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홍문 들어서니 거기가 깨우침의 도량

[걸망에 담아온 산사 이야기 (52)] 금산 보리암

등록 2004.05.18 08:47수정 2004.05.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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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많은 산들은 풍수지리의 형기론이나 전설을 그 이름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대 임금이 산에 이름을 하사한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남해 일출의 대명사며 '깨달음을 얻어 도에 이르는 곳'이란 뜻의 '보리암'이 있는 '금산'은 그 산명을 태조 이성계로부터 하사 받았다.

쌍홍문에서 내려다보는 산하가 아름답다. 보는 이에 따라 여인의 눈웃음처럼 유혹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해골에 뻥 뚫린 공허한 구멍으로 보일 수도 있는 한 쌍의 굴은 높이가 7~8m쯤 된다.
쌍홍문에서 내려다보는 산하가 아름답다. 보는 이에 따라 여인의 눈웃음처럼 유혹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해골에 뻥 뚫린 공허한 구멍으로 보일 수도 있는 한 쌍의 굴은 높이가 7~8m쯤 된다.임윤수
금산(錦山)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으로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 후 이성계가 이 산에서 1백일간 기도를 올리며 조선의 개국을 기원하게 되고, 태조의 뜻대로 조선이 개국되자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 데서 '금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공신들에게 논공행상을 마친 후 자신의 기도를 받아준 영험한 산에도 하사품으로 비단을 내릴 것이니 온 산을 비단으로 덮으라는 명을 내렸다.

그 때 신하 중 한 사람이 이성계에게 이르기를 비단이란 것이 처음 두를 때는 아름답고 보기 좋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은 퇴색하고 나중에는 보기 흉한 꼴이 되기 쉬우니 세세손손 비단을 두른 듯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붙여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신하의 설명을 들은 이성계가 그 뜻을 받아들여 금산이란 산명을 하사하니 그 때부터 이 산을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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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굴 중 또 하나의 석문. 금산의 명치를 드나드는 관문이며 자연이 만들어 낸 보리암 일주문이 쌍홍문이다.
두 개의 굴 중 또 하나의 석문. 금산의 명치를 드나드는 관문이며 자연이 만들어 낸 보리암 일주문이 쌍홍문이다.임윤수
이렇듯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그 이름을 하사할 정도로 기도발이 잘 선다는 유명한 산, 산과 바다 그리고 기암의 어우러짐이 얼마나 절묘한지를 보여주는 한려수도 남해의 금산 좋은 곳에도 어김없이 절이 있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과 자비로운 해수관음보살의 포근한 미소 도량으로 소문난 보리암이 바로 금산의 정맥자리에 들어선 절이다.


기본적으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종교가 불교지만 나약한 인간들이 어디 깨달음만 추구하랴. 그러기에 불교는 원을 구하고자 하는 구원의 종교라 해도 크게 반박할 여지는 없을 듯하다.

많은 불자들이 '성불'이라 일컫는 단계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어려운 수행에 힘쓰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이루고자 하는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부처님이나 보살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쏟아질 듯한 기암의 틈새에 보리암은 자리를 잡았다. 이 바위들은 보리암의 신장이며 금산의 혈맥이다.
쏟아질 듯한 기암의 틈새에 보리암은 자리를 잡았다. 이 바위들은 보리암의 신장이며 금산의 혈맥이다.임윤수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구원을 들어주는 부처님 가운데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의지했던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언제 어디서나 구원을 요청하면 어떠한 도움인들 다 들어준다고 한다.

