 오랜만에 어르신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먹는 게 더 좋겠다는 짧은 생각에서."
"선물은 머슨? 고마 이래 찾아주는 거만 해도 울매나 고마운 일인데…."

그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이곳에 1년 남짓 머무르고 있을 때 마치 부모님처럼 모신 분이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나이도 지지난 해 시월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보다 두 살 위였고, 외모도 내 아버지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머무를 때 할아버지에게서 경주의 문화유산에 대해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정보도 많이 듣게 되었다.

"오늘따라 어떠기(어떻게) 막걸리로 많이 찾든지…. 그라고 요새는 마을 사람들이 자네에게 주려고 숨겨놓은 막걸리가 있다카는 거로 알아가꼬, 막걸리만 떨어지모 그 막걸리 내놓으라꼬 난리로 친다카이."
"그 막걸리는 미리 사 놓은 거라고 하시지요?"
"그래카모 더 난리로 피운다 아이가. 오데 마을 사람들 돈은 똥 묻은 돈이가, 캄시로."

당시 나는 저녁 8시 30분이 다가오면 반드시 그 집에 들렀다. 그러면 으레 할아버지께서 비밀스레 숨겨둔 막걸리를 꺼내시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또한 늘 내 곁에 앉아 밤 깊도록 할아버지의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셨다. 그리고 어떤 때 술에 취한 사람이 내게 시비를 걸면 혼을 내서 쫓아내기도 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저녁 8시 30분 쯤이 되어 그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몹시 서운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라고 묻자 할아버지께서는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자꾸 흔들었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으응…. 그기 아이고, 아까 내가 밭에 잠시 나간 사이에 누가 자네 막걸리로 훔쳐 묵어뿟다 아이가. 이 일로 우짜모 좋것노?"
"아니, 그러면 막걸리 때문에 그러고 계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소주 한 병 먹고 가겠습니다."

그랬다. 그 할아버지의 내게 대한 마음 씀씀이는 그렇게 깊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그 집에 단 한번도 먹걸리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아니, 내가 가끔 급한 일로 그 집에 가지 못해 할아버지께서 숨겨둔 막걸리를 마시지 못한 날이 더 많아 늘 죄송스럽기만 했다.

"할아버지! 여기 얼마지요?"
"아니, 됐네. 이렇게 찾아온 것만 해도 고마워 죽겠는데 술값은 무슨."
"아니, 그래도 받으셔야 합니다."

손사레를 치며 끝내 술값을 받지 않으려던 그 집 할아버지. 하지만 "그렇게 하시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라고 강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할 수 없다는 듯이 술값을 받던 그 집 할아버지. 그리고 그렇게 보내면 끝내 서운해서 못견디겠다는 듯 다시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내 술잔에 따라 주시던 그 집 할아버지.

"할아버지! 또 올게요. 아무쪼록 새해에는 더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힘이 조금 드시더라도 반드시 하루에 한번씩은 토함산 약수터에 올라가십시오."
"고맙네. 지나가는 길이모 또 들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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