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부터 자성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목사의 격(格)

등록 2004.04.02 11:28수정 2004.04.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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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두 여자가 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떠들기 시작하는데 쉬지 않고 속닥이는 것이었습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 참고 있었는데, 귀에 익숙한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두 여자는 교회와 목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는 바로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목사라는 사실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들은 주로 목사의 흉허물에 대한 얘기를 노골적으로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좀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하려다 내 입은 슬그머니 닫혀졌고, 본의 아니게 두 여자의 얘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으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두 여자의 대화는 꼭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a 목판화. 예수상(1)

목판화. 예수상(1) ⓒ 문순 그림

내가 경기도 남양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성도 중에 이아무개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50대 중반이셨는데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 딸 둘을 성년으로 키울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오셨습니다. 몸은 수명이 다한 기계처럼 망가져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로, 늘 육체의 고난을 천형으로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통이 심장병에서 시작됐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고, 자녀들은 어떻게 하든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술비를 마련해 심장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 때가 바로 고난 주간이었습니다.

목사로서 나는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고난을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 성도가 심장수술을 한 병원은 그 방면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수원의 A병원이었습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됐고, 회복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아내와 나는 병원 심방을 갔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는 낮 12시와 저녁 6시 두번밖에 없었는데,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면회시간이 조금 지난 낮 12시 40분이었습니다. 차가 많이 밀려서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면회 시간을 놓친 것입니다.


아내와 내가 허탈해 하면서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오든지, 아니면 내일 다시 오든지 해야겠다며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환자실 담당 안내원 아저씨가 면회 시간을 놓친 분들을 위해 오후 2시에 딱 10분 동안만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면회 시간을 놓친 사람이 우리말고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대여섯명의 여인들이 가방을 들고 내렸습니다. 또 그 틈바구니에 정장 차림의 남자 한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여자가 중환자실 안내원에게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다가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목사님께 꼭 안수 기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 우리 목사님만 특별히 들여 보내 주세요!"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안내원 아저씨는 단호하게 병원 규칙에 따라 그 어떤 사람도 중환자실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설명했습니다. 순간 무거운 공기와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정장 차림의 멀쑥한 신사가 담당 안내원에게 다가서더니 입을 손으로 가리고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나 목사인데, 우리 교인 중에 나한테 꼭 안수 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 위독한 환자가 있어요. 나 좀 들여보내 주세요. 좀 부탁합니다."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아니, 지금 내가 바빠서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좀 들여보내 주세요."
"그럼, 딱 5분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안됩니다."


a 목판화. 예수상(2)

목판화. 예수상(2) ⓒ 문순 그림

그러자 목사는 발끈 화를 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교인이 죽어 간다는데 그만한 사정도 안 들어줘!"

그러자 이번에는 같이 왔던 여자 교인들이 손짓을 해가며 덩달아 따발총 공격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중환자실 대기실이 갑자기 요란한 시장 바닥이 되버 버렸습니다. 안내원 아저씨와 말이 잘 안 되자 목사는 못 참겠다는 것이 비상계단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여자 교인들도 목사를 따라 우르르 나갔습니다. 중환자실 안내원 아저씨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면회 시간을 놓치고 내 옆자리에 앉아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리던 한 사람이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요즘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문제가 많아요. 지하실에 가면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이 있는데요, 목사라는 사람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아무 때고 떼를 지어 들어와 큰 소리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제 멋대로 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거듭니다.

"목사면 다야. 목사가 무슨 암행어사라도 되나?"

잠자코 있던 안내원 아저씨가 얼굴을 조금 펴더니 말합니다.

"면회 시간이 지나고 와서 아무 때고 면회시켜 달라고 떼쓰는 사람 중 90%는 예수 믿는 교인들이에요."

아내와 나는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자리를 피한 다음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1층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심한 모멸감이 몰려왔습니다. 어찌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 되어 한달 내내 나를 괴롭혔습니다.

목사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목사의 시세가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a 목판화. 예수상(3)

목판화. 예수상(3) ⓒ 문순 그림

옛날에는 '목사'하면 가장 깨끗한 사람,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유년 시절, 마음이 착하고 반듯한 애들을 보고 "너 이담에 커서 목사 되라"고 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목사는 지역의 유지로서 모든 공식 행사에 초대 받았고 가장 합리적인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이해타산에 치우치지 않고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존경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미국 비자를 발급받는데, 목사라고 하면 믿어주질 않습니다. 조건이 가장 까다롭습니다. 미국 비자 발급을 전담하는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한국 목사들을 제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목사라고 하는 이유로 특혜를 받으려고 했다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한 목사를 비방하는 글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권위가 심각할 정도로 훼손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의 의도는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뜻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목사는 사람들 앞에 군림하려는 모습이 너무 강했습니다. 목사는 섬김의 종입니다. 더 낮아져야 합니다. 오직 세상과 사람을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물론 목사도 인간입니다. 따라서 이 두가지를 잘 병합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지금까지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통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더 이상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누가 초래했다고 생각합니까?

이 글을 통해 나는 목사를 공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바리새인의 허위 의식이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대접받고 섬김을 받으려는 그리스도의 정신에 반(反)하는 속물 근성이 있습니다.

a 목판화. 예수상(4)

목판화. 예수상(4) ⓒ 문순 그림

사람들은 목사에게 수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요즘 항간에 문제가 되는 목사의 고액 생활비보다 이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목사에게 섬김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고, 불법적인 일을 합법적으로 위장하는 그런 처세술에 사람들은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목사의 무임승차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갑니다. 그것이 종교의 생명력입니다. 더 이상 휘황찬란한 목사의 가운 뒤에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평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목사는 지금 자기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자기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가? 목사로서 고매한 품위를 지키고 있는가? 자신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는가? 분명한 삶의 정체성과 사명 의식이 있는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는가?

시나브로 4월의 길목에 접어들었습니다. 머지않아 앞산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필 것입니다. 고난과 부활이 교차되는 계절, 저 자신부터 깊이 자성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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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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