그러기에 불자들은 평소는 물론 어려움에 처할 땐 소리를 내어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며 구원을 요청한다. 아기들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소리내어 찾듯 그냥 '관세음보살'하고 불러주기만 해도 구원의 손길을 내 준다는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이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음신앙이 형성, 퍼져 나가기 시작해 6세기말에는 신라, 백제 등 삼국 모두에 뿌리 깊은 신앙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관세음보살상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관음신앙에 대한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층층이 쌓아올린 극락전이 경이로우면서도 이질감을 준다. 급 비탈에 건물이 들어설 공간을 마련하느라 그 층수가 높아진 듯 하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층층이 쌓아올린 극락전이 경이로우면서도 이질감을 준다. 급 비탈에 건물이 들어설 공간을 마련하느라 그 층수가 높아진 듯 하다.임윤수
우리 나라 관음신앙의 3대 성지, 즉 3대 기도도량은 남해 보리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강화도 보문사다.이들 3대 관음도량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모두 신비한 창건 설화와 많은 영험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기에 요즘도 뭔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자 진지한 마음으로 매달리듯 찾아가는 귀의처 같은 기도도량이다

보리암에 가는 길은 남해 상주면 상주해수욕장에서 올라가는 길과 앵강고개를 넘어 이동면 복곡저수지를 지나가는 길 두 군데다. 쉽게 가려면 복곡저수지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가면 아무래도 절 찾아가는 맛이 덜할 수밖에 없다.

상주 해수욕장과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이 마치 복주머니 형의 반구를 이루고 있다. 기와지붕의 가지런함이 마음조차 가지런하게 해준다.
상주 해수욕장과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이 마치 복주머니 형의 반구를 이루고 있다. 기와지붕의 가지런함이 마음조차 가지런하게 해준다.임윤수
좀 힘이 들더라도 금산의 진미를 눈과 가슴에 담으려면 상주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매표소를 통해 올라가는 게 좋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가파른 편이며 1시간 30분 가까이 올라야 한다.

오르는 길 중간중간 간지럼을 태우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는 남해바다 풍경은 일품이다. 쭉 뻗으면 닿을 듯한 남해의 청옥색 바다에서 하얀 파도가 연거푸 눈꺼풀을 끔벅대듯 바닷가로 밀려왔다 사라진다. 옥색 비단에 장식처럼 박힌 작은 섬들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고기배들이 자연 속에 꾸리는 삶의 한 장면을 매끈하게 그려낸다.

기암괴석의 산자락은 청보리 빛 해안에 그 끝을 담그고 있다. 펄렁이는 앞치마를 두른 듯 흔들리는 산하의 수목이 만들어 내는 짧은 떨림과 잎새의 물결들이 아름다운 율동을 만들고 있다. 이렇듯 기암절벽과 해안의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름답기로 유명한 금산은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명산 중 명산이다.

벼랑 끝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삼층석탑. 지금껏 보았던 어느 석탑보다 마음과 눈길이 끌린다.
벼랑 끝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삼층석탑. 지금껏 보았던 어느 석탑보다 마음과 눈길이 끌린다.임윤수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비단길을 걷는 촉감을 느낄 만큼 주변의 풍광이 좋은 곳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보리암 직전에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을 통과하게 된다.

금산의 명치끝을 드나드는 관문이며 자연이 만들고 있는 보리암 일주문이다. 옛날엔 천양문이라 불렀으나 신라 초기 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 하여 쌍홍문(雙虹門)이라 부른데서 지금껏 그렇게 부른다 한다.

제 어느 곳에서고 '어머니'하고 외치면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기꺼이 내주던 어머니처럼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 자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이다.
제 어느 곳에서고 '어머니'하고 외치면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기꺼이 내주던 어머니처럼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 자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이다.임윤수
보는 이에 따라 여인의 눈웃음처럼 유혹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해골에 뻥 뚫린 공허한 눈구멍으로 보일 수도 있는 한 쌍의 굴은 높이가 7~8m쯤 된다. 올라온 길도 더듬어 볼겸 걸음을 멈추고 굴속에서 뒤돌아보는 산하의 풍경이 아름답다.

멀리 상주해수욕장이 안고 있는 바닷물에선 쪽빛인 듯 청보리 빛인 듯 푸르스름한 방광이 일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는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석가 세존이 금산에서 깨우침을 얻은 후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인도로 가기 위해 무념무상으로 하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하산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세존이 가까이 가자 갑자기 그 커다란 바위에 무지개 같은 구멍이 생기며 가는 길을 열어 주어 이 길을 통해 석가세존이 인도로 갔다는 전설이 간직된 석문이 바로 이 쌍홍문이다.

