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쇼핑을 당구장으로 가니?"

<네팔 여행기 2>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

등록 2004.04.21 17:26수정 2004.05.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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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기자는 지난 2월말부터 보름간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행기는 6회 정도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팅보체에서 바라보는 로체샤.
팅보체에서 바라보는 로체샤.김남희
팅보체 사원.
팅보체 사원.김남희
트레킹 다섯째 날
날씨 :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걸은 구간 :팅보체(Tengboche 4252m)-팡보체(Pangboche 4252m)-딩보체(Dingboche 4350m)
소요 시간 : 4 시간
복장 및 위생 상태 : 아직은 양호



어젯밤 호주 아이들은 새벽 1시까지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소란스러웠다. 나 역시 그 소란을 고스란히 함께 하느라 침낭 속에서 새벽 1시까지 뒤척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귀까지 예민해진다는 건가. 이제는 조그만 소음에도 쉽게 깨고 뒤척인다. 나이들수록 신경이 무뎌져야 할텐데…. 나는 어떻게 된 게 점점 벼린 칼처럼 날카로워진다.

눈을 뜨니 7시 반이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다. 오늘부터는 정 선배와 헤어져 우리끼리 산행을 시작한다. 이미 두통과 불면 등의 고소 증세가 시작된 정 선배는 고도 적응을 위해 최대한 천천히 페리체를 향했다. 우리는 예정대로 추쿵과 고쿄리를 다 돌기로 해 팀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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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배는 가이드 람과 포터 바뜨라를 데리고 떠나고, 우리는 기얀드라만을 데리고 딩보체로 향한다.

우리 일행은 아침을 먹고, 9시 20분에 출발했다. 길은 눈길이라 미끄럽다. 정면 왼쪽으로는 눕체, 오른쪽으로는 아마 다블람이 보이던 길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조금씩 사라진다. 철다리를 건너니 아마 다블람이 다시 나타난다. 이곳부터는 흙길이다. 눈은 거의 녹았다.

10시 50분. 팡보체(Pangboche)에 도착했다. 팡보체는 눕체와 아마 다블람 아래의 작은 마을이다. 사위는 고요하다. 새파란 하늘과 햇살과 바람만 충만하다. 나는 말없이 걸을 수 있어 행복하다.


팡보체 마을 전경.
팡보체 마을 전경.김남희
소마레 마을의 ‘파상 로지’ 부엌. 장작을 때는 화덕이지만 배기시설까지 갖추었다.
소마레 마을의 ‘파상 로지’ 부엌. 장작을 때는 화덕이지만 배기시설까지 갖추었다.김남희
11시 55분. 소마레(Somare)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해발고도는 4040m다. 우리 일행은 파상 로지(Pasang Lodge)에서 짜파티와 찐 감자로 점심을 먹었다. 이 동네 주식이 감자라 그런지, 감자 인심 하나만은 후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감자를 소금에 찍어 배불리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1시 출발. 바위와 자갈이 널린 길이 나타났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을 반시간 남짓 걷고 나니 페리체와 딩보체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잠시 산을 내려와 나무다리를 건너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전나무는 사라지고 키 낮은 관목만 듬성듬성해 고도가 높아졌음을 말해준다.


2시 30분. 딩보체(Dingboche 4350m)에 도착했다. 히말라얀 롯지(Himalayan Lodge)에 짐을 푼다. 먼저 와 있던 세 명의 호주인 로렌, 사만타, 던킨과 인사를 하고 난롯가에 둘러앉는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You rest. I shopping(당신은 잠시 쉬세요, 전 쇼핑하고 올께요)"하며 나간 기얀드라가 돌아오지 않는다. 호주팀 가이드 프림에게 물어보니 그가 마구 웃는다.

“쇼핑이라고? 그걸 믿었어? 너희 포터는 지금 당구장에서 돈 다 쓰고 있을 걸.”

올해 스무 살인, 기얀드라는 포터 생활 4년 차다. '막내 동생 같아 신경이 쓰였는데, 당구장에서 돈을 다 까먹고 있다고?'

“안 돼! 그럴 순 없어.”

경악하는 나를 위로하며 나간 프림도 한 시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기얀드라가 선불로 받은 포터 비를 다 날릴까봐 걱정이 된 나는 어둑해지는 거리를 걸어 당구장을 찾아간다.‘이 깊은 산골에 웬 당구장이람?’당구장 문을 여니, 당구대 하나를 놓고 네팔 젊은이 7-8명이 모여 담배를 피거나 당구를 치고 있다.

