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푹 고아 먹어봐, 아줌씨가 좋아해"

200년을 이어온 북평 5일장, 북평 장터에서 만난 민초들

등록 2004.03.22 14:34수정 2004.03.23 19:12
0
원고료로 응원
a

북평장터의 어물전 ⓒ 이종원


강원도에서 가장 크다는 북평 5일장을 찾았다.

새끼 강아지를 가져온 아줌마, 굼벵이를 파는 아저씨, 뽕짝 테이프를 팔면서 연신 몸을 흔드는 청년,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아 메밀묵을 먹는 할머니, 진한 막걸리에 취해 휘청거리는 할아버지의 시뻘건 얼굴에서도 끈끈한 삶은 향기가 느껴진다.

할머니의 광주리에는 산에서 캐온 냉이와 달래가 가득 담겨져 있다. 팔리든 안 팔리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는 사람 만나면 그저 좋다. 그들과 수다를 떠는 자체만으로 행복한 표정이다. 북평 장터에서 만난 민초들의 얼굴들은 이렇게 솔직하고 정겹다.

북평 5일장 여행정보

1. 장터- 동해시 북평동 일대 (4천평)

2. 장터개설- 5일장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3. 북평장터 가는 길
서울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국도 (삼척방향)-효가사거리-북평장터(2.7km 7분소요)

4.주변 관광지
무릉계곡, 추암해변, 천곡동굴, 어달 횟집타운, 망상해수욕장 / 이종원
북평장터는 정조 20년(1766년)부터 장이 섰으니 2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북평장터는 강원도 최대의 장터다. 인근 강릉, 삼척, 정선뿐 아니라 충북 제천, 경북 내륙에서까지 손님이 몰린다. 북평이 이렇게 큰 장터가 서는 이유는 이곳이 영동 지방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7번 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태백에서는 38번 국도가 이어지며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고개를 넘으면 북평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터가 형성되는 면적만 3만여평이며 좌판이 설치된 곳만 해도 4천여평에 달한다. 해산물시장, 농산물시장, 의류시장, 잡화시장, 한약시장, 농기구 시장 등으로 구분되어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 조그만 마을에 전국의 장돌뱅이들과 시민, 인근 도시민까지 모두 집결하기 때문에 장이 서는 날(5일, 8일)이면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 인파에 섞여 좌판에 널려 있는 물건을 구경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활보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가격 흥정이 끝나 서로 껄껄거리며 주고 받는 미소는 삶의 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이리라.

a

현지 사람들은 사발문어라고 부른다. 끓는물에 살짝 데치면 오그라들어 큰 사발만하게 변한다고 한다. ⓒ 이종원


요즈음은 봄나물이 최고다. 5천원만 있으며 냉이와 달래 등 태백산맥 골짜기에서 캐온 봄나물을 시장 바구니에 가득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으니 북평장의 가장 큰 볼거리는 어물전이다. 인근 묵호나 삼척 등지에서 잡은 수산물을 이곳으로 직송해 오기 때문에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잇다. 대구, 명태, 민어, 가오리, 문어 등이 좌판에 뉘여 신선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아주머니는 오징어와 가자미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횟감을 만들어 즉석에서 맛볼 수 있게 한다. 근처에 있는 건어물전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주인이 맛보기로 건내주는 오징어포와 북어포를 낼름 받아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a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자라와 노점상 할아버지 ⓒ 이종원


정력 식품을 파는 곳도 보인다. 나는 생전 처음 굼벵이를 보았다. 주인한테 물었더니 간장질환과 폐질환에 특효약이며 암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거는 것이 굼벵이라고 귀띔해 준다. "쯧쯧… 그래도 저걸 어떻게 먹어." 걸쭉한 농담으로 손님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는 40대 아저씨는 정력식품을 파는 장사꾼이다.

"이거 하나 푹 고아 먹어 봐. 아줌씨가 좋아해." 자라는 목을 내밀고 탈출하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쳐보지만 주인이 발로 툭치는 바람에 또 다시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불쌍한 자라.'

"오늘따라 손님이 하나도 없네." 잡화를 팔고 있는 할아버지의 푸념소리가 저 멀리까지 들린다.

a

달래를 장터에 내다 팔고 있는 할머니 ⓒ 이종원


산에서 캐온 달래를 곱게 다듬어 팔고 있는 할머니의 미소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 있다. 굵은 주름에는 세월의 고단함이 패어 있고, 겨우 두개만 남아 있는 이빨이지만 그 입가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달래를 캐느라 이 산 저 산 헤매고 다녔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는 천원짜리도 잘 보이지 않아 지폐를 두 손에 잡고 하늘에 비쳐 보고 있다.