쌍홍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의 장군암과 사명대사의 행방을 알기 위해 보연, 보배, 보원 세 비구니 스님이 기도한 끝에 경남 거제 앞 바다 연화도에서 사명대사를 친견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는 '음성굴'을 지나 몇 걸음 더 올라가면 보리암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사실 보리암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경내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리고 기암과 수목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불상이며 법전이니 그냥 눈길 닿는 곳 모두 경내라 하고 싶지만 부득불 삼층석탑과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곳부터 자투리 평지가 조금씩 있으니 이곳부터를 경내라고 표현한다.

벼랑 끝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삼층석탑, 지금껏 보았던 어느 석탑보다 마음과 눈길이 끌린다. 이 탑을 이루고 있는 돌들은 삼국시대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태비가 월지국에서 우리 나라로 돌아올 때 타고 오던 배의 밑바닥에 깔았던 돌로 신라 초에 탑을 세웠기에 신라삼층석탑이라고 한단다.

바스락거리는 이 산죽길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다는 기도 터가 나온다.
바스락거리는 이 산죽길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다는 기도 터가 나온다.임윤수
이 돌은 바다를 건너오며 모진 풍랑에 방향을 잃었는지, 아니면 자연의 흐름조차도 무시할 만큼 커다란 도력을 가졌는지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이 탑의 밑변 돌 위에서는 나침반 바늘이 정상으로 움직이지만 윗변 돌 위에서는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기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확인을 해 보진 못했으나 탑석의 일부가 자철광처럼 자성(磁性)을 띤 광석이 아닐까 생각한다.

삼층석탑 바로 앞에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금산의 온갖 형상의 기암과 파스텔 산색을 배경으로 서있는 보살상의 미소에는 어머니의 무한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곡선의 몸매에선 여인의 아름다움보다는 어머니의 강하고도 따사로운 모습이 느껴진다. 언제라도 '어머니!'하고 부르면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주던 어머니처럼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 자비로운 모습이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등 이런저런 전각들이 나온다. 종무소 앞에서 아래쪽으로 나 있는 대나무 사이의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 보라. 바스락거리는 산죽을 스치며 내려가다 보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던 장소에 그의 후손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건립하였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을 볼 수 있다.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던 자리에 후손인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건립하였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이 보인다.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던 자리에 후손인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건립하였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이 보인다.임윤수
보리암에는 두 가지 창건 설화가 전한다. 하나는 의상대사와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방방곡곡 금수강산을 흐르듯 돌아다니다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듯 빛나는 금산의 승경에 이끌려 입산하여 초가집을 짓고 수행을 한 보광사에서 창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인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다. 장유선사는 허황옥 공주의 삼촌으로 지리산 칠불사에서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을 성불케 한 스승이기도 하다.

그러한 장유선사가 금산의 천태만상 변화에 매혹되어 금산에 터를 잡아 인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 보리암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다.

산의 기암과 푸른 산 빛 그리고 웅크리듯 들어선 전각들이 한 폭의 풍경화다.
산의 기암과 푸른 산 빛 그리고 웅크리듯 들어선 전각들이 한 폭의 풍경화다.임윤수
금산 어느 곳에서 둘러봐도 망막에 맺히는 산하는 명화며 절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리암에서 구원도 얻고 어떠한 깨우침도 얻었으리라. 우둔한 필자조차도 금산 보리암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 것을 알게되니 이 또한 세속의 삶에 아름다움을 느낀 작은 깨우침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쫓기듯 허겁지겁 오르느라 미처 눈길조차 마주하지 못했던 돌과 수목들이 한마디 하는 듯하다. '여보게 뭘 그리 서두르나. 어차피 인생은 뚜벅뚜벅 걷고있는 걸. 앞서려 서두르지 않으면 인생이 여여(如如)롭네'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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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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