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걸쳐놓고 쉬고 싶은 곳, 무량사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48)-만수산 무량사

등록 2004.04.20 08:32수정 2004.04.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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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곳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물감이 보관되었나 참 경이롭다. 거무튀튀하기만 했던 대지 여기저기서 툭툭 솟아나는 새싹과 꽃들은 물감을 한입 가득 물고 있었나보다. 분홍 물감, 노랑 물감 그리고 파랑 물감은 물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색의 물감들을 연일 쏟아낸다.

a 아름드리 일주문 기둥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투박하고 색 바랜 기둥에서 세련된 맛은 찾을 수 없지만 은은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왠지 기대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드리 일주문 기둥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투박하고 색 바랜 기둥에서 세련된 맛은 찾을 수 없지만 은은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왠지 기대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임윤수

번뇌에 따라 색감조차 달라질 게 분명하지만 봄에 와 닿는 색감은 행복과 희망의 색깔이다. 서두르지 않으며 조금씩 산하를 그리는 자연의 섬세한 붓 놀림에서 여유와 기다림을 배운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한낮의 뜨거움이 그 정도를 더해 가면 거기에 맞춰 색감이 달라지고 채워지는 빛깔도 달라진다.


가을 산하의 아름다움이 농염한 오색 비단을 두른 대감 댁 마님의 풍요로움과 넉넉함이라면, 봄 산하의 아름다움은 다홍치마에 연둣빛 저고리를 입은 새댁의 청순함과 같다.

눈길만 흘겨도 우수수 떨어질 듯 살랑거리는 오색의 낙엽들이 족두리에 찰랑거리는 칠보의 장식물을 닮았다면, 피어나는 봄날 새싹들은 새댁이 두른 행주치마에 놓여진 수의 소박함과 가지런함을 닮았다.

청순한 빛깔의 엷은 연둣빛 옷감에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산 벚꽃이 수놓은 듯 펼쳐진 봄날의 산하. 새댁의 수줍음처럼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피어나는 게 봄날 산사에서 맞는 봄의 아름다움이다. 바늘에 찔린 손가락에서 흘린 피처럼 또렷이 빨간 선홍색 꽃들이 연둣빛 산하를 한결 곱고도 청순하게 장식한다.

a 왼쪽으로 접어드는 다리를 건너 계곡 경사면을 따라 들어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봄 가뭄 속에도 돌 속으로 흐르는 도랑물 소리는 목탁소리처럼 길손을 안내한다.

왼쪽으로 접어드는 다리를 건너 계곡 경사면을 따라 들어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봄 가뭄 속에도 돌 속으로 흐르는 도랑물 소리는 목탁소리처럼 길손을 안내한다. ⓒ 임윤수

산길 따라, 계곡 따라 걷다 보면 산기슭 어디인가에는 다홍치마폭에 살짝 드러난 꽃신처럼 봄 햇살을 한껏 받고 있는 산사들이 있다. "뎅그렁∼ 뎅그렁∼" 바람과 놀아주던 풍경소리가 "어서 와, 어서 와" 하며 반겨주는 조용한 산사.

충남 부여에서 40번 국도를 따라 대천(보령)을 얼마 남기지 않은 외산면 만수산엔 '무량사'란 절이 있다. '만수산'이란 산 이름이 혀끝에 툭 걸리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느낌이다. 기억을 더듬으니 '하여가'라는 시조가 생각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로 이어지는 바로 그 '하여가'에 '만수산'이 등장했다.


a 두 눈 부릅뜨고 속세의 번뇌를 끊어줄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이문으로 들어서면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보인다.

두 눈 부릅뜨고 속세의 번뇌를 끊어줄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이문으로 들어서면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보인다. ⓒ 임윤수

알고 보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때, 이방원이 고려 충신 정몽주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하여가'에 넣었던 그 '만수산'은 개성 서쪽에 있는 '송악산'의 다른 이름이다. 어쨌거나 그리 낯설지 않은 '만수산'이란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산, 성주산자락 만수산에는 '무량사'가 있다.

만수산에 자리하고 있는 '무량사'는 대천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진 보령군의 접경지, 행정구역상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자리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에 소속된 말사로 신라 말, 범일(梵日) 스님이 창건하고 여느 고찰들처럼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으며 재건되고 보수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진입로를 조금 걸어 들어가면 '萬壽山 無量寺(만수산 무량사)'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지나게 된다. 심한 봄 가뭄에도 돌 틈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귀와 마음에 낀 세속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주며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목탁소리처럼 들린다. 왼쪽으로 접어드는 다리를 건너 계곡경사면을 오르면 천왕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에 석등과 오층석탑이 보이고 그 뒤로 극락전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a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2층 구조의 건물을 오랫동안 지탱하였을 늙은 기둥은 등이라도 굽을듯하나 꼿꼿한 자태를 흩뜨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2층 구조이나 내부는 툭 터진 통층으로 되어 있다.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2층 구조의 건물을 오랫동안 지탱하였을 늙은 기둥은 등이라도 굽을듯하나 꼿꼿한 자태를 흩뜨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2층 구조이나 내부는 툭 터진 통층으로 되어 있다. ⓒ 임윤수

