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끌던 달구지 또는 구루마(일본말) 위에서 어릴 적 생각나게 쿵쾅쿵쾅 마구 굴리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김규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에 쑥 된장국, 갈치 두 토막, 싱건지 뿌리를 우려낸 생채, 양념고추, 취나물 무침이 다다.
"목마른께 물이라도 한잔 드시고 잡술라요."
"그려."
풀었던 보자기가 바람에 나풀거린다. 젓가락으로 눌러 놓고 밥을 떠보지만 나물 반찬으로 살아온 내외지만 입맛이 돌지는 않은가 보다.
"거기 대접 좀 줘봐."
"왜라우? 비벼드실라요?"
"응."
큰아들 놈은 이 골짜기로 일을 하러 오면 도랑에서 피라미를 손으로 열댓 마리에 징거미(민물새우로 토하<土蝦>보다 몇 배나 큼)를 잡고 돌을 들춰 가재 몇 마리를 빠트리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아내는 쌀 반되에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를 준비하고 나뭇가지를 주워와 백철 솥에 넣고 푹푹 죽을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봄철에 천렵(川獵)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 때가 아이들 키우는 재미도 있었고 서로 먹겠다며 머리를 쳐박고 솥 단지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터에 천신(자신의 차지)이 있을지 걱정이던 때가 엊그제 같다. 거무튀튀하던 가재와 징거미가 발갛게 붉은 고추처럼 익으면 입맛을 확 돌게 했다. 그 때 막걸리 한 사발 먹으면 힘이 절로 나질 않았던가.
"직아부지 셋째가 온다고 전화 왔습디다."
"언제?"
"이번 주 공일(公休日)에 며느리랑 아그들이랑 한꾼에 온다요."
"별 일 없다그제?"
"예."
춘분이 지났으니 낮 길이가 더 길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수(午睡)가 밀려온다. 풀 밭 위에 잠깐 누워서 하늘을 보니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간다. 비를 한 번 몰고 오면 좋으련만.
오후 내내 논갈이가 지속되었다. 보이지 않던 그림자도 자꾸만 길어져 온다. 오후 봄바람은 거침없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오는 수도 있어 주변을 휘감아버리기도 한다.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걸리며 발그스레 숨어버릴 즈음 하루를 마감하는 게 좋다. 그래야 내일 또 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욕심부린다고 한 시간 더 하다보면 소도 사람도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도 오늘은 쟁기와 지게, 멍에를 논두렁에 놔두고 소만 데리고 가면 되니 내일 아침까지는 한결 수월한 여정이 될 듯 싶다. 영감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쇠죽에 겨를 듬뿍 넣어서 끓여주고 밥 한 술 뜨고 일찍 잠을 청했다. 하루 내내 곁에서 지켜보던 안주인은 내일 먹을 반찬을 만드느라 딸가닥딸가닥 밤이 깊은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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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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