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포스터극단 청우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혼자 서기엔 불안하다.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작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또 그것을 금방 후회한다. 가끔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진행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극단 청우의 10주년 기념작 <뙤약볕>이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소설가 박상륭의 동명 소설을 연출을 맡은 김광보가 각색한 이 작품은 불완전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가는 소설의 주제를 능숙하고 밀도있게 표현했다.
극장 안에 들어서면 타원형의 경사진 무대와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객석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뙤약볕>이라는 작품을 공연하는데 가장 적절한 형태로 보인다.
관객은 액자무대를 바라보면서 극중 주인공이 되어 극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타원의 무대를 내려다보면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신이 되어 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연출의 의도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극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관객이라는 바다에 둘러싸인 타원형의 무대는 자연히 당굴이 사는 사당이 되고, 마을 사람들이 사는 섬과, 새로운 섬을 찾아 떠나는 배가 된다.
여기에 무대의 경사는 인간이 홀로 서기에 불안전한 존재라는 것을 상징한다. 경사진 무대에 서있는 배우들은 관객에게 불안함을 준다. 여기에 움직임은 수평의 무대보다 심한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아무런 무대장치나 대, 소도구들 없이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던 배경에는 배우들의 훈련된 몸동작과 함께 경사진 타원형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극의 시작에서 끝까지 관객은 배우들에게 집중하게 된다. 어떤 음악도 없다. 단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배우들이 내는 휘파람 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빗소리 등이다. 조명도 필터를 끼지 않은 밝은 조명과, 비바람이 부는 장면과 밤 장면에서의 파란색 조명으로 한정하였다.
여기에 아무런 장치나 대, 소도구들 없이 오직 배우들이 걸친 의상이 무대의 전부이다. 이런 단순함은 무대 위 배우에 대한 집중도를 키웠다.
배우들 모두는 극단 청우의 단원들이다. 이중 절반은 처음 무대에 서는 신인들이다. 처음 서는 배우들이 많음에도 배우들 대부분 자연스런 몸동작, 정확한 발성, 전체와 조화한 호흡(앙상블)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 모두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뙤약볕>은 독창적인 수작으로 김광보의 연출력이 정점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공연이었다. 1998년 초연에서처럼 그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박상륭의 원작을 무대 언어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초연과는 다르게 경사진 타원형의 무대와 배우를 중심으로 한 연출로 그의 연출력이 더욱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뙤약볕>은 신에 의지했던 인간이 신을 버리고 혼란을 겪다 세상에 대한 사유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며 끝을 맺는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것을 밑천으로 발전해왔다. <뙤약볕>은 그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전과 한국의 이라크 추가파병을 보면서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실패에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고, 한국 또한 베트남에서의 교훈을 잊어버린 듯 보인다. 인간은 참으로 변덕스럽고 잊어버리기까지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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