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 한계를 절감합니다. 언젠가 그려지겠지요.김규환
잡아채고, 할퀴고, 발 걷으니 단추 떨어지고 코피까지 주루룩
첫 번 째부터 오징어 내장 기관에 들어가 수비를 하는 편에 속하게 되었다. 각자 임무가 하달되었다. 상대편은 사각 입구에 일부 그리고 모가지 부분에 절반 이상의 숫자가 양쪽으로 나뉘어 곧 넘볼 태세다.
"야 색끼들아 덤벼! 건너봐 임마."
"쉬익 쉭! 야잇!"
"에에~ 겁나지?"
"웃기지마 임마."
"그럼 넘어봐 봐."
"그래 간다~ 조심혀 나가 떨어지지 말고."
손으로 바깥에서 낚아채며 언제고 건너 뛸 모양이다. 금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잡아당기며 완강하게 버티다가 한 아이 옷을 잡아채는 순간 겉옷 커다란 단추가 "툭" 하나 떨어져 땅에 뒹군다.
"아따 씨벌롬, 너 두고보자. 카만 있어봐. 옷 벗어놓고 올텡께 각오혀."
제일 먼저 오징어 머리와 몸통 사이 모가지인 다리를 건너는 아이는 공격 편에서 가장 크고 완력이 세야만 한다. 이 자리를 건너면 '깨금발'(앙감질로 부르는 게 맞으나 우린 그렇게 불렀으므로 지역 특성을 감안하여 이후 깨금발이라 표현한다)로 들어갈 필요 없이 두발로 꼿꼿이 서서 수비하는 쪽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며 자빠트릴 수 있기 때문에 덩치큰 아이를 최선봉에 세운다.
한편 나머지는 우리 수비편이 혼란한 틈을 타서 우르르 몰려 건너뛰어 벌떼 같이 달려들어 우리편 견고한 성(城)을 금방 함락시키고 마니 공수(攻守)를 막론하고 목을 지키는 게 관건이다.
"야아-" 하며 한 명이 건너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전이 변경되었는지 제일 큰 병주가 뛰지 않고 형근이를 제물로 삼은 모양이다.
"쾅!"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힘껏 부딪힌다.
"얍! 임마 어딜…."
이럴 땐 건너뛰는 아이에게 발을 툭 갖다대면 여지없이 걸려 넘어진다. 형근이는 무참하게 고꾸라져 줄을 넘어 안으로 들어와 죽는다.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손으로 흙을 탈탈 털며 그냥 구경꾼 신세가 되고 만다. 이어 형근이 코에서 빨간 코피가 줄줄 쏟아져 나온다.
"에잇!"
"괜찮냐?"
"엉."
"야 넌 쩌기 한 삐짝으로 나가 있어. 코피도 나고 헷갈린 게."
"알았어야. 데게 그래싼네."
수비가 무조건 불리하지는 않아…안에서는 방어가 유리
아까운 동지 한 명 잃은 상대편은 다시 공격을 감행해 건너 뛸 생각을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어 사각 성문 밖 공격이 더 거세졌다.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와 보려고 딴지를 걸고 있지만 쉽지 않다.
작전 변경. 다리를 건너는 건 뒤로 미루고 네모난 성문 근처로 몇 몇 아이들이 온다. 하지만 몸통 근처는 수비자인 우리편이 더 자유롭기에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다.
"얍!"
"얍!"
"얍!"
"아따…. 얼굴까장 후벼파면 어쩔 것이여?"
"역실로(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께 근갑다(그런가보다) 해라."
기압 소리와 옷자락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는 적군, 반대로 끌려가지 않고 아이들을 안으로 당겨 금줄을 향해 넘어뜨리려는 아군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놀다보면 옷은 물론이고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기도 하고 머리를 잡아채기도 한다. 심한 경우 주먹으로 가격(加擊)을 당하기도 했다.
"야야 언넝와봐 위험하당께."
이 한마디에 목을 지키고 있던 우리편 지원군이 우르르 몰려와 공격진영 한 놈을 끌어 당겨 발을 닿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셋이서 들어올려 땅 바닥에 패대기를 친다.
"쿵!"
"아따 니기덜 다음 판에 보자."
수비진영의 방어는 늘 수세적이지만은 않다. 발이 자유로운 안쪽에 한 놈이라도 끌어들여 금을 넘게 밀어 버리던가 반칙을 몰래 한 번씩 해주면 기가 팍팍 죽는다.
허술한 방어에 다리를 훌쩍 건너 전세 역전! 그리고 장렬한 전사
문전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지는 사이 가만히 지켜보던 성호가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훌쩍 건너뛴다. 전세는 일시에 뒤집어졌다. 늘 여우같고 힘이 센 성호가 한 발에서 두 발로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우리편을 공격해오는 사태는 실로 심각하다. 장비가 성곽 앞에 호령하며 성을 통째 내 놓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니 수세에 몰리는 건 당연하다.
용기백배, 용감무쌍, 득의양양, 사기충천.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아이들이 일시에 뛰어 넘는다. 이제 절반 이상이 우리 땅에서도 활보를 한다. '깨금발'을 딛고 밖으로 나가 급습하여 고지를 점령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처참하게 결국 한판을 내주고 말았다. 몇 남지 않은 여자아이들은 낙화암의 꽃잎처럼 다리 위에 목숨을 내던졌다.
깨금발을 디디며 바깥을 돌아 "젠-"하고 찍으면 수비하던 편이 승리
다음 판이 이어졌다. 더 견고하게 오징어 모가지를 방어했다. 이젠 우리편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절반은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 나머지는 성문 앞에서 끌어들여 두 발을 닫게 함에 거의 다 죽고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우리편 부(副)대장 격인 내가 깨금발로 밖을 돌아 오징어 눈깔에 발을 디딘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밟으면서 "젠-"이라 외치며 승리의 깃발을 꽂는 일성을 토했다.
"이겼다!"
"만세!"
해가 질 때까지 놀이가 이어졌다. 그날만 자그마치 열 판 가까이 공수 교대를 반복하며 놀았다. 기진맥진 있던 힘 다 빠졌다. 회가 늘어갈수록 한두 명 집으로 돌아가자 1/3 가량만 남자 판은 깨졌다.
"들가라(들어가라)."
"그려 낼 보자."
땅 위에서 놀았던 잘 짜여진 집단과 집단 사이의 끈질긴 견제와 교란, 그리고 협동심을 길러줬던 오징어놀이.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던 세상 걱정 않고 살았던 지난날. 그 덕에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흙 범벅에 먼지 뒤집어쓰고 무릎 까져 피 질질 흘리면서도 흙 위에 오징어를 그릴 수만 있다면 한 데 모여 놀았다. 한없이 놀다 밥을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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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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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가 "툭!"... "헷갈린게 한비짝으로 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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