눈이 마주친 기얀드라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 마디하고 돌아선다.

“기얀드라! 빨리 안 돌아오면 너 팁 없다!”

잠시 후 나타난 기얀드라에게 다그치며 물었다.

“뭐? 쇼핑을 간다구? 야! 넌 쇼핑을 당구장으로 가니? 거기서 얼마 잃었어?”

기얀드라는 풀이 죽어 대답한다.

“Me? No Money. My Friend money.(저요? 전 돈 안 잃었어요. 제 친구 돈으로 쳤어요)"

친구 돈으로 쳤다는 그 말을 믿을 수도 없지만 설사 자기 돈 갖고 쳐서 다 잃었다 한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더 이상 잔소리를 하리. 게다가 이제 스무 살이면 한창 놀기 좋아하고, 온갖 종류의 유혹에 약 할 나이가 아닌가? 결코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난다.

저녁을 먹고, 9시까지 난롯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막힌 코로 숨을 쉬느라 오래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추쿵 마을의 돌집. 뒤로 아일랜드 피크가 보인다.
추쿵 마을의 돌집. 뒤로 아일랜드 피크가 보인다.김남희
딩보체에서 페리체 가는 고갯길. 뒷산은 탐셸꾸.
딩보체에서 페리체 가는 고갯길. 뒷산은 탐셸꾸.김남희
트레킹 여섯째 날
날씨 : 오늘도 쾌청
걸은 구간:딩보체(Dingboche 4350)-추쿵(Chukhung 4743m)-딩보체-페리체(Pheriche 4280m)
소요 시간 : 4시간 반
복장 및 위생 상태 : 점차 불량해지고 있음.


7시 기상. 오늘도 쾌청하다. 수프와 오믈렛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딩보체에서 추쿵으로 출발한다. 벌써 9시 10분 전이다. 큰 배낭은 이곳에 두고, 작은 배낭만을 챙겨 나선다. 얼음장 밑으로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수영 언니가 힘이 드는지 기얀드라에게 가방을 맡긴다. 그 모습을 보니‘웬만하면 오늘 하루는 기얀드라가 짐 없이 걷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서운한 생각이 든다.

고산병 증세 중의 하나가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더니…. 나도 고산병인지, 언니가 맡긴 가방에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내 가방이 훨씬 무거운데, 나는 힘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과 함께 가방없이 걸어가는 언니의 모습이 자꾸 걸린다.

그러고 보니 산악회 성기형이 해 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원정을 갔을 때 한번은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지. 고소에 걸린 한 후배가 누룽지 마지막 남은 국물을 선배가 먹었다고 ‘저 자식이 누룽지 한 숟가락 더 먹었지!’하며 그 선배 뒤꽁무니만 노려보며 하루 종일 누룽지 생각만 했다더니 내가 지금 그 꼴이잖아?”

머리를 흔들며, 가방 생각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가방은 집요하게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도 오늘따라 엄청나고….‘아, 치졸하고 유치한 인간 김남희.’

11시 10분 추쿵에 도착했다. 밀크티 한 잔 마신 후, 기얀드라와 뒷산에 오르기로 했다. 추쿵 리(Chukhung Ri)까지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뒷산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가방을 메고 나서는 내게 언니는 달거리(월경)로 허리와 배가 너무 아파 기얀드라에게 가방을 맡겼다고 말한다.‘아, 할 수만 있다면 땅 속으로 푹 꺼지고 싶다.’

뒷산은 거의 45도로 경사졌다. 치고 올라가는데, 몹시 숨이 차오른다. 헉헉거리는 내게 기얀드라가 “가방을 메겠다”며 달라고 한다. 오전의 내 모습이 용서가 되지 않아 나는 가방을 메겠다며 가방을 들었다. 다섯 발 걷고, 헉헉거리며 쉬고. 다시 서너 발 떼는 내게 기얀드라가 말했다.

“칼라파타르 새임 새임 히얼”

‘음, 다음에 오를 칼라파타르도 여기처럼 힘들다구?’이젠 기얀드라의 영어가 완벽하게 이해된다. 나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낭에서 잠바를 꺼내 입고, 벌벌 떨며 사진 몇 장 찍고 산을 내려왔다.

