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69

등록 2004.05.27 09:02수정 2004.05.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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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홍수(BC 2900년) 때 지우수드라 왕이 갔다는 딜문은 바닷길 저 아래일 수도 있지 않겠소?"
교장이 질문을 던졌다.

대홍수 때 지우수드라 왕은 배를 타고 7일 낮과 6일 밤을 물 위에 떠 있었고 그가 희생제를 올리자 신들이 그를 딜문으로 안내했다는 신화는 길가메시 서판에 있었다. 비록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달랐다 해도 길가메시는 실존인물이라 거기에 수록된 딜문이 더 정확한 장소일 수도 있지 않는가.


물론 영웅이나 신화의 서판이 각자 조금씩 다르거나 변형이 되었다 해도 후대인으로선 그 누구도 이것만 옳고 저것은 틀리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신화로 뭉뚱그려진 역사는 더욱 그러하고 그 신화를 풀어 역사로 옮기는 작업 또한 매듭과 이음새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지우수드라 왕은 배를 축조해 불어난 강물에 그 배를 띄웠다고 했습니다. 또 사방에 산이 솟고 또 그 산이 가라앉았다고 했는데, 만약 배가 곧장 바다로 나갔다면 그런 현상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다는 물이 모이는 곳이고 또 해일이 일면 섬을 가라앉힐지언정 없던 섬을 일으켜 세울 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우수드라 왕의 배는 몇날며칠 물 위에만 떠 있었다고 했소. 그렇다면 그곳이 바다일 수도 있지 않겠소?"
젊은 교사의 의향에 교장이 이의를 제기하자 이번엔 교감이 나섰다.

"교장선생님, 가까운 나라 바빌론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지금 번듯하게 세워진 칠광사원(바벨탑)도 사실은 그 축조를 시작한 사람이 보르시파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대홍수(9백년 전) 직전이었지요. 그때 거의 다 올린 탑이 지진과 천둥에 무너지고 바닥에서는 별안간 홍수가 차오르자 일꾼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던 비계로 뗏목을 만들어 대피했다는 것입니다. 물은 삽시에 온 천지를 덮어 역류하거나 소용돌이 쳤고 그때 뗏목이나 배를 이용한 사람들은 산 쪽으로 밀려갔으며, 홍수가 끝났을 때 많은 백성들 또한 산 위로 대피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선조 지우수드라 왕도 바다가 아닌 비손강가의 그 딜문이 닿았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도 큰 홍수가 나면 우르는 물론 우루크의 온 농토까지 소금물에 덮이듯이 대홍수 때는 바닷물이 역류해 온 산하를 휘덮었을 것입니다."
젊은 교사가 두둔했고 후사드가 그 뒤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음유시인이었다.

"제 아버지 말씀이 궁중 시인은 전승을 노래하고 민간 시인은 전설을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궁중시인은 서사의 줄기를 따라가지만 민간 시인은 백성들의 전설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전설이란 도처에 흐르는 지하수 같고, 또 그처럼 개개인의 피 속에 묻혀 있어 그 무엇보다도 진실에 가깝다고도 했습니다."


"후사드, 우린 이미 전설도 감안하고 있었지 않소?"
교장이 그의 말을 가로질렀다.

"예, 그러니까 저는 제 아버지가 백성들에게서 수집한 전설을 말씀드리자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엔키에 관한 것인데, 처음 엔키가 멜루하에서 군사를 몰고 왔을 때 바닷길 그 아래 어느 지역에 임시로 주둔시킨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리두를 집정한 이후에도 그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 명명하며 각별히 대우했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들어갈 작업이 엔릴이 멜루하에 가서 엔키를 만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멜루하의 군사를 그곳에 임시로 주둔시켰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교장이 바짝 긴장을 하며 되물었다.

"그래요? 그리고 또 어떻게 했답디까?"
"엔키가 딜문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면 제2의 고향이란 제 2의 딜문이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그냥 딜문으로 통용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제 생각은 지우수드라 왕이 닿은 곳은 그 제 2의 딜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후사드의 말이 옳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설정한 동방민족에도 별로 오차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경로로 확인했습니다."

