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24

잠시만 이렇게 있어줘요! (2)

등록 2004.05.17 10:06수정 2004.05.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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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의 금지옥엽인 그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만인의 관심을 받았고, 성장하는 동안 뭇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누구든 그녀를 차지하기만 하면 엄청난 부와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는 것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환심을 사려 아첨과 아양을 서슴지 않는 사내들이 너무도 한심하다 느낀 빙화는 만사를 냉담하게 보게 되었고, 그것이 쌓여 차가운 성품으로 발전된 듯 싶었다.

그런데 이회옥만이 유일하게 소가 닭 보듯 하였다. 이것이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정의 단초가 된 것이다.

이회옥의 태도는 그녀의 오라비인 철기린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태극목장을 말살시킨 원흉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철천지 원수의 누이동생이므로 소가 닭 보듯 한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을 찾자면 이마에 새겨진 흉측한 낙인일 것이다.

일타홍이나 조연희는 물론 세상 모든 여인들에게 관심조차 가질 수 없던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팔당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정중한 인사 이외에는 별 말이 없었고 회합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갔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자부하기에 사내라면 의당 자신을 보고 침을 흘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자 묘한 호기심이 동했다.


대체 어떤 종자이기에 그런가 하는 관심이 발전하여 연정(戀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난생 처음 아양과 교태라는 것을 부린 것이다.

다음날부터 이회옥은 늘 비룡의 처소라 할 수 있는 마구간에 머물렀다. 전에도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였기에 이를 이상히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마구간의 바닥은 조금씩 북돋아졌다. 토굴을 파면서 생긴 흙을 넓게 펼쳤기 때문이다.

* * *

너무도 험해 짐승조차 드물었다는 실미산에는 한때 사람들로 넘쳐나던 시기가 있었다. 질좋은 철광석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너무도 사람이 많아 누구든 실미산 부근에 객잔이나 주청을 열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인적이 끊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더 이상 철광석이 나오지 않아 모든 광산이 폐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미산 지저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지하공간이 있다.

워낙 여러 갈래로 뚫려있기에 미로같이 얽히고 설킨 갱도 가운데 하나에 연결된 천연적으로 생성된 거대한 광장이다. 사방 오십여 장이나 되는 이 광장의 바닥에는 누군가 인공을 가미하였는지 단단하기로 이름난 청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온통 흠집 투성이였다.

조만간 있을지도 모를 겁난에 대비하기 위해 제세활빈단원들이 진법(陣法) 수련을 한 결과다. 그리고 최근 모집한 영웅들이 죽음의 수련을 거치는 동안 생긴 흔적이기도 하다.

광장 귀퉁이에는 일 장 높이의 누대(樓臺)가 세워져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횃불 덕분에 사방은 대낮처럼 환했다.

누대의 사각 탁자에는 큼지막한 주호(酒壺 술 단지)와 술잔, 그리고 먹음직한 안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래에도 백여 개의 원탁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는데 각기 주호와 술잔 그리고 기름진 안주가 놓여 있었다. 위나 아래나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누대의 탁자 곁에는 아무도 없지만 원탁의 좌석에는 각기 다섯 장한들이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하였다.

이십에서 삼십에 이르는 청장년 오백여 명이 모여있건만 누구하나 술잔 기울이는 자 없었고, 안주를 집어먹는 자도 없었다. 헛기침을 하거나 옆 사람과 속닥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곳곳에 꼽혀있는 횃불이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소리뿐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긴장된 모습이었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들이 누대 위로 천천히 올랐는데 하나같이 금빛 면구를 쓰고 있었고 흑의 경장을 걸치고 있었다. 또 똑같이 생긴 병장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체구가 크고 작은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동일하였다.

모두 누대에 오르자 그 가운데 하나가 단상으로 나서며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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