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물건 "뚝딱" '성냥간' 대장장이의 먼길

배창호 감독의 '길' 개봉을 기다리며 대장장이가 한 해 두번 산길 넘던 그 시절을 추억함

등록 2004.03.08 06:26수정 2004.03.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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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돌 위 달궈진 쇳덩이로 무얼 만들까. 원하는 것 있으면 다 부탁하세요.
머릿돌 위 달궈진 쇳덩이로 무얼 만들까. 원하는 것 있으면 다 부탁하세요.김규환

내가 아는 '성냥'은 두 가지가 있다. 흔히 불을 붙이는 것과 쇠를 불에 불리어 재생하거나 연장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성냥 하는 곳을 일컬어 '성냥간'이라고 하는데 '대장간'과 같은 말로 쓰였다.


대장간은 풀무를 놓고 시우쇠(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를 다루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단철장(鍛鐵場) 또는 야장간(冶匠間), 풀무간으로 지방마다 다르게 쓰였다.

요즘 철물점이 동네마다 있는 것처럼 예전엔 성냥간도 30리에 하나는 있을 정도로 농경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낫, 칼, 호미, 괭이, 돌쩌귀, 풍경 등 작은 물건에서부터 쟁기에 들어가는 보습과 바닥쇠 그리고 흙을 까뒤집는 볏, 도끼, 꺾쇠, 톱 따위의 일상용품과 농기구를 자유자재로 쓰임새에 따라 척척 만들어냈다.

주물(鑄物)로 처리하지 않는 쇠붙이, 땜질 방식이 아닌 것은 웬만하면 이 성냥간에서 필요한 도구를 달궈 집게로 잡고 망치로 내리쳐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두들기다가 담금질과 불림, 풀림을 거듭한 끝에 푸르스름하면서도 까무잡잡하게 만들어 자루까지 끼워준다.

대장장이가 성냥간에 정착을 한다는 것은 쉽지도 않고 흘러간 시간상으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착을 꿈꿀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뜨거나 시대의 조류에 서서히 밀려나는 게 보통이었다. 대량생산 체계와는 맞지 않았던 까닭에 이젠 몇 군데 남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곳이나 그 일을 했던 일꾼도 몇 되지 않는다.

민속촌이나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우리의 관심사 밖인 존재다. 또한 중국산 헐값 연장 수입 이전과 기계화가 덜 진전된 80년대 초반까지가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하며 솜씨를 뽐냈다.

대장간에 몇 안 되는 살림살이를 장만하여 그래도 한 곳에 정착을 하려면 자릿세를 톡톡히 내야 하는 터라 날이면 날마다 길을 찾아 떠돌이 행세를 해야하는 대장장이의 삶은 어찌 보면 떠돌이 신세다.


그 시절의 대장간은 야외에 임시로 설치했습니다.
그 시절의 대장간은 야외에 임시로 설치했습니다.김규환

큰길 신작로가 뻥뻥 뚫리기 전에는 산길, 논두렁, 밭둑 길과 내를 건너고 산을 넘어 지게에 연장을 챙겨서는 외딴 마을에 잠시 머무르는 게 그들의 삶이었다. 오일장에 한번 진입하려면 온갖 수모를 당할 각오를 해야했던 부지기수의 대장장이는 아예 얼씬거리려 하지 않았다. 장 마당이 먼 마을마다 돌며 틈새시장을 전전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애환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우리 마을에도 어김없이 양은 냄비, 백철솥을 발갛게 녹여 두툼하게 왕겨로 감싸서 땜질하는 할아버지, '찰칵찰칵' 큰 가위를 뽐내며 들어오는 엿장수, '하드여~' 목청껏 외치며 아이들에게 깨진 보습이며 비닐부대 찾게 만든 아이스께끼 장사와 달리 대장장이 아저씨는 조용히 산을 넘어서 작은 길로 나타났다.


늦가을 무렵부터 이른봄까지 농한기 때마다 1년에 두 번 이상은 빠트리지 않고 찾아와서 농기구와 생활 필수품을 수리해주고 가는 서비스센터. 부르지 않아도 어김없이 왔으니 그 시절에도 사람살이라는 게 목숨만 부지해 있으면 가능한 측면도 있었다.

그는 단지 새것을 팔아먹는 자본의 물결이 아닌 부족한 생활을 조금 채워주고 쥐꼬리만한 비용을 받고는 기약 없이 떠났다가 필요할 즈음 다시 나타나서 노동력을 한껏 올려준 고마운 존재다.

