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68

쫓고 쫓기는 자

등록 2004.06.18 09:15수정 2004.06.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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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의 성화에 떠밀리다시피 기방을 나간 백위길은 무작정 애향이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위길은 앞서 나간 애향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애향아! 빚이 있다니 무슨 소리냐!"


애향이는 백위길을 뿌리치며 발걸음을 반대로 바꿔 기방으로 향했다.

"네가 곤란을 당하고 있다면 응당 내가 도와야 할 일이 아니냐!"

애향이는 우뚝 멈춰서 묘한 표정으로 백위길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들과 가까이 하지 마소서."
"그들이라니?"
"몰라서 묻사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저와도 가까이 하지 마시옵소서."

백위길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는 듯 우뚝 서 버렸고 그 틈에 애향이는 백위길의 시야에서 천천히 사라져갔다. 백위길이 정신 없이 기방 근처를 배회할 이 무렵, 심지일은 포교 김언로와 포졸 너덧을 대동하고 다방골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겠느냐? 이 근방에 그 놈이 있다 들었다. 그 놈을 보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조건 오라로 꽁꽁 묶어야 하느니라."
"그 놈의 용력이 남다르다고 들었는데 괜찮을지…."

김언로가 자신 없다는 소리로 중얼거리자 심지일은 벌컥 화를 내며 그를 꾸짖었다.


"이런 일을 한 두번 겪은 것도 아닌 포교가 어찌 죄인을 무서워하느냐!"
"허나 그 놈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잡아들여야 하는 일이옵기에 저항이라도 하면…."

김언로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끔적이가 포교들의 앞에 당당하게 나섰고 놀란 포교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우포도청에서 절 찾아왔다 들었소이다."

끔적이가 말투가 너무나 당당했기에 심지일은 화부터 나기 시작했다.

"네 이놈! 그렇다면 냉큼 무릎을 꿇고 오라를 받아라!"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러시는 것이옵니까?"

심지일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들어 끔적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네 놈이 시전의 상권을 어지럽히고 상인들을 구타한다는 고변이 들어왔느니라! 저항하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지 못할 것인즉…."
"그렇소이까? 자 묶으시오."

심지일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던 끔적이는 더 이상 말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두 손을 뒤로 돌리며 등을 보였다. 포졸들은 오라를 든 채 엉거주춤 끔적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 뭘 그리들 망설이시오? 어서 날 묶어 포도청으로 데려가시오. 죄가 있다면 당연히 포도청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소?"
"맨꽁무니(압송해 가는 죄수에게 씌울 종이광대가 없을 때 쓰는 포교들의 은어)인데 상관 없겠소이까?"

끔적이는 아무려면 어떻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심지일은 김언로에게 괜한 걱정을 다한다며 한바탕 면박을 주었다.

오라에 묶여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가는 중에도 끔적이의 태도는 당당했다. 옥에 넣어진 끔적이에게 심지일은 칼을 씌울 것을 명했다.

"그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김언로가 주저하는 듯 운을 띄우자 심지일은 다시 역정을 내었고 끔적이는 칼을 쓴 채 눕지도 못하며 포도청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다.

"무어라? 포도청에서 끌고 갔단 말이냐?"

끔적이가 포도청으로 끌려간 후 깊은 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다방골 한 구석에서는 두 사내의 은밀한 말이 두런두런 오고 갔다.

"그렇사옵니다."
"알겠네. 내 빨리 손을 씀세."
"전처럼 그 사이 놈들이 몰래 손을 써 죽여 버렸으면 어찌 하옵니까?"
"멍청한 심종사관이 데려갔다면 당장 그럴 일은 없을 걸세."

말을 마친 두 사내는 누군가의 이목이 두려운 듯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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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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