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초임교사들의 지침서

초임교사에게 권하는 한권의 책(1) 하임 G 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

등록 2004.02.20 10:54수정 2004.02.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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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너의 첫 발령 소식을 들었다. 네가 임용고사에 최종 합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과 실감이 느껴지더구나. 첫 부임지가 남원 어디 중학교라지? 이제 불과 며칠 후면 어엿한 교사의 신분으로 아이들 앞에 서겠구나. 이모부가 아닌 너의 선배교사로서 교직에 들어온 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하마.

이모는 네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잡게 되었다고 무척 대견해 하더구나. 그리고 대학생 자녀를 둔 처지여서 그랬는지 너의 빠른 사회진출이 부럽기도 한 모양이더라. 그런 심정이야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너를 부러워하는 이모의 말투 어딘가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뜻도 배어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한 마디 해주었단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교단에 서게 되면 그때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일 수도 있어.”

그러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랑하는 조카에게 덕담은 못해줄 망정 무슨 악담이냐는 듯이 이모가 내게 눈을 확 흘기더라. 아니 어쩌면 너는 영특한 아이(아니, 이제 아이가 아니구나!)이니 내가 한 말의 뜻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지. 어쩌면 교생실습 과정에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서 그런 불길한 징후를 예감했을 수도 있을 테고.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일종의 교육심리학 저서인 하임 G 기너트의 <교사와 학생 사이>를 읽었다.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구구절절 공감하는 바가 컸는데, 그 중에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게 만든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나는 500명의 교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사범대학에 다닐 때, “아이들은 여러분들을 자주 짜증나게 하고, 괴롭히고, 화나게 할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이렇게 하면 됩니다”하고 가르쳐준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런 강의를 들어본 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89쪽)

너의 경우는 어땠는지 묻고 싶구나. 만약 너도 그런 강의를 들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그리고 네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안된 말이지만 너는 준비된 교사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교사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몇 해 전, 모 교육전문지가 주선해 교사들 앞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해 첫 발령을 받고 한 해 동안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뒤에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연수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한 여교사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 다닐 때 왜 이런 강의를 해주지 않았는지 그것이 너무 억울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잖아요. 우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었어요. 주어진 길 외에는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은 사람들이 대개 교사가 되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요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선배 교사들이 귀띔이라도 해줬거나 책이라도 몇 권 소개했더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깨지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내가 알고 너도 주어진 길에서 한 번도 이탈해본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범생일수록 다양한 성향을 지닌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남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식이지. 그래서 이런 끔찍한 고백을 하는 경우도 인생을 비교적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일 거야.

‘교사 생활한지 1년이 되었는데, 지금 결론은 이 직업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사랑과 환상에 가득 젖어 있었어요. 이제 환상은 증발하고, 사랑은 가버렸어요. 교직은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과정, 일수 찍듯 날마다 생명을 거두어 가는 과정이에요.’(17쪽)

교사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면 자기중심적인 교사와 학생 중심적인 교사로 나눌 수 있을 거야. 가령, 학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에 대하여 교사의 권위를 내세워 학생에게 사과를 받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교사라면 그는 자기중심적인 교사라고 말할 수 있겠지. 반면에 학생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그의 잘못된 행동을 그 자신을 위한 교육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교사라면 학생 중심적인 교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자기중심적인 교사의 관심은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니까. 교사로서 성공한 자신의 모습 말이지. 아이들은 단지 그의 성공을 위한 배경의 그림이나 발판에 불과한 거지. 물론 그것을 나무랄 수는 없어. 결과적으로는 교사로서 할 일은 하고 있는 셈이니까. 다만, 교사로서 학생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는 어렵겠지.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야. 아니, 혹시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학생들 편에서는 학생 중심적인 교사가 당연히 편하고 바람직하겠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자기중심적인 것이 좀 더 편하고 덜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 않겠느냐고. 정말 그럴까?

앞에서 말한 <교사와 학생 사이> 책에는 ‘제일 좋은 방법’과 ‘아주 나쁜 상황’이 나란히 소개되고 있는데, 둘을 비교해보면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그 결론이 어떤 것인지 네가 한 번 맞춰 볼래?

<상황 A>
체육시간이 끝났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농구 경기를 그만두라고 했다. 조지프가 항의하듯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나보다 더 여러 번 공을 만져봤는데, 늘 나만 손해예요.”
교사가 말했다.
“기분 전환하고 싶으면 세 번만 슛을 더 던져봐. 기다려 줄게.”
조지프는 귀를 의심했다. 재빨리 던진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스켓 안으로 들어가자, 교사에게 다시 공을 갖다 주었다. 주지프는 즐겁고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이 사건에서 볼만한 점은 교사의 태도이다. 그는 유연했고, 아이에게 호의적이었다. 엄격한 규칙보다도 아이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41쪽)

<상황 B>
“자기 자리에 앉아.”
교사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자아이 한 명은 여전히 복도에 서 있었다. 교사는 그 아이에게 몸을 돌려 화를 냈다.
“앨프리드! 너 뭘 기다리는 거야. 특별히 모셔주기라도 바라니? 왜 꼭 맨 마지막에 자리에 앉아야 하니? 왜 한없이 뜸을 들여서 자리에 앉는 거야? 본래 그렇게 느린 거냐, 아니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 거냐?”
앨프리드는 질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교사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앨프리드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앨프리드는 시보다는 산문적인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교사가 죽은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며, 장례식 준비에 홀딱 빠져 있었다.