수메르인의 동방 도래설을 어느 수행사제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제는 엔릴보다는 하늘 신(天神)에 관심이 있었고 그 신을 모시는 지방을 찾아 구아라에서 중원 넘어 동쪽 끝까지 순례를 했다. 그는 말했다. 나라는 서로 달랐지만 천신을 모시는 것은 같았고 생활풍습 또한 비슷하더라, 그러나 생김새는 동이족이 수메르인과 좀더 닮았고 그들 역시 머리카락이 곧고 검으며 뒤통수가 편편하더라고 했다. 교장이 더 자세히 묻자 그는 동이족의 영웅 치우의 활약상과 역사와 풍습 등 아는 데로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즈음 또 피난민들까지 만난 것이었다. 사실 그 집단은 피난민들이라기보다 수메르를 아주 떠나는 이주자들이었다. 그들은 우루크 외곽에 살던 집성촌 사람들로서 모두 마을을 떠났는데 그 수가 족히 5백 명은 넘어보였다. 한데 그들이 먼저 성지로 와서 '우루크 문'을 두들긴 것이었다.

문지기 사제가 용건을 묻자 그들은'우리 모두 엔릴신께 경배를 드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문지기 사제가'모두는 들어갈 수 없다, 지도자만 들어가라'고 허락했으나 촌장이 나서서'그럴 수 없다, 모두가 경배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떠나는 것이고, 다시는 수메르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직 경배를 위한 향로도 들고 왔다,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한 한발자국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후 성문 앞에 주저앉아버린 것이었다.

결국 책임사제장의 특별허락이 내려진 후에야 그들은 에쿠르 신단 꼭대기로 오를 수 있었는데, 그때 그들은 저마다 향로봉에 불을 붙이고 차례로 계단으로 오르면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그때 교장은 경배를 드리고 내려오는 촌장을 잡고 '어째서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나느냐'물어보았다. 그러자 촌장은 비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루크 성도 함락되었소. 쿨랍의 이난나 신전도 놈들의 곡괭이에 갈기갈기 찢어졌소. 이제 정말로 수메르는 끝났소. 찬란한 우리 역사가 아카드인, 여사제의 사생아 그 사르곤한테 뺏겼을 때가 이미 그 전조였소.'
'그러나 우리는 아카드로부터 다시 수메르를 찾았지 않소.'

'그것은 신들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마지막으로 준 기회였소.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조차 잃었소. 얘기했다시피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오. 오래토록 한 성씨들만으로 이루어온 마을이오. 아카드 시절, 곳곳에서 혼혈이 자행되었지만 우리는 그것도 피해왔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우리의 혈통을 보호하거나 혼혈을 피할 방법이 없게 되었소. 그래서 아주 떠나기로 한 것이오.'

'그럼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오?'
'원조의 나라를 찾아가는 것이오. 그 길만이 엔릴 신께서 주신 우리의 혈통을 지키는 일이오.'
'그 원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소?'
'우리 집성촌의 선조는 중원쪽 황하에서 왔다고 했소. 거기 가면 소호국이 있다는데 아마 지금쯤 국명이나 장소가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어떻게 찾는단 말이오?'
'우리의 문자는 중원의 은나라 글자와도 같다고 했소. 그런 나라조차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글로 쓰면 통할 수 있다고 선조들은 말해왔소.'

그래서 교장은 그 촌장을 순례사제한테로 데려다주었다. 안내만 잘 받는다면 헤매지 않고 곧장 원조의 나라로 찾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교장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별안간 밖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또 피난민들이 몰려왔나?'교장은 놀라서 얼른 밖으로 나가보았다. 이번에는 피난민들이 아닌 사제들이 곡을 하며 '우르의 문'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제가 가보고 오겠습니다."
언제 뒤따라 나왔는지 룸마가 말한 후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 사제를 잡고 까닭을 물었고 그 사제는 '우르와 우르크'의 여사제들이 포로로 잡혀 침략군들의 노리개가 되었고 그 수모를 견디지 못한 우르의 여사제장이 한 적병 대장을 찌르고 자신도 장렬하게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룸마는 되돌아와 교장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그래서 사제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우르의 문' 앞에서 통곡의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장은 뼈 시신으로 성탑을 지키고 여사제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교장은 성큼 등을 돌리며 일행들에게 지시했다.

"자, 우리도 들어가서 어서 일을 계속합시다." "우리의 초안대로 말입니까?"
교감이 물었다.
"그렇소. 에인장군을 모시고 니푸르 여행을 시작합시다!"
교사들은 와! 하고 함성을 질렀고 교감은 등잔불을 준비했다. 오늘은 밤에도 필경을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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