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 예수상(1)문순 그림
내가 경기도 남양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성도 중에 이아무개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50대 중반이셨는데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 딸 둘을 성년으로 키울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오셨습니다. 몸은 수명이 다한 기계처럼 망가져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로, 늘 육체의 고난을 천형으로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통이 심장병에서 시작됐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고, 자녀들은 어떻게 하든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술비를 마련해 심장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 때가 바로 고난 주간이었습니다.
목사로서 나는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고난을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 성도가 심장수술을 한 병원은 그 방면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수원의 A병원이었습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됐고, 회복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아내와 나는 병원 심방을 갔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는 낮 12시와 저녁 6시 두번밖에 없었는데,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면회시간이 조금 지난 낮 12시 40분이었습니다. 차가 많이 밀려서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면회 시간을 놓친 것입니다.
아내와 내가 허탈해 하면서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오든지, 아니면 내일 다시 오든지 해야겠다며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환자실 담당 안내원 아저씨가 면회 시간을 놓친 분들을 위해 오후 2시에 딱 10분 동안만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면회 시간을 놓친 사람이 우리말고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대여섯명의 여인들이 가방을 들고 내렸습니다. 또 그 틈바구니에 정장 차림의 남자 한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여자가 중환자실 안내원에게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다가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목사님께 꼭 안수 기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 우리 목사님만 특별히 들여 보내 주세요!"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안내원 아저씨는 단호하게 병원 규칙에 따라 그 어떤 사람도 중환자실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설명했습니다. 순간 무거운 공기와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정장 차림의 멀쑥한 신사가 담당 안내원에게 다가서더니 입을 손으로 가리고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나 목사인데, 우리 교인 중에 나한테 꼭 안수 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 위독한 환자가 있어요. 나 좀 들여보내 주세요. 좀 부탁합니다."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아니, 지금 내가 바빠서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좀 들여보내 주세요."
"그럼, 딱 5분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