아이에게 가시 돋친 꾸중을 하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미움과 복수심만 자극하게 될 뿐이다.(58쪽)


두 상황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상황 A>에서 교사의 초점은 학생에게 맞추어져 있지. 그래서 일이 쉽게 풀린 거고. 반면에 <상황 B>에서는 학생의 존재나 상황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학생에 대한 미움의 감정만이 깊게 드러나 있어.

이런 경우, 교사가 사용한 언어는 학생을 바르게 지도하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자기감정을 해소하고 학생에게 모욕감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

그는 교사로서 교육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제자에게 감정적 보복을 한 셈이지. 그것이 교사로서 할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교사와 학생의 인간관계가 깨어진다는 거야. 물론 그 깨어진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비단 학생만이 아닐 거야. 자기가 던진 돌에 다시 얻어맞게 되는 부메랑의 이치가 통하는 곳이 바로 교직사회니까. 책을 좀 더 볼까?

한 유명한 사진 작가가 친구에게 가난한 인디언 마을의 고난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자들은 임신 중이고, 아이들은 병들었고, 남자들은 일하러 밖에 나가 있고, 마을은 폐허이고, 땅은 초토화되어 있었어.”
“넌 뭘 했는데?”
“그들의 모습을 컬러 사진에 담았어.”
사진작가는 대답했다.

이 사진작가와는 달리, 교사들은 역할 뒤로 숨을 수가 없다.(57쪽)


학급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집안 환경이 어렵거나, 과거의 그늘진 삶으로 인해 심성이 뒤틀려 있거나,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잘하거나, 어떤 일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거나 하는 그런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 교사에게 그들은 감상이나 취재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거야.

그들을 껴안고 사랑하든, 무관심으로 대하든 그것은 교사 개인의 선택이지만, 어느 편을 선택하든 그 역할 뒤로 숨을 수는 없다는 거야. 가령, 한 아이에게 무관심하게 되면 그 무관심으로 모든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거지. 그 무관심으로 인해 발생되는 후속의 사건을 교사자신이 감당해야만 하니까.

내가 보기에 너도 학생 중심적인 교사가 되기보다는 아직은 자기중심적인 교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해하지는 말거라. 그것은 너의 인격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한계 때문이야. 입시위주 교육이 갖는 가장 큰 폐해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배출한다는 것이니까.

생각해 보거라. 지식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가치와 능력을 다 파묻고 오직 점수만을 위한 공부를 10년 가까이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서도 교직을 발을 들이기 위해 고시학원에서 수년 동안 임용고시 준비를 해온 사람들이 자기 행복추구에만 몰입하여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지식이 지식다워져야 하고 교사가 교사다워져야 한다. 네가 월급쟁이 이상의 교사다운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아이들을 성적제조기가 아닌 자기 행복추구권이 있는 고유한 생명으로 대접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그들을 자기 삶의 주체로 세워줄 수 있는 사랑과 대화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분노를 슬기롭게 표현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한다. 늘 책을 가까이 하면 길을 보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분노를 슬기롭게 표현하는 방법 A>
교실이 어질러진 것을 보고 4학년 담당 교사인 헌트는 이렇게 말했다.
“책들이 교실 바닥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도 불쾌하고 화가 안 나겠니? 책을 바닥에 떨어뜨려 놓으면 안 되잖아. 주워서 책상에 올려놔.”

그는 아이들에게 모욕을 주는 표현을 용의주도하게 피해갔다.(“지저분한 녀석들 같으니. 교실을 이렇게 마구 어질러놓다니, 너희들처럼 무책임한 녀석들도 없을 거야.”)(91쪽)

<분노를 슬기롭게 표현하는 방법 B>
남자아이 둘이 빵으로 작은 알갱이를 만들어 서로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교실은 엉망이 되었다. 그 광경을 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빵을 이렇게 작은 알갱이로 만들다니. 이걸 보고도 화가 안 나겠니? 빵을 던지면 어떡하니? 빨리 교실을 청소해야겠구나.”

두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교실을 청소했다. 이 교사는 꾸짖고 모욕을 주지 않으려고 사려 깊게 행동했다.
“이 지저분한 녀석들아! 지금 당장 치워. 너희 두 녀석은 돼지우리에 살기도 아까워. 너희들 말썽에 넌덜머리가 나.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야겠어. 학교로 오시라고 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92쪽)


이번 편지는 여기까지다. 다음에 또 쓰마.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교사에게만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부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길 바라며, 너의 아름다운 시작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초임발령을 받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사화 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사진작가에 대한 폄하의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 않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초임발령을 받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사화 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사진작가에 대한 폄하의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아시겠지만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 않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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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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