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를 닮은 '반디지치'

내게로 다가온 꽃들(35)

등록 2004.03.24 12:33수정 2004.03.2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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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지치
반디지치김민수

봄꽃의 색깔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색을 말하라면 '청자색'을 꼽습니다. 청자색의 꽃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한데 '보라별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꽃도 청자색이고, 오늘 소개해 드리는 반디지치도 청자색입니다.

이 꽃은 산지의 숲 속이나 숲 가장자리 양지에 피어나는 꽃인데 저는 해안가 모래밭에서 만났습니다. 해안가 모래밭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에서도 피고 지는 꽃들이 있으니 반갑기만 합니다.


김민수

꽃의 피어있는 모습이 반딧불이와 닮았다고 하여 반디지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금 도시에서는 반딧불이를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시골에서도 농약의 과다사용으로 인해서 반딧불이를 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반딧불이는 깜깜한 밤일수록 아름답게 빛납니다. 반디지치도 아직 꽃이 흔하지 않은 계절, 꽃을 피우기 쉽지 않은 해안가에서 피어나 그 희소성으로 인해서도 아름답습니다.

반딧불이가 깜깜한 밤을 별빛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연출하듯이 작디작은 반디지치도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의 꽃들과 어우러져 땅에 별을 박아 놓은 듯 청자색의 특이한 빛으로 수풀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김민수

피어나기 시작하는 몽우리는 완연한 보랏빛입니다. 그리고 만개하면 파란색에 가까운 색감을 지니는 꽃입니다. 줄기에서 꽃 몽우리를 만들고 이내 꽃을 피어난다는 것도 산고의 고통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마냥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이제 겨울의 흔적을 하나 둘 벗어버리는 산야를 바라보노라면 판도라 상자에 있는 희망이라는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김민수

그렇게 하나 둘 모이고 모여 꽃밭을 이루고, 신새벽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처럼 역사의 신새벽도 우리에게 다가오겠죠?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꿋꿋할 줄 알고 어울릴 줄 아는 모습들로 인해서 꽃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면 아프던 마음도 조금은 위로를 받고, 삶이란 그저 대충 살아서는 안 되는 거구나 깨닫게 되니 산야의 꽃들에게로 다가가 눈을 맞추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김민수

꽃은 피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다했다 말하지 않습니다. 피어나기까지의 모든 시간들을 접어두고 화려했던 지난날에 연연하지 않고 때론 상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곳,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고난의 흔적 같은 상처를 부여안고도 넉넉하게 서있는 꽃을 보면 우리 사람들은 너무 나약한 것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상처 없는 사람이 없을 진데 고난의 상황이 오면 왜 자기에게만 이런 고난이 주어지느냐고 신에게 항변을 합니다.

그러나 절망, 고난을 이겨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압니다.

김민수

다른 이름으로는 반디개지치, 자목초, 지선도라는 속명도 갖고 있습니다. 생김새나 쓰임새에 따라서 지어진 이름일 것입니다. 뿌리와 이파리 모두 약재로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반딧불이의 빛처럼
광풍이 이는 험한 바다에서 희미한 등대의 불빛이 생명의 빛인 것처럼
너도 그렇게 빛이 되어라
그리하여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이 어둠에서 갈 길을 모를 때
작은 빛이 되어라

빛은 반드시 커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춰야 할 그 순간에 빛으로 있으면 되는 법이다
어둠이 득세할수록 거센 바람이 불어올수록
빛을 비춘다는 것이 어렵겠지만
빛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기 때문이다
빛으로 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작시/'반디지치'에게>


김민수

오늘 우리의 역사는 반디지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예수의 말씀이 나의 삶에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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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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