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도 늙어서도 '할미꽃'이랍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36)

등록 2004.03.26 22:45수정 2004.03.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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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할미꽃김민수
흰색 털로 덮인 열매 모습이 할머니의 흰머리 같아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백두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할미꽃은 어린 시절 양지바른 뒷동산 따스한 양지의 무덤가에서 흔하게 보았던 꽃입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뒷동산에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그런데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도 이 꽃의 이미지가 그렇게 그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이렇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있답니다.
간혹 이렇게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있답니다.김민수
할미꽃은 할머니와 손녀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래서 꽃말도 '슬픔' 또는 '추억', '사랑의 배신'입니다.

어느 산골에 한 늙은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비록 늙었지만 두 손녀를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매일같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큰손녀는 외모는 아주 예뻤으나 마음씨가 나빴고, 작은 손녀는 비록 얼굴이 못생겼지만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고왔습니다.

어느덧, 두 손녀가 곱게 자라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청혼의 대부분은 외모가 예쁜 큰손녀에게 왔고 부잣집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손녀에게도 청혼이 들어왔는데 아주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부잣집으로 시집간 큰손녀와 살게 되었는데 구박이 너무 심해서 가난한 집으로 시집간 작은손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기력이 다해 그만 작은손녀의 집에 당도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걱정되어 찾아가던 작은손녀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렸고, 이듬해 그 무덤가에 할미꽃이 피어났답니다.


김민수
꽃봉오리를 땅으로 향하고 있어서 마치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꽃, 그러나 그 뿌리는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은 대체로 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다스려서 사용을 하면 독이 약이 된다고 하는데 할미꽃은 해열, 소염, 지혈, 지사 등에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할머니가 손녀들에게 쏟았던 사랑의 마음이 다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론 사랑이란 이렇게 일방적인 것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민수
초등학교 시절 할미꽃이 피면 완연한 봄이 왔으니 겨우내 묵었던 발의 때도 개울가에서 벗기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다녀도 좋았습니다. 제주는 조금 일찍 할미꽃이 피었지만 대체로 육지에서는 보리가 막 익어갈 무렵에도 할미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년의 시절 할미꽃에 관해 구전되는 이야기를 듣고는 보릿고개와도 할미꽃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련하면서도 향수에 젖게 하는 꽃인가 봅니다.

김민수
지난해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꼭 보고 싶은 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할미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그 흔하던 할미꽃도 환경파괴로 다 없어졌는가 안타까웠는데, 고사리가 한창 올라올 무렵 고사리를 꺾으러 나선 길에 할미꽃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올해는 혹시나 할미꽃이 피었을까 지난해 보아두었던 할미꽃의 흔적을 찾아 오름을 올랐더니 산자고, 양지꽃과 함께 지천에 피어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모진 세월에도 이렇게 꿋꿋하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주어서 말입니다.

김민수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담다보니 꽃술을 찍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그늘이 지고, 응달을 검은색으로 처리하는 사진기의 특성상 꽃술을 찍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물론 운 좋게 꽃술을 담았습니다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작은 손거울 같은 것을 이용하면 그 속내까지도 잘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꽃을 찾아다니다 이미 때를 놓쳐서 보지 못한 꽃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꼬박 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것이라서 그런지 더 정감이 가고 좋기만 합니다.

김민수
그런데 가만히 보니 꽃만 예쁜 것이 아니라 꽃받침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파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얀 솜털을 송송이 달고 햇살을 담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모습 때문에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인데 어쩌면 꽃의 모양과 줄기의 굽은 모양만 보고 말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보고 또 보다보면 예쁜 구석이 더 많아지는 것, 그것이 자연이요, 꽃입니다.

김민수
아직 봄이 오고 있는 길목인데 벌써 긴 머리칼을 휘날릴 준비를 하며 서서히 꽃 이파리를 접습니다. 어쩌면 짧은 시절, 짧은 날을 살아가기에 더욱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짧은 봄날을 위해서 할미꽃은 잠시 피었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존재하지 않는 듯 보냈습니다. 이렇게 짧은 봄날을 살아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가니 그 삶의 근간이 되는 뿌리가 그리도 깊고 굵은가 봅니다.

김민수
가끔씩은 이렇게 지천에 있는 것이니 서너 뿌리 집에 심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의 식물이 사람의 손을 타기 시작하면 그 맛을 잃어버리니 그 곳 그 자리에서 피고 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좋으니 아이들과 다시 산책을 나올 때, 아니면 내년에 이 곳을 다시 찾았을 때 그 자리에서 만나길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이 오름에 올랐을 때에도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이 오름에 올랐을 때에도 할미꽃이 방긋 웃으며 그들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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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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