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45

술 취한 세상

등록 2004.05.10 17:26수정 2004.05.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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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백위길은 마침내 적당한 온천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겨우 너덧 사람이 들어갈 만한 웅덩이 크기였지만 물에서는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백위길은 옷을 벗고서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었지만 물이 너무나 뜨거웠다.

'허! 여기서는 몸이 익어 버리겠다. 게다가 이 온천은 밑바닥도 보이지 않는군.'


그때 한 중년의 스님과 동자승, 그리고 다리를 저는 사내가 백위길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백위길은 약간은 멋쩍어 하며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서는 옷을 벗고 급히 온천으로 들어가려는 사내에게 넌지시 말했다.

"물이 너무 뜨거우니 조심하시오."

사내는 백위길의 말을 못 들은 양 온 몸을 그대로 풍덩 담갔고 온천의 깊이에 잠시나마 사내의 머리까지 들어갈 지경이었다. 백위길은 사내의 모습에 지기 싫다는 마음이 생겨 주워 입던 옷을 벗고서는 조심스레 다시 발부터 온천에 담가 보았다. 그런 백위길에게 스님이 조용히 충고했다.

"허허허, 이런 온천에는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너무 무리하진 마시오."

백위길은 스님의 말이 마치 놀리는 것 같아 온천 속의 사내처럼 사정없이 온 몸을 담갔다.


'이런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백위길은 약간 허우적거리다가 온천물의 열기에 온 몸이 익어버릴 것만 같아 당장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본 동자승이 재미있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네 이놈, 어른이 곤란을 당했는데 놀리면 쓰느냐!"

스님의 꾸지람에 동자승은 재빨리 백위길에게 사과를 했고 백위길은 별일 아니라는 듯 동자승에게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스님께서는 온천에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백위길의 말에 스님은 나직이 웃었다.

"불법에 귀의한 이가 어찌 편하고 좋은 것을 쫓아 하겠습니까. 다만 데리고 있는 녀석이 몸을 다쳐 이 온천을 찾게 되었을 뿐입니다."
"몸을 다쳤으면 응당 의원을 찾아야 하거늘 어찌 온천에서 효험을 보시려 함이오?"
"다리에 독이 들어 온몸으로 퍼지고 있는데 온기로서 풀어야 할 독입니다."

백위길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음에도 온천 속에서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않고 있는 사내를 보니 달리 약을 쓸 방도가 없어 그런 가 보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온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 아래로 내려온 백위길은 아전들이 자신을 급히 찾는 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오?"
"큰일났소이다! 한양에서 내려온 포교가 지금 크게 다쳐 누워있사옵니다!"
"뭐라고요!"

백위길이 급히 뛰어 가보니 김언로가 핏자국이 배어 있는 천으로 머리를 싸맨 채 누워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김언로가 분한 듯 식식거리며 말했다.

"길에서 누군가 뒤를 내리쳤네. 분명 조창에 있는 모영하란 놈의 소행임이 틀림없어."

백위길이 크게 분노해 소리쳤다.

"이곳 포졸들을 모아 당장 처리하고 오겠소이다."
"아서게!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곤란하네."
"물증이라 하오시면…?"

김언로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조창을 조사한 후 창망간에 당한 일이라 그 놈에게 심증만 간다는 말일세. 정신을 잃는 바람에 내 뒤를 친 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으니 낭패일세. 그러니 말일세. 자네가 그 세곡선에 동승하여 놈들의 동태를 살피게나. 모래 새벽에 떠나니 그 동안에 준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걸세. 난 육로로 뒤따르겠네."
"알겠사옵니다. 염려 놓으시고 몸이나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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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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