오늘은 처음으로 5000m를 넘게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그새 한 시간이 지났다. 오전 내내 다리에 힘이 없어 고생했기에 계란볶음밥을 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볶음밥이었지만 그래도 한 그릇 다 비웠다.

이우는 저녁해를 받고 있는 탐셸꾸.
이우는 저녁해를 받고 있는 탐셸꾸.김남희
페리체 마을.
페리체 마을.김남희
1시 15분 출발. 기얀드라는 여전히 언니 가방을 멨다. 가방이 없어서인지, 내려가는 언니의 속도는 놀랍게도 빨랐다. 한 시간 이십분 만에 딩보체에 도착했다. 언니는 머리가 너무 아파 정신없이 내려와 약부터 먹었단다.

3시. 잠시 쉰 후 페리체로 출발했다. 딩보체에서 페리체로 가는 고갯길(지름길)은 놀라운 풍경을 감추고 있다. 로체 샤와 아일랜드 피크가 뒤편으로 보이고, 왼쪽으로는 아마 다블람이, 오른쪽으로는 따우체와 촐라체에 이어 로부체가 이어진다.

아일랜드 피크 위로는 낮달이 떠올랐고, 구름이 몰려와 아마 다블람을 휘감고 있다.‘여기 인간계 맞아?’하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다. 30분이면 넘을 고갯길이지만 너무 아름다워 한 시간 넘게 소요하며 페리체로 내려왔다. 페리체는 그 모든 봉우리들의 발치에 납작하게 엎드린 마을이다.

기얀드라의 친구가 요리사로 있다는 쿰부 롯지(Khumbu Lodge)로 왔다. 이곳은 무엇보다 화장실이 건물 안에 있어 좋았다. 적어도 오늘 밤만은 침낭 속에서 몸을 비비꼬며,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는 승산 없는 전투를 치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저녁은 모모라 불리는 야채 튀김 만두와 뜨거운 우유에 탄 미숫가루 그리고 공짜로 한 그릇 얻은 야채 카레다. 만두도 맛있었지만 카레의 맛이 일품이다. 지금까지 먹은 물 탄 카레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맛있는 밥 한 그릇에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하고, 날마다 변화하는 풍경에 천국에라도 이른 듯 감사해한다.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을 받아 세수하고, 그 물로 발을 씻었다. 남체에서 샤워한 후 처음으로 발을 씻는 것이라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기얀드라 친구 덕에 뜨거운 물은 공짜란다. 이 깊은 산골에서도 ‘빽’은 통한다.

기얀드라는 뜨거운 물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갖다 주겠다며 오랜만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9시까지 난롯가에서 머물다가 방으로 돌아오니, 실내온도는 바깥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추위도 따라와 방에서도 모든 것이 언다. 필요한 물건들을 침낭 속에 넣고 자지 않으면 모두가 언다. 화장품도 얼고, 침대 머리맡에 둔 찻잔의 물도 아침이면 얼어 있고, 물 티슈조차도 꽁꽁 얼어버린다.

카메라 건전지와 물티슈를 침낭 속에 넣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또 어떤 풍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침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잠을 청한다.

트레킹 일곱째 날
날씨 : 화창
걸은 구간 : 페리체(Pheriche 4280m)-투글라(Tuglha 4600m)-로부체(Lobuche 4930m)
소요 시간 : 3시간 45분
복장 및 위생 상태 : 비교적 양호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났다. 기얀드라 친구가 공짜로 준 따뜻한 물에 세수하고 (세상 사람들이 굳이 무거운 ‘빽’을 짊어지려고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체험), 부엌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중이다. 식당에는 아직 난로가 지펴지지 않아 염치 불구하고, 부엌으로 들어와 화덕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늘도 날씨가 맑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고생길이 시작된다. 오늘 은 부체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이면 에베레스트를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Kalapatthar 5545m)에 오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9시 35분에 출발했다. 눈 덮인 산길을 따라 길을 오른다.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촐라체와 따우체의 자락에 자리잡은 페리체. 눈 덮인 돌담과 돌집이 보인다.
촐라체와 따우체의 자락에 자리잡은 페리체. 눈 덮인 돌담과 돌집이 보인다.김남희
투글라에서 로부체로 향하는 고개에서 만난 초르텐(돌탑)과 탈쵸(경전을 인쇄한 깃발).
투글라에서 로부체로 향하는 고개에서 만난 초르텐(돌탑)과 탈쵸(경전을 인쇄한 깃발).김남희
2시간 남짓 오르니 투글라(Tuglha)가 보인다. 투글라는 집이 딱 세 채인 작은 마을이다. 작은 찻집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영국에서 온 롭과 안토니와에게 인사를 한다.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South or North?(남 또는 북)"이라며 묻는다.

