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변 봉투와 기생충 박멸

우린 1년에 두 번 채변봉투 때문에 홍역을 치러야했다

등록 2004.03.09 10:48수정 2004.03.09 12:0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우리에게 고역이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매학기가 시작되면 조회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노란 대 봉투에서 작고 하얀 봉투를 꺼내 "뒤로 쭉 돌려라. 다들 모레까지 가져와야 한다. 알았지?" 하시고는 교실을 후딱 빠져나간다.


아무 말 없이 하나씩 받아들고는 무슨 벌레 씹은 얼굴로 서로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우리가 받아든 자그마한 봉투는 채변(採便) 봉투다. 그 봉지 안에 얇고 투명한 비닐이 들어 있는데 변(便)을 채취(採取)하여 가져오라 하셨으니 며칠 동안 입맛을 앗아가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기분 잡치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또 시킨 것이다. '언제나 이 짓거리에서 해방되나?' 별 궁리를 다 해봐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흙 빼고 어떤 내용물이라도 채워와야 하는 절박감. 학년이 올라가고 나잇살 먹어감에 따라 더 하기 싫어졌다.

당시에는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 기생충 발생이 잦았다. 손에 흙을 묻히며 일을 거들었을 뿐만 아니라 흙 범벅이 되어 놀았던 탓도 있고 덜 발효된 퇴비를 농작물에 곧바로 뿌려서 농사지은 채소를 대충 씻어 쌈이나 풋나물로 먹었기 때문에 열에 일곱은 기생충을 달고 살았다. 따라서 아이들 얼굴은 하얀 버짐이 피어 밥을 양푼 째 먹어대도 배불뚝이가 될 뿐 살이 찌질 않았다.

기생충 박멸을 외치던 정부 시책에 따라 학기마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얼굴이 잘 생기든 말든, 키가 크던 작던 간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반장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남녀 구분 없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고, 버스를 같이 타던 중학교 때는 며칠 간 대화가 끊길 정도로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무지막지한 형벌이었다. 허나 어쩌겠는가. 명령인 것을. 매타작을 당하고도 꼼짝없이 다시 해야되었다.


아침밥을 서둘러 먹고는 채변을 하러 변소(便所)로 간다. 그날은 생리현상을 조절하러 가는 게 아닌 작업을 위해서다. 젓가락만한 나무대기를 하나 꺾고 한 손엔 비닐 봉투를 들고 신문지 하나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도 왕겨나 재를 뿌린 '밀어내기식'이었을 적엔 별 문제가 아니었으나 '푸세식'으로 바뀐 뒤에는 하릴없이 신문지 한 장 챙겨서 발 딛는 가랑이 사이에 펼친다. 엉거주춤 몸을 비틀어 불편한 자세로 힘껏 힘을 주어 일을 보고는 아직 소화가 덜된 거친 씰가리국(시레기국) 잔존물(殘存物) 사이사이에서 잘 만들어진 부분을 골라 한 숟가락 툭 떠서 비닐봉지에 넣는다.


그런데 평소에도 등교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았고, 7km나 되는 중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던 나인지라 급하게 일을 치르다보면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때가 있었다.

성공적으로 일을 마친 때는 쇠죽 쑤던 아궁이에서 불덩이를 하나 꺼내 입구를 주루루 지져 봉합을 하여 책갈피처럼 책 사이에 끼워 가져가면 끝이지만 실패한 경우는 난감한 일이었다.

중도에 포기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서 2차 시도를 한다. 학교 변소는 '푸세식'도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사람이 같이 일을 보매 훨씬 더 진한 향기에 숨이 탁탁 막힌다. 냄새를 피하고자 뒷동산으로 가서 일을 치르는 아이도 있지만 그래도 밀폐된 공간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책장 하나 찢어 감행을 하는데 뻥 뚫린 송광사 화장실을 닮은 그곳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간신히 해치우고 나오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저린 발을 간신히 풀어 교실로 들어오면 화장실에 그냥 눌러 있는 게 더 나을 성싶게 아침부터 교실은 이상야릇한 냄새가 가득하다. 야리꾸리한 냄새가 진동하는 교실에서 한동안 버티다가 "야, 급장!", "야, 실장!", "제발 얼른 걷어부러야. 냄시나서 쓰겄냐?" 하면서 서두르기를 종용하면 아이들은 서로 먼저 내려고 앞 다퉈 교탁 위에 올려놓고 뒷걸음질친다.

이런 모범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잔꾀를 부릴 줄 아는 아이들의 대처 방법은 기발하고 특이하다. 키 크고 덩치큰 아이는 친구들 봉지를 하나하나 검열하여 양이 많은 것을 덜어 담기도 하고 된장 덩이를 똑 떠서 손으로 한번 눌러준다. 그러면 웬만한 사람은 구별할 줄 모르므로 무사통과다. 심한 경우는 개똥을 집어넣기도 했다.

전쟁 아닌 홍역을 한번 치르고 나면 그 해방감에 날아갈 듯 하다. 두 달여 지나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은 회충약을 나눠주셨다.

덧붙이는 글 | 요즘은 아예 없어졌다고 하는군요. 그 시절을 한번 보자는 겁니다. 연상하지 말고 그냥 한번 읽고 머리에서 지우세요.

덧붙이는 글 요즘은 아예 없어졌다고 하는군요. 그 시절을 한번 보자는 겁니다. 연상하지 말고 그냥 한번 읽고 머리에서 지우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 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