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김규환
배는 고팠지만 결코 서럽지 않았다. 서러운 생각도 나지 않게 코를 질질 흘리며 마냥 즐겨 놀았던 아이들은 연중 바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허기진 배를 채우려 산과 들, 집 주위를 맴돌았다.
가을철엔 장구밥, 깨금(개암), 팥배, 아그배, 머루와 다래, 으름, 포리똥(보리수), 정금, 산밤 따서 먹고 겨울로 접어들면 홍시를 필두로 고욤과 칡, 마, 고구마, 고드름을 먹었다. 봄엔 진달래로 시작해서 삐비, 찔구, 띠뿌리, 칡깽이, 아카시아 꽃, 매콤한 고수, 냉이뿌리와 잎을 캐고 뜯어 먹었다. 메꽃 뿌리도 구워서 즐겼다.
이름에 걸맞게 여름엔 열매가 지천이다. 여름철에 우린 산과 나무를 자주 오르내렸다.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고 산딸기를 먹고 앵두 따먹고, 까만 버찌를 입에 물고 살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아 쏘다녔으니 움직이는 사이 허기는 더 몰려왔다. 보리 꼬실라 비벼 먹고 밀 껌 먹고 개구리 뒷다리와 쓰디쓴 약초 뿌리와 나물을 캐서 먹었다.
철이 없다고는 하나 철마다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아이들은 식물도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에 빠삭했다. 자주 빛 감자 꽃 필 무렵 감자로 연명하다시피 했던 때는 보릿고개다. 일년 중 가장 힘든 시기인 보릿고개가 다가오면 어른들은 식구들 먹일 식량 걱정과 농사지을 염려로 얼굴이 펴지질 않았다. 아이들도 매한가지로 한없이 배고팠던 때이기도 하다.
초등학교에 있는 벚나무는 소사아저씨가 농약을 치는 통에 따 먹을 수 없었다. 한 번은 나 홀로 왕복 십리 산골짜기로 주전자 들고 버찌 따러 갔다가 집 나온 벌을 밟는 통에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마을엔 벚나무가 네 그루 있었다. 두 당산에 각 한 그루와 공동 우물인 샘에 한 그루 그리고 동각(洞閣)에 한 그루가 마을을 지켰다. 당산에 있던 나무는 버찌가 익어도 왠지 달지도 않고 꽝꽝했고 쓴맛만 가득했다. 특히나 당산과 철룽에는 금줄이 걸려 있어 우리가 접근할 수 없었다.
맨 먼저 우물가에 심어진 벚나무에 버찌가 파랗게 영글면 그 자리로 몰려들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발걸음은 무척 빨랐다. 버찌가 익으려면 열흘은 있어야겠다.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아 겉만 붉으스름하다.
“야! 범(버찌) 익었냐?”
“한참 멀었다야.”
“근디 뭐할라고 매달려 있댜?”
“시잘 데 없는 소리 말고 올라왐마.”
무슨 맛으로 먹었던가. 입안이 궁금해서 나무에 올라 푸르댕댕한 열매를 따서 씹어 본다.
“야 한나 꺾어서 내려봐야.”
“아따 쓴 거. 퉤퉤. 못 묵겄다.”
쓴 버찌 맛만큼 독한 게 없다. 씁쓸하다기엔 뭐하고 쌉싸래하다고 말하기도 어색하다. 괜히 먹었다 싶게 지독히 쓰기만 하다. 오디라면 덜 익어도 시큼한 맛에 따먹는다지만 붉어져도 단맛보다 쓴맛이 더한 버찌는 왜 그리 맛이 없던지. 입안에 고였던 침이 사라지게 하는 기분 나쁜 맛이 버찌 설익은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흔들어도 결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파랗거나 붉은 열매를 미끄러운 가지 끝까지 가서 한 가지 꺾든가 자루 째 따먹는 아이들은 우물가에 있던 버찌가 익기도 전에 야금야금 축을 냈다. 까맣게 익기를 기다리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앞에 두고 지키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야 한송이 내릴 텡께 받아라.”
“그려 띵겨봐.”
“자 떤진다.”
“아따매 샘에다 빠쳐불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긍께 잘 받아야제.”
던진 가지가 춤을 추며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우물에 손을 넣어 꺼내니 반소매 옷도 젖는다. 그래도 위에 벌써 가지마다 한 명씩 다섯 명이 올라가 있으니 밑에서 던져주는 거나 주워 먹어야 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