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

[주장] 방송사들은 야당의 협박에 굴하지 말라

등록 2004.03.15 08:55수정 2004.03.15 18:31
0
원고료로 응원
작년 6월 11일 열린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강성구 의원은 존 밀러의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라는 책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했다.

노 대통령이 정권의 지지율 하락을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조선> <중앙> <동아>는 이 말을 받아 일제히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라는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정치면 톱으로 배치했다.

그런 한나라당은 5월 12일 낸 <16대 대선 부정선거 백서- 선거법도 선관위도 없었다>에서 대선 패배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만 돌린 바 있다. 김대중 정권의 공작 정치, 노사모의 불법 운동, 불법의 노·정 후보단일화, 방송사의 편파보도, 불공정한 선거관리 행정 등을 꼽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에도 탄핵 이후의 지지율 하락을 언론 탓으로 돌렸다. 특히 방송의 편파 보도를 지적하며 항의 방문까지 했다. 물론 이제 공동운명체가 된 민주당도 가세했다. 여론조사까지 조작됐다는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의 주장에는 할 말을 잃었다.

조중동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거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작년에는 언론 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언론 탓을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방송 탓이 맞다는 주장이다. 조중동도 바보가 된 모양이다.

<조선>과 <동아>는 사설까지 동원하여 방송 탓을 했다. 3월 15일자 조선의 사설 '방송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를 보자. "우리 방송은 공영이나 민영, TV와 라디오를 가릴 것 없이 즉각 태도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보도뿐 아니라 토론, 시사교양, 심지어 음악·코미디 등 오락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을 흥분시키는 자극적인 말로 집단 행동을 유도하는 듯한 태도는 방송의 본분을 크게 이탈한 위험천만한 짓"이기 때문이란다.


관련기사- 방송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격렬한 성토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엄격함을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일까? 위험천만한 짓을 즉각 바로잡아야 할 대상은 방송이 아니라 조선일보 자신이다. 'KBS, 주말 하루 12시간 탄핵특집'(A2면)이 공영방송의 본분을 크게 벗어났다는 불만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공영방송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부터 이성을 찾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동아>도 15일자 사설 'TV 탄핵방송 문제 있다'에서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한 TV 보도가 언론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중립성과 객관성을 잃고 있다"면서 특히 KBS를 겨냥했다. "특히 지난 며칠간 탄핵 관련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한 KBS는 탄핵을 반대하는 의견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KBS, 주말 하루 12시간 탄핵특집

TV 탄핵방송 문제 있다

하여 "KBS의 이 같은 보도 태도는 비상시국에서 극도의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공영방송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방송위원회가 나서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설위원이 사설을 쓰려면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개념부터 정확하게 공부가 돼 있어야 한다.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공영방송은 국민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냉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해야 한다"(15일자 'KBS 탄핵방송 편파성 논란')는 이화여대 박성희 교수와 같은 균형 잃은 주장에 매달리지 말고 말이다.

중립성이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권투 경기에서 심판이 우열을 가리지 않고 둘 다 열심히 싸웠다며 무승부를 선언하는 게 중립성을 지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혹여 좋아하는 선수가 있더라도 심판은 균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 성적에 따라 판정을 내려야 한다. 그게 중립성이요, 객관성이다.

언론은 객관적 근거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려주는 것이 정도요, 또 공영방송의 본분이다. 방송들은 옳고 그름을 나름대로 판단했으며, 그것을 근거로 객관적인 보도와 방송을 했다.

탄핵이 잘못됐다는 전문가들의 판단과 국민여론이 압도적인데도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중립성과 객관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야당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소신껏 밀고나가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