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9

땡추들

등록 2004.03.05 17:43수정 2004.03.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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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채 묵상에만 열중하고 있는 혜천스님을 옴 땡추는 곁 눈길로 흘겨보며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형님, 무슨 얘기오? 궁금해서 오줌이 질금질금 나오는구려."


혹 땡추가 냉큼 끼어 들자 옴 땡추는 손가락을 펴 입술에 대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고 장이고 묵혀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니 재촉하지 말거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떤 도둑놈에 대한 것이다."

옴 땡추는 잠시 또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어나갔다.

"그 도둑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번 찍은 집은 결코 실패를 한 경우가 없었다. 게다가 시시한 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조건 부잣집만 노렸지."

"허, 그럼 이야기로만 듣던 의적(義賊)이 아니오?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콧수염 땡추의 말에 옴 땡추는 비웃음을 담아 크게 웃어 젖혔다. 묵상을 하던 혜천스님마저도 잠깐이나마 실눈을 뜰 정도였다.

"의적은 무슨 놈의 의적! 그 놈은 도둑놈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단다. 부잣집을 털어야 건져갈 건더기가 많은 거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야. 그 놈은 훔쳐간 재물을 모아서 재 배때지 불리는 데만 사용했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돈놀이까지 한 모양이더라고."


"허! 그렇다면 악명 높은 도둑놈일텐데 그 이름이 무엇이오?"

궁금하다는 표정을 허풍스럽게 지으며 바라보는 콧수염 땡추를 모른 체 하며 옴 땡추는 느릿하게 담배 한대를 당겨 물고서는 혜천스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 이름은 알 길이 없고 사람들이 달 그림자라 그러더군."

그 순간 혜천스님의 손에서 염주가 털썩 하고 떨어졌다. 옴 땡추는 여전히 혜천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달 그림자가 손을 턴 뒤 우리처럼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혜천스님은 다시 염주를 주워들고 묵상에 잠겼지만 그리 안정된 표정은 아니었다. 옴 땡추는 혜천스님을 노려보았다.

"이보쇼 위선 떠는 땡중! 그러지 말고 우리와 함께 갑시다!"

옴 땡추의 말에 혜천스님은 그제야 좌선을 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원하는 것? 그야 그대의 신묘(神妙)하기 그지없는 도둑질하는 재주지!"

"다른 것을 내어놓을 수는 있어도 그런 일은 못하겠소이다. 쌓은 업보를 풀기에도 내 일생이 모자랄 지경이오."

그 순간 혹 땡추의 손에서 술잔이 날아갔고 그것은 혜천스님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야 이놈아! 어디서 상것이 헛소리야! 같은 승복을 입고 있다고 맞먹겠다는 거야!"

술잔에 맞는 순간 찢어졌는지 혜천스님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옴 땡추로서는 그리 바라지 않은 일이었기에 혹 땡추를 꾸짖으려는 찰나 멀리서 맹렬히 달려오는 스님이 있었다. 바로 끔적이었다.

"네 이놈들! 이게 무슨 행패냐!"

혹 땡추가 그 말에 달아올랐는지 인상을 쓰며 일어서서 품속을 뒤져 짧은 자루의 쇠도리깨를 꺼내었다.

"형님 말리지 마시오. 저 늙은 땡중은 천천히 처리하고 젊은 땡중부터 때려 잡읍시다."

"이 놈아! 이러지 말거라!"

술에 취하면 말 그대로 누구도 못 말리는 개고기가 되곤 하는 혹 땡추였기에 옴 땡추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혹 땡추는 그대로 끔적이에게 쇠도리깨를 휘두르며 마주 달려나갔다. 쇠도리깨가 허공을 가르며 끔적이의 머리를 박살내는가 싶더니 혹 땡추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끔적이가 달려 들어오는 힘을 역이용해 슬쩍 옆으로 피하며 밀어 메친 것이었다. 게다가 곧이어 끔적이는 누워버린 혹 땡추의 목덜미를 밟아 실신상태에 이르게 했다. 아우가 당하는 모양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옴 땡추와 콧수염 땡추는 몽둥이를 들고서 용수철에 퉁기듯 뛰어가 끔적이에게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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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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