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당선자에게 묻습니다

정치권이 언론개혁의 의제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등록 2004.05.04 20:52수정 2004.05.0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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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회의원이란 게 축하받을 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원하는 대로 됐으니 축하를 드려야겠지요.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하신 말씀을 잘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언론개혁 하려고 국회에 들어왔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되면 국회 들어온 보람이 있다고 본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디 성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앞섭니다. 당선자께서 생각하는 언론개혁이란 게 무엇인가요? "언론사주 소유지분 제한, 편집제작위원회 구성, 공동배달제가 언론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하셨네요.

"중앙일간지의 경우 1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신문사는 대주주와 대주주 직계가족 등 특수관계인이 15~20% 이상의 지분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도 하셨네요. 평소의 소신을 얘기하셨습니다.

2년 쯤 됐지요? 한 술자리에서 당선자께서는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장점유율과 소유지분을 연동시키는 법적 규제 말입니다.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요.

저로서는, 그 취지와 충정은 이해하지만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언론개혁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언론의 지형이 크게 바뀐 현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당선자께서는 기자 출신으로 동아일보에서 겪은 경험이 있으니 그 문제에 집착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선자께서는 기자 출신의 정치학자로서 언론과 언론개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론학을 공부한 언론운동가로서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경험의 차이에서 온 인식의 차이일까요?

그동안 신문개혁의 주요 타깃은 조·중·동이었습니다. 조중동의 파워를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생각해낸 게 편집권을 침해하는 사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언론개혁시민연대나 민변 같은 단체에서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정간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하기도 했고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거대한 벽을 상대하면서 갖은 처방을 다 써본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만큼 운동의 논리와 전술도 거기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언론운동진영은 전략과 전술의 수정을 논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난 시절 우리가 제기했던 슬로건을 핵심적 개혁과제로 설정하고 입법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언론개혁국민협의회를 구성한다지요. 사전 협의도 없이 덥석 일을 저질러놓고 들어오라고 하면 되는 겁니까? 협의회를 구성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미리 의제를 정해놓았다는 점입니다.

공동배달제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사주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제작위원회 구성이 언론개혁의 핵심이라고 규정해놓고 들어와 논의하라고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제 선정은 전적으로 협의회에 일임하고, 우선은 협의회 구성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요?

기왕에 판을 벌려놓았으니 묻습니다. 국회에서 언론사주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법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한나라당이 반대할 때는 날치기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풀이 죽은 조중동이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위헌이니 언론자유 침해니 하면서 기세등등하게 날을 세울 때 감당할 자신은 있는지요?

저는 오히려 이 사안이 빌미가 되어 조중동의 기를 살려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봅니다. 자칫하면 당선자께서는 뜻하지 않게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편집위원회 구성도 그렇습니다. 조중동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하며 자율성을 갖고 지면구성을 하려고 하는데 오로지 사주의 간섭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고 보십니까? 일부 그런 기자들도 있겠지요. 부분적으로라도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편집권 독립을 법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소유지분 제한을 시장점유율과 연동한다는 구상은 지나치게 이상론입니다. 그리고 소유지분을 제한하면 편집권이 독립되는 겁니까? 그 논리적 타당성과 사례를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일보와 매일신문의 경우도 언급을 하셨네요. 다른 지방지들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토호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방지 사주의 소유지분도 그렇게 연동하여 제한하는 겁니까? 나머지 주식은 소액주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전반적으로 신문산업은 사양산업입니다. 대부분 적자경영입니다. 그 주식을 누가 사겠습니까? 조선일보 주식은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특히 지방신문사는 주식 처분이 되지않아 큰 혼란을 겪게 될 겁니다. 일부 중앙지도 마찬가집니다.

당선자께서 소유제한과 관련하여 지적받은 문제들에 대해 대답한 내용은 실망스럽습니다. 전혀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미디어그룹의 그룹 점유율 제한을 말하고, 미국의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고 하시니 이현령비현령 아닌가요? 이런 사례와 논리로 반대 측 주장을 제압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운동단체와 국민들의 오랜 숙원인 언론개혁을 실천에 옮긴다니 우선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권이 분위기에 휩쓸려 한건 하는 식으로 기자들에게 섣불리 발설할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걱정스럽습니다. 이건 저만의 걱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보다 자세한 구상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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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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