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44

칠성님들의 구름차 4

등록 2004.06.21 04:51수정 2004.06.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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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빠져나와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나지막한 산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 산 아래에 있는 많은 빌딩 한가운데 보습학원 건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백호가 말했습니다.

“저기가 틀림없다. 얼른 가자.”


학원 근처 큰길가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차들이 뒤집혀 화염에 휩싸여있고, 넘어진 나무들 그런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리가 말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여기 대체 무슨 일이 난거야, 꼭 전쟁터 같아. 그리고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백호는 큰소리로 동성군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동성군님, 동성군님, 어디에 계십니까? 백호가 왔습니다. 백두산 호랑이 백호가 왔습니다.”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아이구 세상에, 백두산 호랑이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나 좀 도와주게, 나 좀 도와줘.”


백호가 말했습니다.

“예, 전 백두산 산신님을 돌보고 있는 호랑이입니다. 얼른 밖으로 나오세요.”

보습학원 옆 골목에서 수염이 긴 아저씨가 한 번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갓은 갈갈이 찢겨있고, 옷이 온통 먼지투성이였습니다.

“동성군님…….”

동성군님을 향해 골목길로 달려가는 백호를 바리가 뒤쫓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동성군님을 보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바리라고 해요.”

백호가 말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동성군은 백호와 바리를 보더니 짐짓 안심이 되시는지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그 나쁜 호랑이들은 다 간건가? 조심해, 여기 근처에 아직까지 있을 수도 있어.”

바리가 놀라 말했습니다.

“나쁜 호랑이가 왔어요? 염려마세요. 천주떡을 먹으면 그 녀석들 제 근처에 얼씬도 못할 거니까.”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적이며 떡을 찾기 시작하자, 백호가 말렸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그 호랑이들은 절대 이 세상에 혼자서 나올 수가 없어. 분명 산오뚝이들이랑 같이 나왔을 텐데. 이 근처에 산오뚝이들은 없는 것 같거든."

맞는 말이었습니다. 어디서건 호랑이들이 나타나기 전 꼬리를 단 산오뚝이들이 나타나곤 했었고, 지금 그곳은 아주 황량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오뚝인들은 커녕 강아지 한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동성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내 구름차를 가져가 버렸어.”

백호 그리고 바리와 함께 터주신의 집에 돌아와 동성군님이 해주신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삼신할머니가 동성군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내가 점지해준 아이 중에 형준이라고, 나중에 박사가 될 사람이 하나가 있네.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는데, 요즘 어디가 안 좋은지 공부를 안 하고 맨날 딴짓만 하는 모양이야.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자네 소관이니까 그 아이 좀 봐주게.”

인간세상에 나가 공부하는 아이들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동성군은 흔쾌히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재능을 관장하는 칠성신들이 모두 인간세상에 나가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가르쳐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동성군은 세상에 나가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만 있다면 마다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에서는 직접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만나기도 했고, 가난하여 공부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장기알 같은 물건들을 구해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른 칠성님들의 반대가 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자네는 그렇게 구태여 밖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들은 여기서도 충분히 다 하는데.”

“그래, 여기서 가만히 보고 있어도 될 걸 가지고 그렇게 나가서 돌아다니면 피곤하지도 않은가?”

“혹시 나가서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러나?”

그럴 때마다 동성군님은 허허 웃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허허, 이렇게 좋은 구름차가 있는데, 내가 길을 잃기라도 할까봐 그런가? 그리고 자네들도 나가서 아이들을 직접 한 번 만나보게. 그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 그 아이들 눈망울이랑 뽀얀 젖살이랑 보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네. 게다가 요즘엔 아이들 공부하는 것이 옛날보다 엄청나게 많이 늘어서 여기 앉아서만은 도저히 관리를 해줄 수가 없단 말이네. 그거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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