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7

영혼들이 사는 바다마을 2

등록 2004.03.31 02:22수정 2004.03.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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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단이 살고 있는 곳은 온통 모래밭 뿐이었습니다. 영혼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아 상당히 어두컴컴한 모래밭일 뿐 어디에도 호종단이 살고 있을 법한 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들은 더 들어가지 못하고 어둑어둑한 그늘이 시작하는 모래밭 끝에 뒷다리를 모으고 앉아 기다렸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저 멀리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숯불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개였습니다. 꺼져가는 숯에 붙어있는 불빛처럼 이글거리는 털을 가진 '수단'이라는 이름의 개로, 호종단이 항상 같이 데리고 다니는 개였습니다. 호랑이들도 그것이 개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뿐이지, 몰랐다면 황소를 닮은 커다란 괴물로 착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단의 불빛을 받아 그림자를 땅에 끌면서 키가 큰 호종단이 나타났습니다. 호종단이 물었습니다.


“날 찾는가.”

호랑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호종단인가?”

키가 큰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들의 대왕이 나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찾는 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이제 이유 없이 바다에 파도를 만드는 일도 힘들고, 심청이 같은 계집아이들 물 속에 빠뜨리기도 진력이 날 지경이야. 요즘엔 비행기란 놈 때문에 사람들이 바다를 돌아다니는 일이 아주 줄고, 게다가 배들이 아주 좋아져서 왠만한 힘으로는 겁도 먹지 않더군. 이 수단이란 놈도 이곳에서는 할 일이 없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 같애, 보이지 않는가? 이 털 좀 보라고. 이 놈 털은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항상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는데, 이제 거의 꺼져가는 것처럼 기력이 쇠해져 가고 있지. 물과는 상극인 놈이 물 속에 살면서 이만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이놈 가슴 속에도 어마어마한 한이 도사리고 있는것 같애. 그 한을 어떻게 풀어줘야하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그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수단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 한마리가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희 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 길을 만들어 놓았오. 시간이 많이 없다. 서둘러 이곳을 나갑시다.”
“알겠지만 난 이곳을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난 이 바다 세계에 살게 되어 있는 영혼이 되었단 말이야. 내가 이 밖을 나가면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대왕님이 그런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나?”

호랑이 한마리는 호리병 한개를 내려놓았습니다.

“서천 꽃밭에서 가져온 살오름꽃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따는 즉시 너와 수단에겐 다시 한번 육체를 지닐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온다. 육지에 올라가면 이보다 더한 상도 받을 수 있다.”

호종단은 그 병을 집어들었습니다. 그 병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던 대로 계속 살고자 한다면 어떡하겠는가? 생각보다 이곳은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거든. 특별히 걱정할 일도 없고, 아주 평화롭지. 전쟁도 없고, 싸움도 없고, 배고픔도 없고….”

그 얘기를 들은 수단은 호종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금니를 내보이면서 으르렁 거렸습니다. 호종단은 수단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주었습니다.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이 곳에 남든지 아니면 우리와 함께 인간계로 가든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소. 대왕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하늘도 바다도 인간계도 전부 그 분의 소유가 될터인데, 이 바다 밑 마을에 살면서 누가 당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준 적이 있었소? 이 모래밭에 살면서 영영 자신의 존재를 기억 속에 묻히게 하고 싶은게요? 좋은 시간이 왔오. 하늘과 바다의 소유자가 될 분과 함께 일할 귀중한 순간이 온게요.”

호종단을 말 없이 수단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찢어버린 그 역술서를 기억하나?”

호종단을 비로소 고개를 들었서 그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역술서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그 역술서만 있으면, 이 지구상의 강물은 전부 너의 소유가 되지? 풍랑에 가라 앉아서 제주 앞바다에 물귀신이 되었지만, 이제 그 역술서로 인간 세계에서 이름을 다시 펼칠 날이 돌아온 것이다.”

호종단은 일어나 호랑이가 준 병을 손에 쥐어잡았습니다.

“그 역술서를……, 대체 누가 가지고 있느냐?”

“어서 함께 나가자, 역술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호랑이가 앞서 나와 말했습니다.

“못 믿겠다면 여기 계속 남아 있어. 어차피 조금 후면 이곳도 전부 대왕님의 손에 들어오고 그럼 전부 물바다가 된다. 그때 다같이 소멸되어 버릴 게야, 지금 인간 세상에 나가 죽나 이 바다 밑 세상과 함께 사멸되나 아무런 차이가 없을 텐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불과 몇 년 뒤일 거야. 당신의 역술서를 차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솔직히 우리들에겐 별 상관이 없소. 대왕님에겐 그 역술서 말고 또 다른 계획이 있으니까.”
“그게 무엇인가.”

호종단이 물었습니다.

“그건 우리도 모른다네…… "

다른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호종단은 손에 힘을 주어 들고 있던 병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핏빛으로 빛나는 그림자와 달빛처럼 하얀 색으로 빛나는 그림자가 병 주둥이를 통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날아다니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호종단의 콧 속으로 사악 들어가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호종단에 영혼에는 뼈가 붙고 살이 붙더니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온몸이 짓눌리는듯 고통을 느끼며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으려 했습니다.

"나가자, 이 바다의 압력 때문에 지탱하기가 힘들 거야.”

호랑이 한마리는 호종단을 입에 물고 가마가 있는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호종단을 데리고 나가는 호랑이들과 그 뒤를 쫓고 있는 수단을 보는 영혼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호랑이들은 다시 그 소용돌이를 타고 물 밖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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