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산대놀이

땡추들

등록 2004.02.26 17:46수정 2004.02.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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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말로만 금강산, 금강산 들어 나 봤지 실제 보니 눈이 뒤집어지는 구나!"

한양 밖으로 나와 본 지가 꽤 오래간만인 포교 장성일은 두 명의 일행과 더불어 금강산의 이모조모를 보여 연이어 탄성을 지르기에 바빴다.


"그러길래 뭐라고 했소. 그 자를 잡는 건 둘째 치고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 일렀지 않소. 금강산의 절경이야말로 하늘이 조선 땅에 내린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오."

허여멀쑥한 사내의 말에 장포교는 고개를 끄떡이며 주변 풍경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금강산의 풍경에 대해 이모조모를 논하는 둘과는 달리 눈 밑에 사마귀가 있는 사내만은 별 다른 말이 없이 갈림길이 나오거나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가야 할 곳만을 주의 깊게 알려 주곤 했다.

"답답한 포도청을 나오니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진작 이러지 못 했을고!"
"어찌되었건 건봉사로 가기 전에 더 기막힌 풍경을 보게 될 것이옵니다."

허여멀쑥한 사내는 씩 웃으며 말했고 장포교는 이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연실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허여멀쑥한 사내는 헛기침으로 목을 튼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비야, 나비야 청산가자! 초목이 우거진 푸른 산으로 가자, 범나비야 범나비야 너도 같이 가자꾸나, 가다가 해 저물거든 꽃에 들어가서 자고 가자! 만약 꽃이 여기서 잘 수 없다고 푸대접하거든 잎에서 자고 가자!"


"얼쑤! 노래 가락 한번 좋구나!"

장포교는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길을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길 안내로 앞서가던 사마귀 사내가 갈림길에서 서 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허! 여기서 어딘지 모르겠소!"

사마귀 사내는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자리에 털썩 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때 나무 등걸 뒤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디까지 가시길래 그러시오?"
"건봉사로 가오만......"

나무등걸 뒤에 앉아 있던 사내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무척이나 키가 작은 그 사내는 짚고 있던 지팡이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으로 가면 되오만 나도 마침 그 쪽으로 가는 길이니 동행하면 어떻겠소?"

사마귀 사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장포교가 얼른 나서서 말했다.

"흥은 더하면 커지는 법이니 어서 갑시다. 금강산 유람이 이리 즐거운 줄 어찌 알았겠소?"

키 작은 사내는 잔잔히 웃으며 바랑을 챙긴 후 장포교 일행을 따랐다.

"그런데 건봉사는 왜 가시오?"

장포교는 느긋이 웃으며 키 작은 사내의 물음에 답했다.

"절간에서 만나는 이들과 두부전이나 해먹을까 해서 콩 한말을 싸 가지고 가는 길이외다."
"허허...... 그거 참 좋겠수다."

새로운 일행과 함께 한참을 가던 장포교 일행은 도중에 길 중간에 앉아 용변을 보던 땡추와 마주쳤다.

"어허...... 이거 가시는 길에 실례가 많았소이다. 나무아미타불......"

땡추는 별 미안한 기색도 없이 태연히 풀로 뒤처리를 한 후 바지춤을 올린 채 길을 떠나려 했다.

"이보쇼 스님!"
"왜 그러시오?"

느닷없이 키 작은 사내가 몹시 화난 어투로 앞으로 나섰다.

"이 길이 스님 혼자 다니는 길이오? 똥을 싸려면 다른 곳도 많은 데 하필이면 길 한가운데서 싸질러 댈 게 뭐요?"
"거 참 죄송하게 됐소다...... 내 본디 속이 안 좋아 느닷없이 용변을 보게 된 터라 이러했으니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땡추의 말에도 불구하고 키 작은 사내는 격한 말로 그를 계속 몰아 붙였다.

"구린내가 진득한 게 고기라도 쳐 먹고 싸질러 놓은 모양이구만! 그래놓고 자비를 입에 담다니, 부처가 개고기를 먹고도 자비를 입에 담았다더냐?"

아무리 조선사회에서 천대받는 중이라지만 키 작은 사내의 말은 너무나 지나쳤기에 장포교는 이를 만류하려 했으나 그에 앞서 땡추의 대꾸가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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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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