곡성군 석곡장 인근에서 산다는 그 분은 해발 5~600m 흑석(黑石) 검덕굴이나 노루목, 갈경이 노치재를 넘어 화순 북면 백아산 마을로 찾아든다. 멧돼지, 삵쾡이, 여우, 고라니, 노루, 토끼 등 산짐승과 친구하며 때론 절절매며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모른다. 행여 빨치산 '산(山)사람'들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풀무 또는 풍구라 불리던 도구. 부엌에 불이 잘 타지 않을 때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풀무 또는 풍구라 불리던 도구. 부엌에 불이 잘 타지 않을 때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김규환
내 기억에 아직 또렷이 남아 있는 그 아저씨는 40대 중 후반 또는 50대 초반이었다. 행색을 회상해 보면 위아래 회청색 겉옷에 덥수룩한 머리에 귀밑머리까지 덮어주는 모자를 푹 눌러 썼다. 말씀은 그리 없으시고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성실한 일꾼이었다. 각진 얼굴에 수염에서 희끗희끗한 빛이 감돌아 떠돌이 여정을 말해주었다.

발채도 없이 최대한 간편한 지게에 풀무와 머릿돌, 망치, 댄노, 다가내(끌보다 더 뭉통한 것으로서 달궈진 쇠에 다가내를 대고 망치를 내리쳐서 자르는데 쓰인다), 부삽 등 기본 도구와 숯가마를 지고 장갑 하나 끼었으면 다행이다.

우리 마을과 인근 몇 동네는 가장 험한 산골짜기에 가까워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당시 60여 호나 되었던 우리 마을은 오히려 대장장이에겐 꽤나 끌리는 마을이었다. 200여 호나 되는 한 두 마을은 어떤 해코지를 당할 지도 모르고 자리잡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숯이 부족하면 어디 가서 구할 일도 막막하였지만 우리 동네에선 칼자루 낫자루는 물론 음식 대접까지 받았고 기상 상황이 좋지 않거나 일찍 날이 저물 때는 주막이든 이장 댁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었다.

동네에 도착한 아저씨는 말귀나 통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어귀에 지게를 바쳐 놓는다. 삼 굽는 자리에 매번 임시 성냥간이 차려졌지만 그래도 뜨내기인지라 누구한테든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무러운(허물없는 사이) 사람을 만나야 자신은 일에만 전념하고 동네방네 대장장이가 왔다는 소문까지 내주니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짐을 부리고 제일 먼저 불을 붙인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면 부대자루에 든 숯을 부어 옆옆이 놓고 풀무를 돌려 숯불을 살린다. 이어 불이 붙는 동안 머릿돌-사실 머릿돌이지만 돌이 아닌 받침으로 쓸 쇳덩이 공작대-을 설치한다.

사람들이 더 몰려오면 친구나 아이들에게 풍구(풀무의 다른 말)를 돌리라 부탁을 하고 냇가나 가까운 집에서 통을 하나 주워와 담금질용 물통에 물을 채운다. 마지막으로 자잘한 연장을 땅에 툭 떨어트려 놓고는 고객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 때는 무디거나 닳아진 것, 깨진 것까지 농기구를 점검하는 철이라 연기가 나면 금새 사람들이 몰려오게 돼 있었다.

아련한 기억 속의 대장간 풍경
아련한 기억 속의 대장간 풍경김규환

"어이 자네 왔는가?"
"나오셨는가?"
"조금 뜸 허시."
"허허."
"글도 수일 내에 와주신께 고맙구먼."

아저씨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보십(보습)이 떨어졌단 말이시…."
"고놈은 강철이라 쉽지 않을 것인디…. 새로 하나 장만하더라고."
"다시 옴세."

도리가 없었다. 기술자 한 마디에 먼저 온 박샌은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장에 가서 거금을 또 들여야 한다. 곧 밭보리를 갈아야 할 판인데 언제 퇴비 내고 장에 갔다온단 말인가.

다음 순서로 아주머니 한 분이 낫과 칼을 들고 오셨다. 무슨 일이든 여자가 설치면 일이 그르친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아주머니는 슬금슬금 눈치를 봐가며 두 번째로 순서를 맞춘 것이었다.

"오셨소?"
"여전하시구만이라우."
"맨날 허는 것이 이것잉께라우."
"갈아도 이젠 숫돌만 아깝제 도저히 안 되겄구만이라."
"이리 줘보쇼."

칼과 낫을 받아든 그는 머릿돌 옆구리에 반대로 대고 툭툭 치니 자루가 빠진다. 무슨 요리를 그렇게 대단한 걸 했길래 이가 큼지막하게 세 개나 빠져 있어 칼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다. 낫도 마찬가지다.

