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다정한 오후. 치소파니(2215M)김남희
이 친구 다니엘은 올해 마흔 두 살인데, 생긴 모습으로 일단 사람을 위협해. 덩치는 산만해서 머리와 수염은 되는대로 기른 장발이지, 옷차림도 ‘프론티어’ 정신을 그대로 구현한 데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선한 인상이라고 할 수는 없거든. 인상 험악한 사람을 보면 움츠러들기부터 하는 나인지라 당연히 고개만 까딱하고 말을 걸지 못했어.
다니엘이 내게 말을 걸어온 건 내 책의 표지를 봤을 때였어. “이거 ‘운디드니에 나를 묻어주오’ 맞지?”하며 묻는 거야. “맞아. 너도 읽었니?”라고 물으니 “그럼, 몇 번을 읽었어. 정말 좋은 책이지.”라고 답하는 거야. 그렇게 다니엘과의 대화가 시작됐어.
다니엘은 92년부터 97년까지 우리나라 대학에서 영어강사를 했대. 한국말은 못 하지만 한국에 관해서도 꽤 알고, 한국음식도 사랑해서 네팔에 온 후 벌써 한국식당을 세 군데나 찾아갔대.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친구가 지난 25년간 피워오던 담배를 6개월 전에 끊었고, 20년 가까이 애용해 온 마리화나 역시 3개월 전에 끊고, 지금은 술을 끊으려고 하는 중이라는 거야. “난 내 몸을 정화하러 네팔에 왔어”라며.
그토록 애용해온 담배와 약과 술을 이 친구가 어떻게 끊을 결심을 했는지 알아? 지난 3년간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에티오피아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어느날 이 친구가 그러더래. “넌 지난 20년간 술, 담배, 약을 하면서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20년은 그것들 없이 살아보는 건 어때? 새로운 경험이잖아?”
다니엘에게는 이 한 마디가, 술, 담배, 약이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온갖 부정적인 영향을 논하면서 끊기를 요구하는 긴 말들보다 훨씬 명확하고 설득적이었대. 그래서 바로 끊은 거래.
“그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어때?”라고 물으니 “우선 그 새 몸무게가 10킬로그램 늘어서 좀 부담스러워. 그리고 아직은 솔직히 내가 이것들(술, 담배, 약) 없는 세상을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라며 웃어.
자기가 즐겼던 건 술, 담배, 약을 통해 얻는 위안이나 효과보다는 그것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 문화 자체였는데, 이제 자기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잃는다 생각하니 좀 두렵기도 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