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포스터극단 산
극장에 들어서면 여느 중국집처럼 자장면과 짬뽕 냄새가 섞인 중국집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무대 중앙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무대 좌측에는 조리실이, 우측에는 카운터와 출입문이 있다. 무대는 마치 1980년 광주의 어느 허름한 중국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봄이 오는 집'이란 의미의 중국집 춘래원 주인 신작로는 10여 년 고생 끝에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눈앞에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의 미래는 거창하지도 허황되지도 않다. 단지 통장에 돈이 조금 더 모이면 다방 레지인 오미란과 결혼을 할 예정이고 다리가 불편한 동생 신지수를 계속 공부시키고 동생이나 마찬가지인 배달원 백만식에게 양복을 사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80년 5월 봄이 오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생의 봄이 왔다고 좋아하던 이들 평범한 중국집 식구들은 국가에 의해 폭도로 낙인찍힌다. 광주의 거리에서 공권력이 보여준 야만은 이들처럼 평범한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국가의 폭력 앞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얼큰한 짬뽕 국물을 좋아하던 신작로만 살아남았다. 그는 매년 5월이 되면 가족들의 묘지 위에 소주를 뿌리고 쓰린 가슴만 쓸어내며 정말 짧았던 80년의 5월을 추억한다.
대학로 '어뮤징 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짬뽕>(극단 산/윤정환 작·연출)은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광주의 한 작은 중국집을 배경으로 광주의 평범한 시민으로 대표되는 중국집 식구들이 겪는 80년 5월의 광주를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보여준다.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언제나 비장할 수밖에 없는 5월의 광주는 비로소 <짬뽕>을 만나 비장감 속에 감춰진 서민들의 아픔 섞인 웃음을 찾아냈다. 이는 윤정환이 쓴 극본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생생한 밑바닥 사람들의 말이 잘 살아 있고, 인물만으로도 극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의 성격묘사가 잘 되어 있다. 또 관객들의 웃음보를 쥐어짜는 극중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극의 진행은 장면과 장면을 커튼을 이용하여 빠르게 전개시키고 있다. 또 장면을 연결할 때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를 삽입해 잦은 장면 교체에 따른 관객의 집중력 감소를 해소시켰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미친 소녀와 스님이 나오는 장면은 재미는 있지만 산만한 감을 준다. 또 배우들의 연기는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쳐서 작은 극장 안을 에너지로 터질 듯이 만들었다. 배우들의 에너지를 좀 줄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명 약점보다는 강점이 많은 작품이다.
<짬뽕>은 한국 연극이 올해 대학로 연극에서 발견한 하나의 성과다. 관객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폼 잡는 여느 연극보다 재미있지만 그 메시지는 강렬하다. 시간을 들여 극을 다듬고 손질한다면 5월 광주를 다룬 뛰어난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또 <극단 산>의 대표적 레퍼토리로 오랫동안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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