불구덩이에 쇠가 불려지고 있습니다.
불구덩이에 쇠가 불려지고 있습니다.김규환

어느새 숯불은 발갛다 못해 시퍼런 빛이 돈다. 가져온 물건을 약간 쑤셔 넣고 풀무를 더 세게 돌리자 금세 불꽃이 팍팍 튀며 이글거리는 쇳덩이가 된다. 그 사이 몇몇 사람이 각자 고칠 연장을 바닥에 차례대로 놓고 불 옆에 뽀짝 다가가 불을 쬐기도 하고 바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야~ 허벌나게 빨갛다. 그쟈?"
"쩌기다 디면(데이면) 살도 타겠다야."

몇 천 도가 되는 지 모를 불덩이를 보고 조금 멀리 떨어진 아이들은 각자 해석하기에 바쁘다.

"애들은 가라. 뽀짝거리지 말고…."

한 번 주의를 주고 바로 일에 열중하신다. 곧 달궈진 칼과 낫. 낫은 한쪽으로 살짝 밀쳐 두고 칼을 먼저 집게로 잡는다. 달군 칼은 쇠라기보다 불덩이고 쇳물에 가깝다. 붉은 쇠 표면엔 먼지가 낀 듯, 날아다니는 먼지마저 겉에 닿자 "파다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간다.

꺼내자마자 식기 전에 한 손에 망치를 들고 "탁탁" "탁탁탁" 내리치니 엿가락처럼 나긋나긋하고 물렁물렁한 쇠가 쫙쫙 늘어난다. 여러 번 쳐서 두들김에 따라 밀가루 반죽하던 소리에서 차차 더 맑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떵떵" "쩡쩡쩡" 소리에 가깝게 주변에 울려 퍼졌다.

고루 두들겨 주고 푸르스름하게 식자 다시 불에 넣고 달구고 달궈진 걸 꺼내 "팍팍" "팍팍팍", "팍팍" "팍팍팍" 하다가 "쩡쩡" "떵떵떵" 소리로 변하자 때리기를 멈추고 다시 불린다.

이러기를 두 번 더 반복하고 세 번째인 마지막에는 망치로 쇠를 살살 치며 모양을 가다듬는다. 이젠 아저씨 옷 빛깔과 비슷한 회청색 쇠붙이가 되었다. 가져 올 때보다 약간 날렵하지만 쓰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 칼끝을 모양새 내기 위해 '다가내'를 대고 동그랗게 조금 잘라내고 쇳조각을 한쪽에 모아 갈무리한다.

문을 고정시키는데 쓰였던 암수 돌쩌귀
문을 고정시키는데 쓰였던 암수 돌쩌귀김규환
이젠 담금질 차례다. "차자작" 가볍게 두들겨 물러터지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는 주변에 있는 물통에 제비가 물을 차듯 살짝 담근다.

"비시식!"

잠시 공중으로 들었다가 다시 한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끝으로 물통에 칼을 집어넣자, "뽀글뽀글" 이무기가 휘저은 듯 거품이 피어오르고 쇳덩이는 춤을 추며 가라앉는다. 흙탕물투성이가 되더니 물통 속이 안정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아직 쌀쌀한 날이지만 대장장이 아저씨 이마엔 벌써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물이라도 한잔허고 쉬었다 허싯쇼."
"됐어라우. 인자 시작인디 시방부터 자리 깔고 앉으면 하노고 시간가는 줄 모른당께라우."

이런 작업이 쉴 틈 없이 이어졌지만 대략 그날 풍경 소개를 마치고 이젠 자루 끼는 순서로 가련다.

자루는 각자 나무 할 때 베어둔 뿔나무라 불리고 초가을 제일 먼저 붉게 단풍이 들던 붉나무가 제격이다. 이 나무라 하더라도 가지보다는 원줄기가 최고인데 스펀지처럼 굵은 갈색 심이 박힌 걸 직경 2.5센티 내외, 길이 10센티 이내로 잘라와야 좋은 칼자루를 한동안 쥐고 편하게 요리와 작업을 할 수 있다.

애벌 자루끼기
애벌 자루끼기김규환

담금질이 끝나면 칼자루에 끼울 뾰족한 부분을 불에 달궈 자루를 머릿돌에 받치고 끝을 나무 중앙부에 대고 한 손은 나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집게로 칼날을 집고는 "탁" "탁" "탁" 세 번 쳐주면 불이 난 듯 나무가 타들어 간다.

