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가 "툭!"... "헷갈린게 한비짝으로 나가 있어"

[추억의 놀이에 빠져 1] 오징어놀이 혹은 오징어강생

등록 2004.03.17 12:57수정 2004.03.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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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놀이에 빠져 놀았던 아이들…


라면땅, 붕알강생, 숨바꼭질,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상수리 치기와 도토리 팽이 돌리기, 탱자로 구슬치기, 전우놀이, 연날리기, 말뚝박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비닐부대 타기를 하며 놀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보다 고무줄 끊기가 특기였다. 메주콩 뚫어 '싸이나' 넣어 촛농으로 막아 꿩 잡고, 눈밭에 토끼몰이 나가고, 새총으로 새 잡다 장독대 깨트리고, 그래도 심심하면 땅벌 집에 불을 놓아 꿀 털어먹다 대갈통 곳곳에 쏘여 간신히 살아나고, 수박·참외서리, 복숭아·콩서리, 닭서리 하다 작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았던 악동들이다.

개구리 뒷다리 무던히도 구워 소금 찍어 먹고 보리와 밀 꼬실라 먹기, 가재 물고기 잡아 어죽(魚粥) 끓이고, 메뚜기 구워먹기, 줄넘기 놀이, 꼬리잡기, 그림자 밟기, '도롱테' 굴렁쇠 굴리기, 대나무 화살촉 만들어 겨릅대에 끼워 활쏘기, 쌈치기, 호박에 줄긋기 그리고 오징어놀이….

그래 수건돌리기는 한 참 나중에야 나온 것이라. 또 뭐가 있을까. 내 어린 시절은 오락실과 PC방이 없어도 즐겁기만 했다.

오늘 다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나 살려라 할 것이고 종이 값 아깝게 책 한 권은 족히 될법한 즐거운 놀이지만 그래도 난 오징어놀이를 하고 싶다. '오징어놀이' '오징어강생' '가오리강생' '홍어강생' 이 네 가지가 이름만 조금 다를 뿐 틀림없이 모양도 다를 바 없고 결국 같은 놀이니 시비 걸지 말자. 가오리 비슷하게 그리면 되잖은가….


간략한 '오징어놀이' 이 그림을 잘 보시고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간략한 '오징어놀이' 이 그림을 잘 보시고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김규환

늦게 도착한 죄로 주전자에 물을 퍼와 오징어를 그리다

옷에 뭍은 여물을 털 틈도 없었다. 고샅을 따라 나가면서 코를 한번 "픽-" 풀어 담벼락에 닦고는 옷소매에 쓱 문지르면 조금 있다 반질반질 마르겠지. 동네 도랑 앞을 향해 폴짝폴짝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겅중겅중 뛰었다.


콧노래 절로 나오는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도 못해~~'

고무신 바닥으로 파고드는 돌부리의 아픈 경고도 무시한 채 내달리다 하마터면 또랑(도랑의 사투리)으로 빠질 뻔했다. 마음에다 단단히 브레이크를 잡고 순간 멈춰 섰다. '앗따 좆돼불뻔 했구먼….' 움찔하면서 '우데미'(같은 마을 가운데 위쪽을 일컫던 사투리)를 쳐다보니 아이들이 벌써 스물 너덧이나 모여있다.

'개새끼덜 지기들끼리 놀고 자빠졌구만….'

깔(꼴)을 작두에 썰어 쇠죽만 쒀주고 나왔으면 될 것을 병문이가 불러도 금방 간다고만 해놓고선 집안 떠나갈 듯 멱따는 소리를 "꽤액~ 꽤액~" 질러대는 바크셔 까만 돼지 새끼가 우리를 뛰쳐나오려는 터에 '부지땅'(부지깽이)으로 대가리 한번 갈겨주고 '꾸정물'(구정물) 한 '바케스'(양동이의 일본말) 퍼다주고 오느라 조금 늦었으니 어쩔 수 없다.

1초라도 나보다 먼저 와있으니 그네들의 속내를 알 턱이 없다. 그래도 뒤에 온 사람으로서 말을 붙여 보는 게 밑지지 않는 방책일 수도 있어 대뜸 끼워달라 해보는 게다.

"야~ 나 해도 되겄냐?"
"야 색꺄 왜 인차(이제야) 오냐. 언넝 주전자에 물이나 퍼와."
"색끼들아 니기들이 떠다놨으면 폴새(이미, 벌써) 다 그렸겄다."
"잔소리 말고 가서 떠와…. 긍께 누가 늦게 오라글디…."