고건축으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도 극락전의 다른 표현이다. 극락전을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전이라 부리기도 하는데, 과거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전각이지만 이렇듯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극락전 거대한 건물을 오랫동안 지탱하였을 법한 늙은 기둥은 등이라도 굽었을 듯하나, 꼿꼿한 자태를 흩뜨리지 않았다. 빛 바랜 단청과 기와에선 웬지 어머니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지은 지 얼마 안 되거나 칠이 새로 된 산뜻한 단청에선 새색시 같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투박한 모양새에 거칠고 갈라져 노인의 피부처럼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손때 묻어 반들반들 해진 기둥이나 기와에서는 산뜻함보다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푸근함을 동시에 느낀다. 무량사 극락전 기둥과 전각들이 그렇다. 마음을 걸쳐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량사는 숨가쁘게 산을 올라야 할 첩첩산중에 있지도 않고 이름난 여느 대찰처럼 화려하거나 거대한 사찰도 아니다. 표주박이 동동 떠있는 옹달샘처럼 심신이 갈증을 느낄 때, 들른 김에 걸터앉아 잠시 마음을 놓았다가 '툭' 털고 일어나기 딱 좋은 그런 크기다.

a 명부전 뒷산으로 아침해가 솟았다. 아침산사에서 맞이하는 해오름이 좋다. 이 순간만은 어떠한 근심 걱정도 다 잊고 환희의 삼매에 빠지게된다.

명부전 뒷산으로 아침해가 솟았다. 아침산사에서 맞이하는 해오름이 좋다. 이 순간만은 어떠한 근심 걱정도 다 잊고 환희의 삼매에 빠지게된다. ⓒ 임윤수

무량(無量)이란 '셀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는 말이겠다. 과학이 발달하고 정밀 계측기들이 연달아 등장하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셀 수 있을 듯하나, 셀 수 없는 것들도 많다. 어줍잖은 표현으로 그 정도를 나타내려 애쓰지만 결국 셀 수도 없고 나타낼 수도 없는 게 많다.

사랑의 크기도 재거나 셀 수 없으며 정이나 미움, 지혜의 크기도 재거나 셀 수 없다. 이에 반해 사람의 목숨은 손가락 몇 번 돌려가며 접었다 폈다 하면 셀 수 있을 만큼 유한하다. 이 유한한 목숨을 셀 수 없고, 잴 수 없을 만큼 지혜가 가득한 무량의 세계 극락정토로 지향케 하는 곳이 바로 '무량사'가 갖는 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무량사의 대웅전 격인 극락전은 보물 제35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법당 안에는 완주 송광사 좌불 규모에 버금가는 아미타여래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굳이 그 규모를 말하라면 국내에서 2번째 크기의 실내 좌불이 아닌가 모르겠다.

극락전은 무량사의 대표적 법당으로 겉으로 보기엔 2층 구조의 목조건축물이지만 내부는 위아래 탁 트인 통층으로 돼 있다. 이러한 통층의 극락전 내에 주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불로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a 어둠으로 상징되는 어리석음을 쫓아내고 밝음, 즉 팔정도를 이뤄 깨달음의 불, 진리의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갖고있는 석등은 8각 기둥을 하고 있어 수행과정의 심오함을 잘 담고 있다.

어둠으로 상징되는 어리석음을 쫓아내고 밝음, 즉 팔정도를 이뤄 깨달음의 불, 진리의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갖고있는 석등은 8각 기둥을 하고 있어 수행과정의 심오함을 잘 담고 있다. ⓒ 임윤수

이러한 극락전 앞에는 각각 보물 제233호와 185호로 지정된, 진리의 불을 밝혀 중생의 어두운 마음에 광명을 주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가피가 만천하에 골고루 비치길 바라는 뜻이 담겨있는 석등과 오층석탑이 있다.

무량사 석등은 연꽃 받침에 원형도 사각도 아닌 8각 기둥으로 되어있다. 원형이나 사각보다 가공하기 어려운 8각을 그 단단한 돌에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8각은 원에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며, 단계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할 수 있는 동그란 원이 깨달음을 상징한다면, 8각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며 단계인 것.

절의 건축물이나 막새와 같은 부속물에는 8각, 8엽 등 8이란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불교 기초 교리인 팔정도에 기인한다. 팔정도(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는 수행자가 지켜야할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실천 덕목인데 깨달음의 진리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등(燈)은 곧 불이고, 불은 불교에서 깨달음의 진리를 의미한다. 어둠으로 상징되는 어리석음을 쫓아내고 밝음, 즉 팔정도를 이뤄' 깨달음의 불, 진리의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8각 기둥을 하고 있는 석등의 심오한 불교적 의미이다.

극락전 서측에는 우화궁이 있고, 그 뒤쪽으로 영산전과 천불전 그리고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모셔 놓은 또 하나의 전각이 있다. '김시습이 생활했다'는 산신각은 극락전 뒤편 계곡 건너에 숨어있듯 자리하고 있다.

