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62

쫓고 쫓기는 자

등록 2004.06.08 17:45수정 2004.06.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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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는 일이 시전 바닥을 돌아다니는 일이었지만 최근 백위길은 시전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시전에서 노닥거리다가 백위길과 마주치면 슬슬 농이나 걸던 왈패들이 언젠가부터 안 보인다는 것이었고 뭔가 포교 몰래 숨기는 듯한 몇몇 상인들의 행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이 예전에 물건을 대어다 주었던 옹기상들에게 물어보아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얘기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왈패들 사이에서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었네만."


그렇다고 그 새로운 자가 시전에서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니니 백위길이 굳이 귀찮게 나서서 찾아다닐 이유도 없었다. 그보다도 백위길은 문제의 '선달'에게 받은 백 냥을 돌려주는 것이 시급했다. 누가 빚을 독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백위길은 우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당장 백 냥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니 원.'

시전상인들에게 변통을 하자니 포교가 뒤에서 돈이나 뜯으려 한다는 말을 들을 까 두려웠고 고리대를 하는 자에게 빌리자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을 아는지라 망설여졌다. 백위길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차에 그의 앞에 뛰어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는 자가 있었다.

"누군가?"

백위길이 살펴보니 반촌사내 박팔득이었다.


"허, 소인을 벌써 잊은 것이옵니까. 여긴 어인 일인지요?"

백위길이 둘러보니 그제서야 자기도 모르게 푸줏간 거리에 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았다고 아는 체 하는 이가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도 뭐한 나머지 백위길은 애향이에게 가져다 줄 양으로 박팔득에게 한 냥을 꺼내어 주며 되는 데로 쇠고기를 잘라달라고 말했다. 박팔득은 크게 반겨하며 쇠고기를 푸짐하게 잘라 광목에 정성껏 싸서 백위길에게 건네어 주었다.


"아니 이 사람아...... 겨우 한 냥에 무슨 고기가 이리 많은가?"

"허...... 포교님께 결례를 범한 일도 있고 은혜까지 입었는데 어찌 무심할 지나칠 수 있사옵니까?"

백위길은 고기를 받아 보며 문득 박팔득에게라면 능히 백 냥쯤은 변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이 그럼 되겠는가?'

백위길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마 입을 뗄 수 없어 그냥 돌아서 가려했다. 그때 박팔득이 떨리는 목소리로 백위길을 불렀다.

"저...... 포교님."

"왜 그러느냐?"

"염치없는 말인 줄 아오나...... 중요한 일이 있어 아뢰고자 하는데...... 지금은 남의 이목이 있사오니 시전이 파할 무렵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이리로 들려주실 수 있사온지요?"

"그러겠네."

백위길은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냉큼 대답하고서는 푸줏간 거리를 빠져나왔고 시전이 파할 무렵 다시 푸줏간으로 들려 박팔득을 만났다.

"그래 무슨 일인가?"

"실은...... 제 동생 놈 얘기온데......"

박팔득은 우물쭈물하며 좀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옵니다. 역시 그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박팔득이 고개를 내 저으며 말을 안 하자 백위길은 '별 싱거운 놈 다 보겠다.'란 심정이 들어 냉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아니지! 이렇게 된 거 밑져야 본전인데 나도 저 자에게 백 냥에 대해 부탁을 해봐야겠다!'

백위길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으며 박팔득을 설득하듯 말했다.

"거 무슨 곤란한 일이든 일단 말을 해보게나. 나도 자네에게 청할게 있네만."

"이미 저는 앞으로 도울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찾아달라고 약조한바 있사옵니다. 비록 미천한 반촌인이오나 목이 달아나도 약조한 바는 꼭 지키니 이를 두고 흥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 말을 기다릴 것도 없으니 말씀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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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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