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96

어떤 놈이야? (4)

등록 2004.03.08 14:34수정 2004.03.08 15:33
0
원고료로 응원
어쨌거나 초지악은 상처 입히지 말고 생포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사라와 유라만 그렇게 하라는 것이고 사면호협은 해당 사항이 없는 명령이었다. 그러자 모든 공격이 여광에게 집중되었다.

이때부터 두 여인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사면호협의 안위에 더 신경을 써야 하였다. 잠시만 긴장을 늦춰도 여기저기에서 선혈이 튈 정도로 위급한 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수없는 위기 속에서도 사면호협이 목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여전히 공격은 숨 쉴 틈 없이 밀려들었고,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게다가 포위망은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점점 지쳐갔지만 셋은 순순히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생포되면 어찌될지 뻔했기 때문이다.

사라와 유라는 인면수심인 초지악에게 청백을 잃고, 두고두고 능욕 당하는 치욕을 겪느니 차라리 병신이 되거나 죽는 것이 낫다 생각하였기에 죽기 살기로 병장기를 휘둘렀다.

자신의 안위조차 돌보지 않는 무모하다 해도 좋을, 너 죽고 나 죽자는 양패구상의 초식까지 펼쳐지자 상황이 약간 호전되어 간신히 숨을 돌릴 틈은 생겼다.


대원들로서는 손톱 끝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않은 상태로 생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공격은 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공격을 숨쉴 틈 없이 이어지고, 포위망은 전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언젠가는 지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생포되고야 말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와 유라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월도법을 펼쳤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둘의 움직임은 마치 짝짓기를 하려 군무를 펼치는 혈접(血蝶)의 화려한 몸짓을 닮았다. 둘의 애병인 일도와 월도는 수 없는 변식을 일으켜 쇄도하는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한편 전혀 짐작 못할 예리한 각도로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곤 하였던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잠시 후 두 여인은 생포될 것이고, 그러고 나면 뜨거운 육체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흐뭇해하던 초지악의 입가에 걸려있던 괴소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두 여인의 도법이 왠지 낯이 익다는 느낌과 동시에 그것이 가전도법인 일월도법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하긴 평생 일월도법의 후반부 십팔식을 창안해내기 위해 고심하였으니 못 알아본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공격하고 있는 예비 정의수호대원들의 화후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정식 대원들 넷이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평수를 이룰 정도라면 예비 대원들은 다섯이 있어야 한다는 차이뿐이다.

따라서 각파의 장로급과 버금갈 실력자들인데 그들의 숨 쉴 틈 없는 공격이 현묘한 도법에 의하여 번번히 차단되고 있었다.

초지악은 번뜩이는 일월도법의 정수(精髓)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의 도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그 동안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무리(武理)가 마치 봇물 터지듯 그렇게 터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라와 유라의 도는 대원들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략 일각 가량이 흘렀을 때 두 여인은 물론 사면호협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억지로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기는 하지만 위력을 잃어 병장기가 부딪칠 때마다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일각 이상 버틸 기력조차 없다는 것이 너무도 확연히 드러나 있었기에 대원들의 공격은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

도주로만 차단하고 그냥 놔둬도 반시진을 못 넘기고 쓰러질 터인데 괜한 공격을 가하다 혹시라도 상처를 입히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장래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공격을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아 형식적인 공격만을 가하고 있었는데 그 수법이 참으로 교묘하였다.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여광을 보호하기 급급한 사라와 유라의 의복만을 노린 공격을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공격을 빌미로 발가벗기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사라와 유라는 젖 가리개와 고의만 걸친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혼신의 기력을 다해 일도와 월도를 휘둘렀다.

이런 상황임에도 초지악이 공격을 멈추게 하지 않은 이유는 마지막 두 초식을 견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예비 대원의 도가 쾌속하게 사면호협의 목덜미를 향하여 쇄도하고 있었다. 이 순간 사라와 유라는 젖 가리개마저 끓으려 날아드는 유엽비도(柳葉飛刀)를 쳐내기 위해 일도와 월도를 떨쳤다.

같은 순간 아무런 기척도 없는 두 줄기 지풍이 두 여인의 연마혈을 향하여 날아들고 있었다.

이제 모든 상황이 간단명료하게 종료되려는 바로 그 순간, 산지사방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