"오래 사셔요. 할머니."
"고마우이. 젊은이."

그 무거운 과일 상자에서 과일을 일일이 꺼내 예쁘게 정리해 놓았다. 오늘 팔리지 않으면 또 다시 담아가야 한다. 초로의 할머니가 구두 한켤레 신어 보고 아이들 마냥 좋아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평장은 북평번영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하루 5백원에서 5천원까지 자릿세를 받는다고 한다.

a

신장개업한 장터국밥집 ⓒ 이종원


국밥집이 새로 오픈했다. 종이로 만든 화환이 줄지어 있어 촌스럽게 보이지만 역시 시골 장터에는 잘 어울린다. 바람 풍선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지만 손님들의 시선은 예전만 못하다. 개업 떡 하나 먹어 보라고 권하는 주인장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차 있다.

a

거리의 음악방송 ⓒ 이종원


역시 장터에는 뽕짝 음악이 빠지면 왠지 서운하다. 이름 모를 가수의 얼굴이 박힌 테이프에는 먼지가 끼었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은 어깨가 들썩거리기에 충분하다.

a

아들과 함께 항아리를 팔고 있는 할머니 ⓒ 이종원


항아리를 팔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들이 트럭으로 항아리를 시장에 놓아 주고 할머니가 항아리를 팔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아들이 어머니에게 외친다. "엄마. 사진 찍으니까 브이 자 해 봐."

a

강원도의 은근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메밀묵밥 ⓒ 이종원


때가 되니 배꼽시계가 여지없이 울린다. 북평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인 메밀묵밥을 먹으러 천막에 들어갔다.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천막도 없이 노상에서 쪼그려 앉아 먹었다고 하니….

대접엔 시원스런 육수에 메밀이 가득 담겨져 있다. 거기에 양념장을 넣어 먹는다. 묵밥에 시원스런 열무가 있어 뒷맛이 깔끔하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시골장터에서 말아먹는 묵밥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일이다(묵밥 2천원).

원래 5분의 할머니가 북평장터에서 메밀묵밥을 팔면서 북평의 맛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식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 할머니 4분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할머니가 혼자서 메밀을 말고 싶겠는가? 장터에서 함께 뒹굴던 동료들을 다 하늘로 보냈으니 시장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할머니의 손맛을 보여주고 있다. 동해 사람들도 그걸 참 고마워하고 있다. 하마터면 200년 전통의 메밀묵밥의 맛이 사라질 뻔했으니 말이다.

강원도의 은근한 맛은 북평의 메밀묵밥이 보여 주고 있다. 사라질 것 같으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은 생명력이 배인 메밀 맛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전통과 역사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a

안흥찐빵보다 더 맛있다고 자부하는 북평찐빵 ⓒ 이종원


어렸을 때 시골 장터에서 찐빵 파는 가게가 있으면 괜히 머뭇거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속옷 안쪽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어 찐빵을 시켰다. 속 모르는 손자는 접시에 담겨 있는 찐빵을 전부 먹어 버렸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만 봐도 좋은가 보다. 싱긋 웃으며 찐빵에 설탕을 묻혀 주셨다.

하얀 찐빵의 표면은 할머니 젖가슴처럼 따뜻합니다.
까만 팥고물 맛은 할머니의 꿈결처럼 달콤합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찐빵을 삼켜보았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온다. 찐빵과 함께 할머니의 사랑도 함께 삼켰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a

민초의 얼굴 ⓒ 이종원


달래를 한봉지 팔고 너무나 흐믓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도 있다. 오징어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장을 보고 난 노인들이 짐을 한켠에 놓고 버스를 기다린다. 두리번거리는 할머니도 있고, 담배를 물고 상념에 빠진 할아버지도 보인다.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겹다.

대형 할인마트와 상설시장의 무자비한 공세에 장터는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찾지 않으면 장터는 영영 기억 속으로 사라 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유산이다.

어쩌면 장터에서 보았던 소중한 얼굴들은 칠판에 갈겨 쓴 분필 글씨일 수도 있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글씨가 가루로 휘날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 옛날 향수가 담겨져 있는 장터를 자주 찾아가자. 거기에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