편을 갈라 진 편이 안쪽에서 방어, 매번 작전회의

열 서넛부터 대여섯 살까지 코 질질 흘리는 남자 아이 2/3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는 보기만 해도 심란한 여자애들이 1/3 정도다. 땅 위에 막대기로 오징어를 큼지막하게 그리고 그 위에 물을 금 따라 줄줄줄 부어주면 오늘 노는데는 돈 한 푼 들일 일 없다. 땅이 놀이터요 노리개였고 흙을 만지작거리며 놀았으니까.

삼각형 머리부분을 먼저 크게 만들고 그 아래 목덜미 바로 밑 부분은 좁다랗게 건너는 다리(橋)가 된다. 좁은 공간을 지나면 아래를 따라 네모가 세모보다 더 크게 그려지고 입구를 일부 터놓는다. 끝으로 머리끝에 둥그런 동글뱅이(동그라미) 하나 그려 두 패로 나눠 놀이를 시작한다.

"야! 니기편 대장 누구여?"
"나!"

수탉에도 서열이 있듯이 모인 사람 중에 골목대장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편은 병섭이가 상대편은 성호가 대장노릇을 한다.

"잠깸 잠깸 포쇼!"('가위바위보'의 일본말)

공격과 수비 위치를 정하는데 이긴 편이 바깥에 있고 진 편은 안에서 방어를 한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터를 잡아 무척 크게 그렸지만 편마다 열 네 명씩이나 되니 놀이터가 꽉 차 보인다.

"시작할랑께 모다(모두) 제자리로 가."

한 두 번 하는 놀이가 아니므로 각자 자리를 잡는 건 별 문제없지만 매번 작전 회의를 거르지 않고 하는 건 상대편이 어떻게 치고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야- 다 들어가자 빨랑. 거시기랑 머시기 글고 니기들은 여기 모가지로 와. 그 담에 문 앞에는 째깐한(조그만) 애들이랑 가시내들이 지켜. 알았제?"
"야 색꺄! 내가 이래봬도 지게 3단인디 고딴식으로 무시혀도 되는 것이여?"
"앗따, 그게 아니고야…. 글도 너라도 문지기를 해야 쩌 놈들이 못 쳐들어 올 거 아녀?"
"알았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 한계를 절감합니다. 언젠가 그려지겠지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 한계를 절감합니다. 언젠가 그려지겠지요.김규환

잡아채고, 할퀴고, 발 걷으니 단추 떨어지고 코피까지 주루룩

첫 번 째부터 오징어 내장 기관에 들어가 수비를 하는 편에 속하게 되었다. 각자 임무가 하달되었다. 상대편은 사각 입구에 일부 그리고 모가지 부분에 절반 이상의 숫자가 양쪽으로 나뉘어 곧 넘볼 태세다.

"야 색끼들아 덤벼! 건너봐 임마."
"쉬익 쉭! 야잇!"
"에에~ 겁나지?"
"웃기지마 임마."
"그럼 넘어봐 봐."
"그래 간다~ 조심혀 나가 떨어지지 말고."

손으로 바깥에서 낚아채며 언제고 건너 뛸 모양이다. 금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잡아당기며 완강하게 버티다가 한 아이 옷을 잡아채는 순간 겉옷 커다란 단추가 "툭" 하나 떨어져 땅에 뒹군다.

"아따 씨벌롬, 너 두고보자. 카만 있어봐. 옷 벗어놓고 올텡께 각오혀."

제일 먼저 오징어 머리와 몸통 사이 모가지인 다리를 건너는 아이는 공격 편에서 가장 크고 완력이 세야만 한다. 이 자리를 건너면 '깨금발'(앙감질로 부르는 게 맞으나 우린 그렇게 불렀으므로 지역 특성을 감안하여 이후 깨금발이라 표현한다)로 들어갈 필요 없이 두발로 꼿꼿이 서서 수비하는 쪽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며 자빠트릴 수 있기 때문에 덩치큰 아이를 최선봉에 세운다.

한편 나머지는 우리 수비편이 혼란한 틈을 타서 우르르 몰려 건너뛰어 벌떼 같이 달려들어 우리편 견고한 성(城)을 금방 함락시키고 마니 공수(攻守)를 막론하고 목을 지키는 게 관건이다.

"야아-" 하며 한 명이 건너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전이 변경되었는지 제일 큰 병주가 뛰지 않고 형근이를 제물로 삼은 모양이다.

"쾅!"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힘껏 부딪힌다.

"얍! 임마 어딜…."

