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멋을 부린 참빗오창석
평생 머리를 빗으며 그녀는 지아비 없는 설움과 정절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그리고 폐경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확인되는 여성성 앞에서 절망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결국 혹독한 자기검열의 과정과 시간의 퇴적 속에 화석화되어 버렸을 터, 그저 할머니의 모습은 정성들여 머리를 빗는 정갈함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빗은 옛 사람들에게 정절과 사랑, 건강의 상징이었다. 사랑의 징표로 준 빗을 잃어버리면 여인이 정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빗을 주면 혼인을 허락하는 것과 같았다. 이가 날 무렵 아이에게 얼레빗질을 해주면 얼레빗처럼 이가 드문드문 돋아난다고 믿었고 제삿날에 머리를 빗으면 조상신이 노하여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상중에는 망자에 대한 예로 머리를 감지도 빗지도 않았다. 또 하루에 세 번 이상 머리를 빗으면 바람날 징조라 하여 금기시했으나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50~100회 빗질하기가 권장되기도 했다.
생활필수품으로써 오랜 역사를 가진 빗은 먼 옛날 '낙랑'이나 삼국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데 재료 또한 다양하여 나무, 은, 자라등껍질 등이 쓰였다. 옛부터 죽세공품의 산지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서는 300여년 전부터 참빗이 생산됐는데 일제하에서는 300여 호가 넘는 집이 이 일에 종사했다. 6대째 같은 자리에서 참빗만을 만들어 오고 있는 고행주(담양읍 향교리, 70세)씨는 이 땅의 몇 안 되는 '참빗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