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년이 지금!"
혹 땡추는 크게 열이 받았는지 벌떡 일어서 애향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모양새를 본 이들은 더욱 크게 웃었고 혹 땡추의 기분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점잖게 술이나 드실 것이지 어인 추태이옵니까?"
애향이는 혹 땡추에게 오히려 당돌하게 대꾸했고 이는 혹 땡추의 화를 폭발하게 하는 불씨나 다름없었다. 혹 땡추는 술잔을 집어들더니 냅다 애향이에게 덤벼들었고 다른 기생들은 비명을 질러대었다.
"기생주제에 감히 내게! 당장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혹 땡추는 술잔을 던진 것으로도 모자라 발로 애향이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백위길이 벌떡 일어서 이를 말리려는 찰나 강석배가 번개같이 끼어 들어 혹 땡추를 막아섰다.
"참으시오!"
강석배의 얼굴은 평소와는 달리 상기되어 있었고 말투마저 벌벌 떨리는 듯 했다. 혹 땡추는 그런 강석배를 노려보더니 손바닥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밀어냈다.
"이봐 별감, 니가 이 기생 기둥서방이야? 괜히 끼어들지 마라고."
술에 취하면 도무지 말릴 수가 없는 혹 땡추인 것을 아는지라 옴 땡추와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술도 충분히 마셨겠다. 그만들 가지."
옴 땡추는 혹 땡추를 애써 무시하며 기방에서 나갔고 키 작은 한량과 허여멀쑥한 한량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애향이를 제외한 기생들도 허둥지둥 나갈 채비를 하는데 방안에는 서로 노려보는 혹 땡추와 강석배, 그리고 애향이와 백위길만이 움직임이 없었다.
"강별감! 안 나오고 뭐하나?"
괜히 싸움이 커질까 걱정된 혹 땡추의 소리에 그제야 강석배는 혹 땡추를 쏘아보던 눈빛을 거두며 뒤돌아 섰다. 그 순간 강석배의 눈에서 불빛이 번쩍하며 정신이 멍해졌다. 뒤에서 혹 땡추가 주먹으로 강석배의 뒤통수를 가격했기 때문이었다.
"이 건방진 놈이 어딜…."
혹 땡추는 이어서 꼿꼿하게 앉아 있는 애향이를 향해 다시 발길질을 하려했다. 백위길은 애향이를 막아서며 혹 한량의 턱을 머리로 받았다.
"컥!"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은 혹 땡추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뒤늦게 되돌아온 옴 땡추가 재차 성질을 부리며 발길질을 하려는 혹 땡추를 감싸 안으며 밖으로 나갔다. 강석배는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애향이를 살폈다.
"괜찮은가?"
애향은 강석배의 다정한 말에도 쌀쌀맞은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강석배는 그런 애향이와 백위길을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옴 한량 일행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밤이 늦었사옵니다. 포교님도 이만 가시지요."
애향이는 방바닥에 엎어진 술과 안주를 치우며 조용히 말했다. 백위길도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지만 입가에서만 맴돌 뿐 선뜻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한 말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애향이의 말에 그제서야 백위길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하시오."
애향이는 옴 땡추가 던져준 엽전 꾸러미를 주워들며 백위길에게 건네어 주었다.
"이건 저들에게 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
백위길은 아무 말 없이 애향에게서 엽전 꾸러미를 받아들고선 옴 한량 일행을 쫓아가려 했다. 그 순간 백위길의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앗차! 김포교의 통부!'
백위길은 엽전을 손에 든 채 급히 뒷방으로 향하다가 검은 그림자와 맞닥트렸다. 그림자는 백위길에게 크게 놀랐는지 '어머'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림자는 기방에서 잔일을 도맡아 하는 퇴기 오월이었다. 오월이는 백포교를 아래위로 훑어보고서야 수상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뉘… 뉘신데 이리로 들어오시오?"
"난 아까 뒷방에서 술을 마셨던 백포교라고 하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이를 가지러 들어 갈까하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