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흑! 안 돼요. 우리 사라를… 우리 사라 좀 살려주세요. 네? 흐흑! 사라가 없으면… 없으면… 흐흐흑! 아아아앙!"
장일정의 무릎 앞에 엎드린 채 애원하며 흐느끼던 유라는 대성통곡하며 울부짖었다. 이 모습을 본 장일정은 또 다시 침음을 토했다. 이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의 무능력이 때로는 중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으으음!"
"무천의방의 방주시라면 천하제일의가 분명한 데 어찌 못 고친다 하십니까? 그러지 말고 어서 고쳐 주십시오. 재물이 필요하다 하시면 원하시는 만큼 드릴…"
지금껏 지켜보던 왕구명 역시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한마디하며 나섰으나 그의 말은 금방 잘려야 하였다.
"방금 뭐라 하시었소? 소생이 환자를 앞에 두고 은자나 바라는 그런 파렴치한 의원이라 생각하셨다는 말씀이시오?"
"허억! 아, 아니외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왕구명은 표독스럽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단호한 장일정의 표정과 말에 흠칫하며 물러섰다.
"흥! 아니긴 뭐가 아니오? 지금 소생이 은자를 내놓지 않아 고칠 수 있는 환자를 고치지 않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소?"
"아, 아니외다. 그, 그런 뜻이 아니고…"
왕구명은 또 다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사라를 데리고 썩 꺼지라는 말을 할까 싶었던 것이다.
"이, 이보시오. 다시 한번 살펴봐 주시면 안 되겠소? 우리 불쌍한 사라를 어찌 이대로 보내라 하시오? 보시오. 아직 숨도 붙어 있고, 체온도 따뜻하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도 있었소.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번 살펴…"
"소생이 고칠 수 있다면 왜 고치지 않았겠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 환자는 소생의 능력 밖이외다. 죄송하오."
"으으으음!"
"으음!"
방금 전, 왕구명과의 언쟁 때문인지 단호해진 장일정의 말이 끝나자 모두 깊은 침음성을 토했다.
태산에서 한운거사 초지악과 은밀히 악행을 자행하던 예비대원들과의 치열한 접전 끝에 그들 모두를 지옥으로 보낸 직후 사라를 발견한 일행은 심상치 않다 판단하고 급히 하산하였다.
가장 가까운 시진인 곡부(曲阜)에 당도한 그들은 고개를 내젓는 이십여 명의 의원만 보았을 뿐이다.
더 큰 시진으로 가 보라는 말에 석가장(石家莊)까지 북상하였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황도(皇都)까지 가야했다.
이곳에서 만난 의원의 수효만 해도 얼추 백 명은 족히 되었다. 하지만 사라를 치료할 능력을 지닌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때 죽었던 소년을 살려낸 고명한 의원이 있으며 그가 무천의방의 신임방주인 소화타 장일정이라는 소리를 들은 일행은 전속력으로 남하하였다.
황도에서 무림천자성이 있는 무한까지 오는 동안 들르는 곳마다 많은 의원들을 만났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능력 밖이라면서 계면쩍은 얼굴로 물러나던 의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소화타만이 치료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렇기에 무한으로 향한 것이고 그를 만나기만 하면 사라의 병세쯤은 능히 다스려질 것이라 믿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장일정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한밤중에 들이닥친 것인데 고칠 수 없다며 물러서자 낙심천만하였던 것이다.
"흐흐흑! 우리 사라가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흐흐흑!"
"으으음…!"
"아미타불! 나무 약사유리광여래불(藥師瑠璃光如來佛)! 나무 약사유리광여래불! 나무 약사유리광여래불!"
줄여서 약사여래라 부르기도 하는 약사유리광여래는 보살도(菩薩道)를 닦을 적에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얻도록 십이대원(十二大願)을 발원하였다. 그것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앙을 소멸시켜준다는 것이다.
믿었던 의원이 손을 놓았으니 이제 약사여래 부처님에게 매달려 자비를 구하려한 것이다.
"이보시게, 방주!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이오?"
"죄송하오만 그렇습니다. 소생의 능력으론… 내공도 없고, 부술도 일천하여… 정말 죄송하외다."
"으으음!"
나지막이 침음을 낸 사면호협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사라와 그녀의 위에 엎어져 오열하고 있는 유라를 보았다. 그녀가 사라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기에 불쌍하다는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그의 눈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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