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목사안수례를 기다리며느릿느릿 박철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목사 가운을 입어야 하는데, 준비하지 못해 남양 수화교회 현재호 선배의 가운을 빌려 입었다. 내 머리에 손을 얹어주신 분은 당시 KNCC 김동완 목사님과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 강경제일교회 원형수 목사님 세 분이셨다. 세 분 모두 내가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들이셨다. 나를 위해 강릉까지 와주셨다.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앞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손수건이 없어서 연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단상에 무릎을 꿇었고 목사 안수례는 순식간에 끝났다.
목사 안수식이 끝나고 연회장(강릉중앙교회)앞에서 세 분 목사님과 어머니, 아내와 함께 기념사진을 한 차례 찍었다. 그리고 내가 활동하던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소속 목사들과 함께 ‘타는 목마름으로’,‘농민가’ 등 몇 곡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날 고속버스를 타고 남양으로 돌아왔다. 목사 안수를 받고 첫 번 맞은 주일이 부활절이었다. 온 산천 경계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었다. 토요일 나는 앞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한 다발 꺾어와 빈 고추장 항아리에 담아 교회 제단에 놓았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 축하잔치가 교회 사택에서 있었다. 교인들은 내가 전도사 딱지를 떼고 목사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고무된 분위기였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오셨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택 마당에서 풍물을 하며 놀았다. 교인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두어 시간 신명난 춤판이 벌어졌다.
"나같이 불쌍한 사람 구제해 주이소"
그 잔치마당에서 꽹과리를 치며 가장 흥을 돋운 분은 고향이 경북 영주인 김 아무개라는 아저씨였다. 교회를 이따금 나오시는 분이었다. 경상북도 영주가 고향이신 분이 일찍 고향을 떠나 타관으로 떠돌다 남양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의지가지가 없는 분이었다. 부인하고 애들이 셋이 있었다. 성격이 호탕하고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인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