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23

잠시만 이렇게 있어줘요! (1)

등록 2004.05.14 10:40수정 2004.05.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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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당주! 이, 이러시면…”
“제발,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게 해줘요.”

“다, 당주…!”
“싫어요. 소녀를 당주라 부르지 마세요. 그냥 혜매라고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예에…? 혜매라뇨? 소생이 어찌 당주를…”
“그냥 그렇게 불러주세요. 소녀는… 소녀는…”

이회옥은 너무도 급작스런 상황에 심히 당황스러웠다.

차갑기로 소문난 빙화가 이토록 노골적인 접근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종합해 보면 자신을 정인(情人)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어, 공자님!”
“예에…?”

“소녀를 수치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계집이라고 욕해도 좋아요. 하지만 소녀는… 소녀는… 공자님을 사모했어요. 소녀 공자님과 한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
“다, 당주!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아이, 싫어요! 그냥 혜매라고 불러달라니까요.”
“당주! 소, 소생이 어, 어찌…”

“싫어요. 그냥 혜매라고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다, 당주!”


이회옥은 너무도 당황스러워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차갑기로 이름난 빙화가 자신에게만큼은 그리 차갑게 대하지 않은 이유가 당주급 가운데 유일하게 비슷한 연배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 장래를 함께 하고픈 배필로 여기고 있는 듯하니 당황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다, 당주! 소생은 배경도 없고…”
“피이! 또 당주예요? 싫어요. 혜매라 불러달라니까요.”
“그, 그건…”

말을 하려던 이회옥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웬 여인의 음성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빙화의 교구(嬌軀)는 이회옥의 품을 벗어났다.

“아씨! 아씨! 어디에 계세요?”
“치잇, 하필이면 이런 때…, 흥! 계화(桂花)이 계집애는 늘 굼뜨더니 오늘은 왜…? 에이, 여기 있어! 나 여기에 있다구!”

“헉헉! 아씨 찾느라고 산지 사방을 다 뒤졌어요. 헉헉! 아씨, 지시하신 건 모두 완벽하게 준비되었으니 그러니 어서 내려… 어라! 언제, 언제 오셨어요? 아차! 쇤네가 당주님을 뵙습니다.”
“허어, 이런! 소생이 너무 일찍 온 모양이구려. 죄송하외다.”

당황한 계화에게 미소 띈 얼굴로 포권하는 이회옥의 태도는 지극히 정중하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평상시 습관이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태극목장 제일목부이자 부친인 이정기는 나중에 윗사람이 되더라도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친절하고, 정중해야 한다 가르쳤다.

이렇게 처세(處世)함으로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게 된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하였다.

그렇기에 매일 대면하는 철마당의 조련사들은 물론 마구간의 말똥을 치우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늘 친절하게 대했고, 불편함이 없는지를 살폈다. 덕분에 적어도 철마당 내에는 이회옥에게 반감(反感)을 지닌 사람이 전무하다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계화라는 시비는 뜻밖의 공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어머! 아, 아니에요. 그리고 마, 말씀 놓으세요. 어떻게 당주께서 쇤네처럼 하찮은 계집에게… 쇤네는… 쇤네는…”

계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빙화의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호! 공자님, 우리 내려가요.”
“그, 그럽시다.”

이회옥은 내심 계화가 고마웠다. 너무도 곤혹스러워 등에서 진땀이 흐르던 순간을 모면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회옥은 늦은 시간까지 빙각에서 머물러야 하였다. 바짝 붙어 앉은 빙화가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혀는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는 행운을 누렸고, 비싸기로 이름난 금존청을 무려 세 근이나 마셨다.

하지만 곤혹스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등에서 흐른 진땀 때문에 의복이 후줄근해질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회옥은 빙화가 왜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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