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4)

백두대간의 산오뚝이 1

등록 2004.03.25 16:16수정 2004.03.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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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솟구쳐 뻗은 백두대간을 따라 가다보면 높고 높은 산들이 서로 높이 경쟁하며 어깨를 마주대고 모여있는 곳이 있습니다. 가끔 날개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던 선녀들이 그 곳을 지날 때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곤 합니다.

하늘 위에서 그 산들을 좀더 감상하고 싶지만, 혹시나 산을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에라도 띨세라 부끄러운 마음에, 뭉게구름 뒤에 숨어 산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눈 속에서 보일듯 말듯 피어웃고 있는 동백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 깊고 깊은 산 한가운데 하늘을 맞닿은 것처럼 높은 절벽이 하나 있습니다. 절벽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들이 피어있어서 얼핏 보면, 그냥 아무렇게나 서있는 절벽 같지만, 그 뒤편으로 나있는 서천꽃밭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서천꽃밭에는 그날도 여러 꽃감관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달래를 닮은듯 붉게 빛나는 꽃, 그리고 눈송이처럼 하얀 잎을 가진 꽃, 그리고 꽃밭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한 빛이 나는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있었습니다.

그 꽃밭에는 색동옷을 입은 사람들이 꽃들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꽃들에게 물을 주기도 하고 거름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유리로 만든 것 같은 작은 칼로 꽃을 조심조심 따는 사람들, 그 꽃을 받아서 어디론가 바쁘게 달려가는 사람들, 꽃밭을 더 일구느라 밭을 가는 사람들.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꽃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무도 피곤해 보이지 않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하늘에 맞닿아있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게 높은 서천꽃밭 절벽문에 자그마한 꼬마가 나타났습니다. 서천꽃밭에는 낯선 사람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서천꽃밭의 꽃들을 탐내어 찾아와 꽃을 훔쳐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짙푸른 숲을 뚫고 그 절벽문 아래로 그 꼬마가 나타나자, 서천꽃밭의 문 밑으로 연기가 피어나면서, 그 속으로 자그마한 얼굴이 나타나 물었습니다.

“ 무슨 일이냐?”

꼬마가 말했습니다.

“ 저를 모르외다?? 헤헤, 하긴 저도 이곳에 찾아와 본 지가 아주 옛날이라서.”


자세히 보니 키는 짱달막했지만, 나이 어린 꼬마는 아니었습니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털이 드문드문난 머리에 가죽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은 웃음소리가 까마귀들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머리는 네모다란 것이 찰흙으로 대충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모양 같았습니다. 그 머리를 두개 쌓아 세워 놓은 것 밖에 안되어 보이는 작은 몸통은 나무껍질을 닮은 듯, 아니면 바위를 닮은 듯 거무스름했고, 게다가 거무튀튀한 색깔의 사마귀들이 잔뜩 나있었습니다.

그 키 작은 이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길죽한 물건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그것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의 몸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습니다.


“네 놈의 꼬리를 본 것이 참 오랜만이로구나, 산오뚝이, 네가 왠일이냐. 요즘은 도깨비가 되기 위한 수련을 안 받고 있나보지?”

그 사람은 산속에서 나무, 바위와 함께 살고 있는 산오뚝이었습니다. 산오뚝이들은 언제나 커다란 꼬리를 달고 다녔고, 어떤 꼬리들은 땅에 질질 끌리기까지 했습니다. 백두대간을 일구는 기암괴벽들과 아름다운 나무들과 같이 숨쉬고 사는 그 산오뚝이들 중에는 도깨비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 그게 말이외다, 제가 내일 도깨비가 되기 위한 수련이 끝나외다. 제가 어떤 일을 맡게 될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서천꽃밭에서 꽃감관을 도와주는 도깨비가 될지도 모르니 어떻게 일들을 하시나 구경하러 왔네다.“

까마귀 같은 소리를 내며 산오뚝이는 다시 한번 웃었습니다. 연기 속의 얼굴은 말했습니다.

“ 네가 어디서 일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여기서 일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공부는 마치고 장수도깨비의 편지를 가지고 온 다음에나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줄 알고 돌아가라.”

연기 속의 얼굴이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리려 할 때 산오뚝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냈습니다.

“ 잠깐만, 한번 보시다, 장수도깨비님께서 주신 편지외다. 여기 있네다.”

연기는 다시 한번 땅 위로 뿜어올라왔습니다. 산오뚝이가 얼굴을 향해 들고 서있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금강산 만물상에 살고 있는 이 산오뚝이는 내일부터 살오름꽃의 관리를 맡아 일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로 살오름꽃밭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출입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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