오층석탑 우측으론 범종각과 명부전이 있고 좌측으론 요사채가 있다.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명부전 뒤쪽 산에서 아침해가 솟아오른다. 색감조차 희미하던 사방천지가 환희의 빛깔로 가득하다. 이런 기분에 아침 산사를 찾는다.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하던 어둠에서 광명의 빛을 받아 산뜻하게 맺혀지는 망막 속 아침풍경과 고요함이 가슴 싸 하도록 큰 기쁨을 준다.

a 전각을 알리는 뚜렷한 편액은 달리지 않았지만 내부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이 모셔져있다.

전각을 알리는 뚜렷한 편액은 달리지 않았지만 내부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이 모셔져있다. ⓒ 임윤수

무량사를 이야기하고 참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조선 조 초기 비운 속에 살다간 천재 시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영정을 모셔놓은 영산전이다.

'한 번 배우면 곧 익힌다' 하여 이름도 시습(時習)으로 지어졌다는 매월당 김시습.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세상에 자자하여 세종대왕으로부터 '자라면 크게 쓰겠다'는 약조까지 받았다는 김시습.

그런 김시습이 스물 한 살 되던 해,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쿠데타가 벌어지자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머리 깎은 후 방랑 길에 들어섰다. 유랑생활을 하다 '험하고 외진 곳, 백년이 지나도 귀찮게 할 관리 없으리'라고 말하며 숨어들어 설잠스님으로 생활하다, 그의 나이 59세인 1493년에 이승을 뒤로 하고 사바의 세계로 입적했다는 곳이 바로 무량사다.

a 사천왕문을 들어선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범종각엔 대형범종이 달려있다.

사천왕문을 들어선 우측,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범종각엔 대형범종이 달려있다. ⓒ 임윤수

신동이었지만 지식인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녔던 김시습은 우리 나라 최초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쓰고 23권에 달하는 <매월당집> 시를 지었다. 효령대군에게 불경을 해석해 주는 등 유·불 사상을 모두 섭렵하며 한세상 살았다는 김시습을 생각하면 웬지 도올 선생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오버랩 되어 환청처럼 들려온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김시습의 영정을 보고 있노라니 일화가 떠오른다. 10년이 넘는 오랜 유랑 중 잠시 한양에 머물 던 김시습이 서강(西江)을 지나다 시대를 농락하던 한명회가 '靑春扶社稷(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라 쓴 시를 보고 망설임 없이 '부'(扶) 자를 '망'(亡)자로, '와'(臥) 자를 '오'(汚) 자로 고쳐버렸다. 그러니 한명회의 글이 '靑春亡社稷(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白首汚江湖(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라는 뜻이 돼 위정자들을 희롱했다는 유명한 일화다.

a 김시습이 생활하였다는 산신각이다. 극락전 뒤쪽에 있는 산신각은 숨어 있듯 산아래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다.

김시습이 생활하였다는 산신각이다. 극락전 뒤쪽에 있는 산신각은 숨어 있듯 산아래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다. ⓒ 임윤수

김시습이 그 천부적인 영특함과 59세의 이승을 살며 터득한 지혜의 산물로 얻은 혜안으로 영겁을 삶을 얻기 위해 이곳 무량사를 찾았을 지도 모르고, 대대손손 전해지는 그의 이름 속에서 무량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 집 마당, 봄 햇살 속 산하를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사채를 바라보며 범종각에 기대니, 이런저런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불현듯 왜 절이 좋은 지에 대한 한 가지 답이 잡힐 듯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봄 산하의 조화처럼 그 포용성 때문에 좋아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불교에선 이단(異端)이란 말로 뭔가를 배척했단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터라, 사후세계에 정말 극락세계가 있다면 살아생전 늘 착하게만 산 사람을 신앙이 달랐다 해서 괄시하거나 지옥으로 쫓아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된다.

신앙이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속세의 인간들이 성이나 피부 색깔로 사람을 차별하는 불평등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 말이다. 만사를 포용할 극락세계로 가는 길은 결국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만큼 선행하며 살았는가가 더 중요할 거란 생각이다.

a 아! 봄색이 좋다. 연두색 옷감에 수를 놓은 듯 군데군데 피어난 봄꽃들이 잘 어울린다. 다홍치마에 연두 빛 저고리를 입은 듯 청순하기만 한 이런 색감의 봄 산하를 요사채는 배경으로 둘렀다.

아! 봄색이 좋다. 연두색 옷감에 수를 놓은 듯 군데군데 피어난 봄꽃들이 잘 어울린다. 다홍치마에 연두 빛 저고리를 입은 듯 청순하기만 한 이런 색감의 봄 산하를 요사채는 배경으로 둘렀다. ⓒ 임윤수

중천에 떠오른 아침햇살에 드러난 석등과 오층석탑을 돌고 돌며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는' 그런 위정자들이 설치지 않는 나라에서 살게 해 달라는 기도의 말을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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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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