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자유의 삶을 사는 '갯무'

내게로 다가온 꽃들(41)

등록 2004.04.12 13:21수정 2004.04.1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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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무
갯무김민수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먹을 것을 찾아 유랑걸식하는 10대 청소년을 지칭한 '꽃제비'의 심정을 담은 `꽃제비의 노래'가 북한에서 널리 유행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노래의 전문을 보는 순간 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불렀던 '고아'라는 노래와 많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이제 보니 나 홀로 남았다
낙엽 따라 떨어진 이 한 목숨
가시밭을 헤치며 걸었다
열여섯 살 꽃 나이에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배고플 땐 주먹을 깨물었다
목마를 땐 눈물을 삼켰다
의리로서 맺어진 우리의 정
가시밭을 헤치며 걸었다
열여섯 살 꽃 나이에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인가요
누구의 잘못인가요
<꽃제비의 노래>


김민수
갯무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빠져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소개해 드린 '꽃제비의 노래'요, 대학시절 불렀던 '고아'라는 노래였습니다.

해안가나 길가, 밭과 길의 경계를 이룬 돌담의 길가로 흐드러지게 혹은 간혹 피어있는 보랏빛이나 흰색이 감도는 꽃입니다. 제주에서는 양지바른 곳에서는 겨울에도 그 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생명력이 뛰어납니다.

김민수
갯무는 원래 농작물인 무우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씨앗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밭의 경계선 바깥으로 그들을 옮겼고,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밭에서 가꿔지는 무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유의 바람을 타고 그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를 그들의 삶의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해안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바람에 날려온 유채꽃과 함께 갯무를 볼 수 있습니다.

김민수
어쩌면 버려진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유를 찾아 스스로 떠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젠 완연한 야생화이면서도 야생화로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더 이상 식용작물일 수도 없는 변방의 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갯무에 '바람 따라 자유의 삶을 사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자그마한 몸짓으로 거세고 짠 바닷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갯무를 보면서 험난한 세상사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역사의 주체로 꿋꿋하게 서있는 민중들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김민수
위에서 말씀드린 '꽃제비'들이나 아니면 '고아'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소년소녀 가장들을 포함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을 강요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봅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지만 동시에 그들이 그 고난으로 인해 더욱 강인한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지금이 고난이 없었다면'이라는 아름다운 고백들을 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김민수
갯무는 뿌리와 잎을 모두 식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맛은 무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 쓰임새는 무처럼 해수, 소화제, 기관지염 등에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그 모양은 변했지만 더 예쁜 색을 간직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그 본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김민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렵기 때문에 그 길을 피해서 다른 길로 가고' 어떤 이는 '어렵기 때문에 더 열심히 그 길을 간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갯무의 경우는 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민수
가끔씩 바람처럼 자유로이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러한 꿈들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고, 그냥 피식 웃는 상상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이젠 청년기를 지나 안주하려는 기성세대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형식을 파괴하고, 남들과 똑같은 것은 견디지 못하던 청년시절은 저 먼 추억의 시간들이고 이제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측은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변형된 삶'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갯무가 그 본성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청년기에 가졌던 그 꿈들과 맑은 생각들의 근본은 이 몸이 흙에 묻히는 그 날까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수많은 고난의 시간들도 기쁘게 감내하는 들꽃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들꽃, 변방의 들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우리의 진정한 이웃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보듬어야 할 사람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임과 그들을 보듬고 있는 사람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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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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