‘아니, 세계 정세에 아무리 둔감해도 그렇지, 어쩌면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Korea is one!(우리는 하나)"이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다 옛말이다. 이제는 부연 설명할 일이 지겨워서라도 그렇게는 대답하지 않는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을 듣는지 몰라. 북한 사람들은 외교관과 정부 관리를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을 못 해. 네가 만약 여행 중인 한국 사람을 만나면 99%는 남한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12시. 다시 출발이다. 30분쯤 오르니 길은 수월해지고, 푸모리(Pumo Ri 7165m)가 정면에 보인다. 커다란 플라스틱 물병 하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푸모리를 바라보며 걷는 길에 걸리적거린다. 모른 척 지나치기엔 너무도 가까운 발치에 놓여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주워들고 걷고 있자니, 기얀드라가 들고 가겠다며 받는다.

감동은 순간, 잠시 후 바위 틈 사이로 “휙”하니 물병을 던져버리는 기얀드라. 한숨밖에 안 나온다.

1시 45분. 로부체(Lobuche)다. 투글라에서 만났던 영국인 롭과 안토니가 먼저 와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고산병 예방에 좋다는 마늘 스프와 오믈렛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올라오는 길에 머리가 약간 아프더니 그 사이 괜찮다.

이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16살 된 쥬니와 스무 살 먹은 그녀의 남편이다. 16살에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네팔에서는 ‘필이 꽂히면’ 바로 결혼한단다. 남편이 가이드, 포터들과 카드 게임을 하는 동안 쥬니는 남편이 지는지, 이기는지 쳐다보며 참견하느라 산만하다.

나는 난롯가에서 간디를 읽으며 건빵을 먹는다. 언니가 카트만두에 도착한 날, 거대한 건빵 봉지 두 개를 본 나는 “웬 건빵? 뭐 그런 걸 다 사왔어?”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건빵 두 봉지를 나 혼자 다 먹었다.

이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뜻하지 않은 수확 하나가 건빵 맛의 재발견이다. 건빵 봉지에는 “배고프던 그 시절. 어머님이 건네주시던 그 손맛 그대로. 추억의 건빵. 별사탕도 들어있어요”라고 적혀있다.

나는 그걸 바꿔 읽는다. “배고프던 그 산행. 언니가 건네주던 그 손맛 그대로.”

딩보체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호주인 던킨이 우리를 보고 개울을 건너 찾아왔다. 그는 칼라파타르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란다.

“칼라파타르 어땠어?”
“Tough! Very Tough! 거긴 무지무지 추워서 난 바라클라바(원래는 추위를 막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강도들에 의해 복면으로 오용되는 모자) 쓰고, 가져온 옷 다 꺼내 입고, 이 두꺼운 장갑까지 꼈는데도 추워서 죽을 뻔했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말도 못해. 사만타는 끝까지 못 올랐어.”

사만타는 꽤 건강하게 보이는 일본인이다. 그런 사만타까지 못 올랐다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저녁 전에 던킨, 롭, 안토니, 언니와 카드 게임을 했다. 우리가 며칠 전 기얀드라와 던킨에게 가르친‘원 카드’를 하고, 그 다음엔 롭이 가르쳐준 'Ass hole' 이라는 얄궂은 이름의 게임을 했다. 음주가무, 잡기에 서투른 나답게 여기서도 꼴찌는 내 차지다.

롭과 안토니는 아직도 베이스캠프에 갈지, 칼라파타르에 오를지 결정을 못 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칼라파타르에서 보는 전망이 낫다고 하는데도 안토니는 제 주장을 꺾지 않는다.

“칼라파타르는 안돼. 사람들한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갔다 왔다고 해야 말이 되지, 칼라파타르라고 하면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카트만두의 한국인 숙소 “짱”의 선미 언니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꼭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등 남들이 알아주는 코스를 선호한단다.

난롯불이 꺼져 가는 시간이다. 8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몇 번의 꿈 빼고는 아주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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