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결백, 절세미인의 '왕벚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40)

등록 2004.04.10 09:08수정 2004.04.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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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봄에 피는 꽃들 중에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꽃들이 많습니다. 벚꽃도 그렇습니다. 미묘한 색깔의 차이와 잎새의 모양, 꽃술이나 꽃받침의 모양에 따라 벚꽃자체의 이름도 달라지지만 배꽃이나, 복숭아꽃, 매화 등도 함께 모아놓고 구분해 보라면 구분이 잘 되질 않습니다.

그 꽃이 그 꽃 같지만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재미있고,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으면 더 좋고, 시나 노래, 꽃말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벚꽃(Wild cherry tree)의 꽃말은 '청렴결백, 절세미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왕벚꽃'은 청렴결백과 절세미인의 업그레이드형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라의 일꾼들을 뽑는 총선에서 벚꽃의 꽃말을 닮은 이들이 당선되어 국민들을 위해서 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벚나무는 세계적으로 약 2000여종이 분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한라산과 전국 산야에 2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해군항제로 잘 알려진 진해시의 벚나무는 대부분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라고 합니다. 왕벚나무는 다른 종보다 꽃의 양도 많고 화려해 벚꽃 중에 제일이라 하여 '왕(王)'이라는 글자가 붙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나라의 왕벚나무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 국화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미화용으로 심기 시작했고, 벚나무 단지를 만들어 휴양지로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당연히 광복 후 시민들은 벚나무를 일본의 국화라 하여 베어 내기 시작했는데, 1962년 식물학자(박만규, 부종휴)에 의하여 진해에 가장 많았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제주도임이 밝혀짐으로 인해 벚꽃을 되살리는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오늘 날 벚꽃축제하면 진해군항제를 떠올리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김민수
벚나무의 열매를 '버찌'라고 하는데 앵두보다 조금 작고 까만데 잘 익은 것의 맛은 새콤하고 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 흑앵두라고 하여 혀가 새까맣게 되도록 따먹기도 했습니다.


산야에서 자생하던 벚나무가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꽃 때문이 아니라 원래는 벚나무의 재질이 치밀하고 말라도 비틀어지지 않아서 가구재나 건축내장재로 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꽃까지도 얼마나 예쁜지 꽃말처럼 '절세미인'입니다.

김민수
벚꽃이 한창 흐드러진 계절인 4월에 러시아의 극작가 체홉 서거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벚꽃동산>이 공연 중이라고 합니다.


체홉을 모르고 연극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체홉의 작품은 연극영화과 졸업공연 레파토리 순위를 다투고, 연극배우들이 평생에 꼭 한번쯤은 출연하고 싶은 공연 중에 하나로 항상 꼽힌다고 합니다. 그 <벚꽃동산>의 줄거리를 이야기 안 할 수가 없군요.

김민수
러시아에서는 5월이 벚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5월의 그 어느 날 라네예스까야라는 여지주(女地主)가 소유한 벚꽃동산에도 꽃은 피기 시작합니다. 러시아 특유의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 저녁, 여지주 라네예브스까야가 파리로부터 이 벚꽃의 영지(領地)로 돌아옵니다.

그가 돌아올 때에 예전 이 여지주의 농노의 아들인 보빠이힌과 이웃 지주인 삐시지끄와 여지주의 딸 아아냐를 사모하는 대학생 뜨로피이모프 등이 라네예브스까야가를 맞이하러 벚꽃동산에 모여듭니다.

이 아름다운 벚꽃동산의 여주인 라네예브스까야는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했었습니다. 그녀는 결혼에 실패하고 자식까지 잃자 젊은 연인과 함께 파리로 떠나갔던 것이었으나 파리 생활은 그녀에게 행복한 날보다 슬픈 날이 많았습니다. 결국 연인으로부터 배신 받은 상처를 안고 다시 벚꽃동산으로 돌아온 것이죠.

김민수
그러나 그녀는 막대한 빚에 몰리게 되고 그 빚을 청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은 것은 벚꽃동산의 경매가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경매일은 정해졌고 옛날은 벚꽃동산의 농노의 아들이었지만 거부가 된 상인 로빠아힌의 손에 벚꽃동산은 넘어가고 맙니다. 신흥 부르조아지 로빠아힌의 손에 벚꽃동산의 영지를 잃고 그네들은 정든 벚꽃동산에서 떠나야했습니다.

벚나무를 찍는 도끼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가운데 그들 일가는 뿔뿔이 헤어져 그녀는 다시 파리의 옛 연인을 찾아 떠나고, 그녀의 오빠 가아예프도, 바아랴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가는데 지주의 딸 아아냐를 사모하는 대학생 뜨로피이모프는 낡은 생활과의 작별을 고하고 새 생활을 찾아 떠난다는 줄거리입니다.

김민수
벚꽃은 일본어로 '사꾸라'라고 합니다.

일제 36년의 식민지를 보냈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이 '사꾸라'라는 말은 '매국노 또는 친일파'를 지칭하는 하나의 상징어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듣는 일본어의 잔재는 우리 주변에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면 가꾸목(각목. 각재), 곤로(풍로. 화로), 구루마 (수레), 노가다((공사판)노동자), 다라이(함지. (큰)대야), 다마 (알. 구슬), 다쿠앙(단무지), 덴뿌라 (튀김), 사시미 (생선회), 시다 (밑일꾼. 보조원), 쓰메키리(손톱깎이), 아나고 (붕장어), 요오지 (이쑤시개), 우와기((양복)저고리), 자부동 (방석) 등 너무도 많아서 자신도 모르게 우리말인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많이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다시 벚꽃의 꽃말과 나무의 쓰임새로 돌아와 봅니다. 그 꽃말이 '청렴결백, 절세미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되어도 뒤틀리지 않아 가구재나 건축재로 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꽃까지 아름다웠으니 '금상첨화'인데 이렇게 고루고루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 쓰임새 있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김민수
벚꽃의 아름다움은 보름을 가지 못합니다. 피었는가 싶으면 이내 봄바람에 꽃눈을 날리고 꽃눈이 날리는가 싶으면 이파리를 냅니다. 그 과도기는 보기에 따라서 조금은 추한 모습도 있습니다만 꽃들을 다 떨구어내고 푸른 이파리를 내고, 뜨거운 햇살에 익어 가는 버찌를 내어놓는 모습은 여느 나무들과 다르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민수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아주 시야가 너른 들판에 홀로 서 있습니다. 아주 오래 된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사진기로 담는 …. 이 땅 어딘가에 있을 터인데 아직 만나질 못했습니다.

함께 있어 아름답고, 홀로 있어도 아름다운 모습일 듯하여 그 아름다운 꽃의 짧음을 아쉬워하게 하는 꽃입니다. 벚꽃이 지면 이내 봄과 여름이 혼재 된 계절이 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봄의 기운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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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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