이럴 땐 건너뛰는 아이에게 발을 툭 갖다대면 여지없이 걸려 넘어진다. 형근이는 무참하게 고꾸라져 줄을 넘어 안으로 들어와 죽는다.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손으로 흙을 탈탈 털며 그냥 구경꾼 신세가 되고 만다. 이어 형근이 코에서 빨간 코피가 줄줄 쏟아져 나온다.

"에잇!"
"괜찮냐?"
"엉."
"야 넌 쩌기 한 삐짝으로 나가 있어. 코피도 나고 헷갈린 게."
"알았어야. 데게 그래싼네."

수비가 무조건 불리하지는 않아…안에서는 방어가 유리

아까운 동지 한 명 잃은 상대편은 다시 공격을 감행해 건너 뛸 생각을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어 사각 성문 밖 공격이 더 거세졌다.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와 보려고 딴지를 걸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작전 변경. 다리를 건너는 건 뒤로 미루고 네모난 성문 근처로 몇 몇 아이들이 온다. 하지만 몸통 근처는 수비자인 우리편이 더 자유롭기에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

"얍!"
"얍!"
"얍!"
"아따…. 얼굴까장 후벼파면 어쩔 것이여?"
"역실로(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께 근갑다(그런가보다) 해라."

기압 소리와 옷자락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는 적군, 반대로 끌려가지 않고 아이들을 안으로 당겨 금줄을 향해 넘어뜨리려는 아군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놀다보면 옷은 물론이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기도 하고 머리를 잡아채기도 한다. 심한 경우 주먹으로 가격(加擊)을 당하기도 했다.

"야야 언넝와봐 위험하당께."

이 한마디에 목을 지키고 있던 우리편 지원군이 우르르 몰려와 공격진영 한 놈을 끌어 당겨 발을 닿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셋이서 들어올려 땅 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쿵!"
"아따 니기덜 다음 판에 보자."

수비진영의 방어는 늘 수세적이지만은 않다. 발이 자유로운 안쪽에 한 놈이라도 끌어들여 금을 넘게 밀어 버리던가 반칙을 몰래 한 번씩 해주면 기가 팍팍 죽는다.

허술한 방어에 다리를 훌쩍 건너 전세 역전! 그리고 장렬한 전사

문전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지는 사이 가만히 지켜보던 성호가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훌쩍 건너뛴다. 전세는 일시에 뒤집어졌다. 늘 여우같고 힘이 센 성호가 한 발에서 두 발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우리편을 공격해오는 사태는 실로 심각하다. 장비가 성곽 앞에 호령하며 성을 통째 내 놓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니 수세에 몰리는 건 당연하다.

용기백배, 용감무쌍, 득의양양, 사기충천.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아이들이 일시에 뛰어 넘는다. 이제 절반 이상이 우리 땅에서도 활보를 한다. '깨금발'을 딛고 밖으로 나가 급습하여 고지를 점령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처참하게 결국 한판을 내주고 말았다. 몇 남지 않은 여자아이들은 낙화암의 꽃잎처럼 다리 위에 목숨을 내던졌다.

깨금발을 디디며 바깥을 돌아 "젠-"하고 찍으면 수비하던 편이 승리

다음 판이 이어졌다. 더 견고하게 오징어 모가지를 방어했다. 이젠 우리편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절반은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 나머지는 성문 앞에서 끌어들여 두 발을 닫게 함에 거의 다 죽고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우리편 부(副)대장 격인 내가 깨금발로 밖을 돌아 오징어 눈깔에 발을 디딘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밟으면서 "젠-"이라 외치며 승리의 깃발을 꽂는 일성을 토했다.

"이겼다!"
"만세!"

해가 질 때까지 놀이가 이어졌다. 그날만 자그마치 열 판 가까이 공수 교대를 반복하며 놀았다. 기진맥진 있던 힘 다 빠졌다. 회가 늘어갈수록 한두 명 집으로 돌아가자 1/3 가량만 남자 판은 깨졌다.

"들가라(들어가라)."
"그려 낼 보자."

땅 위에서 놀았던 잘 짜여진 집단과 집단 사이의 끈질긴 견제와 교란, 그리고 협동심을 길러줬던 오징어놀이.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던 세상 걱정 않고 살았던 지난날. 그 덕에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흙 범벅에 먼지 뒤집어쓰고 무릎 까져 피 질질 흘리면서도 흙 위에 오징어를 그릴 수만 있다면 한 데 모여 놀았다. 한없이 놀다 밥을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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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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