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22

공자라고 불러도 되나요? (10)

등록 2004.05.12 09:42수정 2004.05.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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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곡 순찰로 재직 중 이회옥은 일타홍과 함께 백두봉(白頭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선무곡의 모든 것일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하여 유람삼아 갔던 것이다. 그때 보았던 선무곡과 지금의 무림천자성을 비교해보니 거의 백 배는 되는 듯 보였다.

클 것이라고는 생각하였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였기에 이회옥은 잠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무림천자성의 영역임을 표시하는 성곽은 북쪽만이 일직선이고 나머지는 지형에 따라 구불구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호호! 크지요?”
“그렇소이다. 이렇게 클 줄은… 대단하오!”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빙화는 어느새 평정심을 찾은 듯 보였다. 짧은 시간만에 잠시 전의 부끄러움을 떨치는 것을 보니 과연 빙심을 지닌 빙화라 불릴만하였다.

“호호! 저기가 기린각이고, 저긴 아버님께서 머무시는 곳이에요. 저긴 군화원이라는 곳인데… 음, 저기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리고 저기는…”

‘어머님…! 고모님…!’


빙화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었지만 이회옥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과 온 정신이 군화원으로 향해있기 때문이었다.

예상과 달리 그곳은 기린각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다행히도 그곳은 비교적 외곽에 위치해있었다.


‘으음! 저곳이라면 조금 쉽겠군…’

이회옥은 철마당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를 눈대중으로 확인하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이백여 장만 땅굴을 파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빙화는 성주의 금지옥엽이자 차기 성주인 철기린의 누이동생이다. 따라서 그녀의 거처는 두 군데이다. 하나는 형당 당주의 처소이고 다른 하나는 내원에 자리한 빙각이다.

어제 빙화가 내원에 있는 빙각으로 와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던 군화원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친과 고모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동안 수 차례나 내원으로 잠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내원과 외원 사이에는 보보(步步)마다 기관과 진식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기관토목술에 대하여 해박하지 않다면 몇 발짝도 떼기 전에 한줌 혈수로 녹아들 정도로 살벌한 것들이다. 하여 이회옥이 선택한 것은 토굴(土窟)이었다.

철기린의 애마인 비룡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마굿간에서 내원 쪽으로 땅굴을 팠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내원 지저(地底)에 있는 암반층 때문이었다.

아무리 암반이라 하지만 뚫으려 하면 못 뚫을 것은 없었다. 무림지옥갱의 그 단단한 암반도 뚫지 않았던가!

문제는 군화원의 정확한 위치이다. 대충 기린각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말만 들었지 어느 방향에 얼마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지를 알 수 없었다. 혹여 의심받을까 싶어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무작정 뚫고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여 어떻게 하면 군화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까 고심했었다. 그렇기에 빙화의 초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호호! 아름답지요? 소녀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여기에 올라와요. 왠지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고…”

무어가 그리 좋은지 빙화는 연신 쫑알거리고 있었다. 이 순간 이회옥의 시선은 군화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십여 개의 전각 가운데 어디에 모친과 고모가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흠! 원주가 되셨으니 제일 큰 전각에 계시겠지?’

“호호! 어때요? 좋지요?”
“예? 아, 예에. 하하! 참 좋소이다. 당주의 말씀대로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오. 여름에 오르면 정말 시원하겠소이다.”

“호호! 그럼요. 가을엔 더 멋있지요. 흩날리는 낙엽과 소슬한 바람, 거기에 그윽한 차와 더불어 비파의 선율이 더해지면…”

끝말을 줄인 빙화는 몽환(夢幻)에 젖은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고혹(蠱惑)스러웠는지 이회옥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소녀가 당주님을 공자라 칭해도 되지요?”
“예? 아, 예.”

“지금은 잔설이 다 녹아 황량해 보이지만 겨울에도 여긴 제법 낭만과 정취가 서린 곳이에요. 온 사방이 솜이불을 덮은 듯 하얗게 뒤덮인 모습을 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백설처럼 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흐음! 그렇게 된다면야 오죽 좋겠소이까.”
“참, 앞으로는 언제든지 이곳에 오실 수 있도록 신패를 드릴게요. 이거 받으세요.”

빙화의 얼굴은 왠지 상기되어 있었다.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하였지만 실상은 미리 준비해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이것만 보이시면 언제든 내원 출입이 가능해요.”

“그래도 그렇지 이걸 어찌 소생이…?”
“괜찮아요. 그냥 넣어두세요.”

말을 하는 빙화의 눈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같은 순간, 이회옥은 여인들이 노리개로 차고 다니는 패도(佩刀)를 받아들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칼자루와 칼집은 오서각(烏犀角 :인도 코뿔소의 뿔)으로 만들었는데 중간에 금강석(金剛石)이 박혀 있었다.

‘이건 빙화의 신물인 빙도(氷刀)! 세상의 모든 화기를 제압할 수 있다는 보물인데 이걸 어찌 내게…? 설마 날 배필로…?’

이회옥의 상념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빙화가 품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다, 당주!”
“쉬잇! 잠시만, 아주 잠시만 이렇게 있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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