이어 파란 연기를 내뿜으며 쏙쏙 기어 들어간다. 벌어지지 않는걸 확인하고 다시 들어갈 만큼 더 쳐주다가 멈추고는 망치로 자루 위 날 쪽에 가까운 곳을 "툭툭" 쳐서 빼낸다.

얼른 빼서 다시 풀무 안에 집어넣어 불려 약간 달구기를 한번 더 하는 이유는 일감이 밀려 급하다고 한꺼번에 일을 마무리했다가는 칼자루가 아무 소용이 없도록 쉽게 빠지는 까닭이다.

세 번째는 달구지 않고 물에 담갔다가 자루 속이 타지 않고 쇠가 물러지지 않게 해서 삼차 박아 넣으면 칼이 완성된다. 옆에 있던 마을 어른 한 분은 담배를 하나 물고 칼과 낫 등 새로 성형된 도구를 물을 뿌려가며 쌀뜨물이 나오도록 날을 돌려가며 서서히 갈아준다.

이윽고 날에 엄지손가락 지문이 베일까 두렵게 "쭈욱" 밀어 긁어보고는 "잘 들구먼…." 하는 사인이 떨어진 다음에야 1~200원 내고 물건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자루끼기2
자루끼기2김규환


"차린 건 없지만 집에 가서 한술 뜸세."
"매번 신세지기 싫은디…."
"이보게! 언제 내가 따로 차리던가. 그냥 나 묵는대로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됭께 어서 가세나. 야, 규환아! 니 엄니한테 가서 말씀드려라. 집으로 같이 가신다고…."
"예."
"자자, 그만 놓고 가보자고…."
"연장은 챙겨놓고."

아버지는 늘 사람들을 챙겨오셨다. 당신의 생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먹는 대로만 드리면 죄로 가지(죄받지) 않는다'는 게 지론이었다. 그 새 어머니는 새 밥을 해놓으셨고 봄나물 겉절이를 몇 가지 곁들였다.

아저씨 몸에서는 쇳가루와 숯가루가 줄줄 떨어졌다. 세숫대야에 물을 한바가지 퍼드리고 대야를 훔쳐보는데 손 씻은 물은 때 국물 그 자체였다.

햇볕이 내리쬐던 이른 봄날 따뜻한 방을 마다하신 아저씨 때문에 마룻바닥에서 밥을 먹었다. 둘둘 국에 말아 몇 번 뜨시고 밀주(密酒)로 담가 숨겨둔 막걸리 한잔 드시고는 자리를 물리셨다. 아버지도 얼른 뒤따라 나가 일을 거들었다.

쇠로 만든 머릿돌은 잘 물러지지 않습니다. 모양이 길쭉하게 생긴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위마다 모양을 만드는데 쓰였습니다.
쇠로 만든 머릿돌은 잘 물러지지 않습니다. 모양이 길쭉하게 생긴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위마다 모양을 만드는데 쓰였습니다.김규환
집집마다 갖고 나온 생필품과 농기구는 하루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끝나지 않았다. 잠은 동네 주막에서 자고 그 다음날 한나절을 지나고 나서야 일이 마무리되어 이웃 동네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우린 공짜로 해주신 잘 드는 낫을 지게에 꽂고 들일을 나갔다.

몇 년이었던가. 1979년이나 80년대 초로 어렴풋이 기억되는 그날 이후로 난 아저씨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돌아가셨던 것일까. 아니면 힘에 부친 탓일까.

우리 마을에 오셔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외지인이지만 결코 떠돌이나 나그네, 방랑객 또는 지나치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이웃집 아저씨나 마찬가지였던 그분. 아마도 세월의 긴 끈을 부여잡지 못하고 이미 먼길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저 세상으로 가셨을지라도 '땜장이'와 급이 달랐고 따로 취급을 받았던 재 너머 대장장이 아저씨는 오랜 옛날이지만 아련한 고향의 정으로 남는다. 아저씨는 쇠붙이 하나만 갖다드리면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다. 신기했다. 그 망치는 요술 방망이였고 아저씨는 도사였다.

대장간 밀어낸 중국산 낫. 중국에서 오지 않는 물건이 없습니다.
대장간 밀어낸 중국산 낫. 중국에서 오지 않는 물건이 없습니다.김규환

덧붙이는 글 | 대장간 좋은 곳 있으면 소개부탁 합니다. 이 장면은 순천 낙안읍성 방문 때 찍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대장간 좋은 곳 있으면 소개부탁 합니다. 이 장면은 순천 낙안읍성 방문 때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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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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