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36

어둠 속의 두 그림자 (4)

등록 2004.06.14 12:42수정 2004.06.1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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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잠자리에 들었던 청강선녀 호옥접은 요란하게 대문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깼다. 황급히 나가 대문을 여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단의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거두절미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여인을 고쳐달라 하였다. 마침 조부인 남의에게서 들었던 의성장 참화사건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그녀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만일 못 고친다고 하면 즉각 공격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섬뜩했던 것이다. 그런 사건 때문에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 전부를 잃지 않았던가! 하여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그녀는 장일정의 서실로 단 걸음에 달려갔다.

본시 무천의방 방주는 성안에 기거하여야 하나 현재 수뇌부에는 환자가 없다. 그렇기에 아흐레마다 한번씩 의성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호옥접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하 각지에서 자신의 치료를 받기 위하여 몰려든 환자들을 위함이었다.

몹시 놀랐는지 헐떡이는 호옥접을 본 장일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환자가 어디 시간 봐가며 아프냐고 하면서 그들을 병사(病舍)로 안내하라 하였다.

한밤중에 찾아 온 배앓이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고 나갔던 그는 호옥접이 왜 놀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색으로 미루어 분명한 무림인들이었다.


불진(佛塵 :불자(拂子)라고도 함. 짐승 꼬리털을 다발로 묶고 자루를 단 불구(佛具). 장례 등의 법요(法要) 때 도사(導師) 역을 맡은 승려가 쥐는데, 원래는 인도에서 모기를 쫓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뒤에 수행자(修行者)를 지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마하승지율(摩訶僧祗律)에 의하면 비구(比丘 :중)가 모기에 시달리고 있음을 안 석존이 양모(羊毛)나 아마(亞麻)를 꼰 것에 자루를 단 것을 허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남에게 도둑질을 범하게 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중국 선종에서 설법 때 장엄구로 많이 사용되었다.)을 품고 있는 나이든 비구니의 등에는 한 자루 장검이 매어져 있었고, 각진 얼굴을 한 위맹스런 장년인의 허리춤에도 검이 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무림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병장기를 지니고 있겠는가!


또 다른 장년인은 중원인이 아닌 듯 금발에 벽안이었는데 그 역시 각진 얼굴을 한 장년인 못지 않게 용맹스러워 보였다.

그의 곁에 붙어 안절부절못하는 묘령의 여인 역시 금발에 벽안을 한 기막힌 미녀로 장년인의 여식인 듯하였다.

일행 가운데에는 여인들 몇이 더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천하절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반면, 다른 하나는 몸무게가 적어도 삼백 근은 됨직한 무지막지하게 뚱뚱한 여인이었다. 어떻게 걸어다니며, 누웠다가는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이들 이외에도 눈에 뜨이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한 자루 철부(鐵斧)를 품고 있었다. 역발산 기개세를 지닌 장사가 분명했다.

풍겨지는 기도로 미루어 악인은 아닌 듯하여 다소 마음이 놓였지만 장일정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쳐 도저히 손댈 수 없는 환자를 치료하라 하였다가 못한다고 하자 사부인 북의의 손목을 자르고 식솔 모두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걱정은 기우였다. 자신을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어 환자를 살려달라고 통사정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누워있는 환자를 진맥하였는데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 한 것이다.

“흐흑! 제발, 제발 우리 사라 좀 살려주세요. 흐흐흑! 사라가 잘못되면… 잘못되면… 흐흑! 소녀는 못 살아요. 흐흑!”
“이보시게, 다시 한번만 진맥해보시면 안 되겠는가?”
“아미타불! 시주,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번 진맥해주시게.”

숱한 일을 겪었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죽어 가는 환자를 그냥 지켜보아야만 하는 마음이 너무도 아팠던 장일정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생의 능력으론 도저히…”
“아미타불! 이보시게 시주. 내공이 문제라면 본니가 격체전공(隔體傳功) 수법으로 불어넣어 줄 수 있네. 그러니…”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소생은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우흉심인지라 내공을 쓸 수 없는 몸입니다. 그리고 집도를 하기엔 소생의 부술이 너무도 일천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였지만 방도가 없다 판단한 장일정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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