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3사가 결국 한나라당의 압력에 굴복하여 대표 경선 토론을 생중계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는 명백한 편성권 침해로서 방송의 자율성에 상처를 준 나쁜 선례로 남게 됐다. 방송사로서는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때 대책 없이 강요된 편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당초 KBS와 MBC가 형평성 문제를 들어 중계를 거부한 것은 명분이 뚜렷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토론에서 5명의 후보가 정제되지 않은 갖은 발언들을 쏟아낼 때 빚어지는 항의 내지는 반론권 요구 등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정당들은 물론이고, 그 후보들 지역구의 경쟁자들이 조용히 넘어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당내 사정이 절박한 한나라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문들이 중계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더 꼴불견이다. <조선일보>는 3월19일자 2면 기사에서, 열린우리당 경선토론을 방송한 KBS와 MBC가 한나라당 토론은 중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야당의 주장을 대변해주었다. 이건 속임수다.
한나라당은 이미 작년 6월24일 대표경선을 실시했고, 당시 전국으로 중계된 TV토론을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선출된 최병렬 대표가 중도에 물러나게 됨으로써 한나라당은 새 대표를 뽑는 경선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열린우리당은 해주고 한나라당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는 듯 독자를 속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의 20일자 사설 ‘한나라당 토론회 TV중계 옳다’ 역시 속임수와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의장 경선 TV토론을 중계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KBS, MBC는 한나라당의 중계 요청이 방송사 고유의 편성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했지만 국민의 전파를 방송사 자의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편성하는 것이야말로 ‘간섭’ 차원을 넘는 중대한 문제” 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논설위원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간섭’은 문제가 아니라는 발상이다. 동아는 사회의 공기(公器)를 신문사 자의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편집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할 건가? 동아는 한나라당이 취재 보도가 아니라 토론 내용을 ‘전재’해달라고 요구해도 들어줄 수 있을까?
동아는 ‘한나라 경선중계 거부 -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의혹 있다”’ 제하의 기사에서 ‘4·15 총선을 앞둔 정당 대표 경선 TV토론 개최 현황’을 도표로 만들어 제시했는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만 있고 작년 한나라당의 대표 경선 TV토론은 뺐다. 1년도 안 돼 대표 경선을 새로 하는데 따라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형평성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20일자 사설 ‘방송은 공정·형평성을 지켜라’에서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선거가 임박했다는 시점이 중계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될 수 있다”면서 “녹화중계 등으로 상대 당의 비방 우려를 걸러내면서 알권리를 적극 신장해가야 한다.”고 한 것이다. 녹화중계를 한다고 해서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나 동아에 비해서는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왜 방침을 바꾸게 됐는지를 밝혀야 한다. 중계를 거부한 게 옳았는지, 하기로 하는 게 옳은지, 압력에 굴복한 건 아닌지, 앞으로는 유사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건지, 정당이 1년에 몇 번씩 대표를 갈아 치우는 이벤트를 할 때마다 중계방송을 해줄 건지 등에 대해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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