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71

꿈틀거리는 음모 (9)

등록 2004.01.05 13:46수정 2004.01.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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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연장자인 조경지는 무슨 일에서든 먼저 우려를 표하곤 하였다. 만사불여 튼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고 강조하곤 하였던 것이다.

하여 뚝딱 해치우면 될 일도 늘 시간이 걸리게 하였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중간에서 끊을 수는 없다.


성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구수회의(鳩首會議)라 불리는 이 회합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만큼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상대의 말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반론을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무슨 말이든 끝까지 들어봐야 진의를 파악할 수 있기에 생긴 규칙이다.

그런데 조경지는 늘 말이 길었다. 그래서 오늘은 또 얼마나 길고, 짜증스러울까 싶은 생각에 인상을 찌푸린 것이다.

"호법의 말씀은 잘 들었소이다. 허나 그리 우려할 만한 일은 못 된다고 생각하오이다. 어차피 공격을 개시하면 알게 될 일을 조금 일찍 아는 것뿐이기 때문이외다. 선무곡의 태도 또한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되지 않소이다."
"그게 왜 큰일이 아니라는 것이오?"

조경지의 말이 끝나자 인의수사가 말을 받았고, 이어서 고파월이 반론을 제기하자 오각수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을 아시오?"
"그야 물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지 않소? 비슷한 말로 부염기한(附炎棄寒)이라는 말도 있다 하더이다."

"부염기한이라 함은 권세가나 재력가에 붙어서 따라 다니다가 그들이 쇠하면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 아니오? 흠! 내가 알기론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말인 것으로 아는데…"
"핫핫! 역시…. 원주의 유식함을 누가 따라가겠소이까? 맞소이다. 감탄고토나 부염기한 모두 명나라 왕동궤(王同軌)가 지은 이담(耳談)에 해동 고유의 속담을 증보한 이담속찬이라는 서책에 있는 말이외다."


틈만 주어지면 학식을 뽐내려하는 오각수가 못 마땅했던 고파월이었다. 그렇기에 말 속에 뼈(言中有骨)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채지 못한 오각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크크크, 그렇다면 그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시오?"
"흐음! 그것까지는…"
"크크!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라는 사람이 지었소이다."
"으음, 그렇소?"

"핫핫! 이거 말이 잠시 삼천포로 빠졌소이다. 방금 전, 본 원주가 감탄고토라는 말을 꺼낸 이유를 짐작하시겠소이까?"
"글쎄…?"
"알고 계신지 모르겠소만 본성에서 주석교를 공격하는 동안 선무곡 사람 가운데 본성에 협조적이지 않은 자들을 솎아내려는 계획이 있었소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선무곡은 같은 정파인데 어찌…? 그렇게 하면 선무곡 내에서의 반발이…?"
"핫핫! 그깟 놈들의 반발이 무서우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소이까? 아마 아무 일도 못하였을 것이외다."
"그럼… 어떻게…?"

"핫핫!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 본성에서 주석교 공격을 시작하면 틀림없이 반발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오. 그러면 적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제거할 생각이었소이다."
"무어라…? 어떻게 그런…?"

"그렇게 하면 선무곡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협조적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했소. 헌데 오늘 생각을 바꿨소이다."
"……?"

"금대준이나 조잡재 등 믿을 만하다 생각되던 자들이 주석교의 간세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오. 하여 이번 공격에 선무곡까지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는 바이외다."

"포함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이참에 골치 아픈 소리나 지껄이는 놈들을 모조리 제거하자는 것이외다. 그리고 나서 선무곡과 주석교를 합친 뒤 본성의 쉰한 번째 분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외다."
"……!"

광오하다 해도 좋을 표정을 짓고 있는 오각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기 달랐다. 철룡화존과 인의수사, 그리고 나이수와 철기린은 쾌도난마식으로 일을 결정하는 오각수의 말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밝은 표정이었고, 무비수사는 무표정한 반면, 무영혈편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하면 마도의 지존이라 부르짖는 일월교와 화존궁의 목 아래에 비수를 디미는 형국이 되오이다. 아울러 뒷구멍으로 장난질을 치는 왜문을 언제든 징계할 수 있게도 되고…"

인의수사는 오각수의 기발한 생각에 찬성의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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