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흑! 흐흐흐흑…!”
“어머니! 흐흑! 어머니…!”
오랜 세월 서로를 그리워하던 모자의 감격적인 해후였다.
“어디 보자, 내 아들! 잘 성장했구나. 헌데 이 흉터는…?”
이회옥의 얼굴을 한없이 쓰다듬던 곽영아는 영웅건이 위로 올라가면서 드러난 흉측한 흉터를 보고 흠칫거렸다.
“그건…”
“이게 왜 이러느냐? 혹시 그때 그일 때문에…?”
태극목장의 참화 때 입은 상처로 생각하였는지 간신히 진정했던 곽영아의 눈에는 또 다시 눈물이 솟았다.
“아니에요. 이건 그때 생긴 게 아니라…”
이회옥의 길고 긴 이야기는 두 시진이 넘어서야 끝났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알아야겠다는 듯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이다.
말 도둑으로 몰려 무림지옥갱에 하옥되는 장면에서는 너무도 분하다는 듯 치를 떨었다.
허나 뛰어난 조련 솜씨를 인정받아 사면 복권되었다는 말에는 춤이라도 추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면서 태극목장 제일목부의 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기뻐하였다.
이후 다시 정의수호대원인 배루난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규환동에 하옥되는 대목에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와중에 태극목장을 말살시킨 원흉인 뇌흔과 방옥두를 처참하게 죽였다는 대목에서는 시원하다는 듯 가슴을 쓸어 내렸다.
눈물을 찍어내면서도 잘 죽였다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원수를 갚아준 것이 고마웠던 것이다.
이후 무림천자성 철마당주가 되었다 하였을 때에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도 태극목장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이 뇌흔과 방옥두만의 소행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전의 이정기는 늘 무림천자성이 정의를 수호하려 노력하는 덕에 무림이 평안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지껄였다.
하여 태극목장이 그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림천자성에 대해 악감정이 없었다. 방옥두와 뇌흔의 과잉충성으로 인하여 발생된 사건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원흉이 철기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안색이 달라졌다. 그녀의 눈빛은 지옥에서 생환한 야차(夜叉 : 인도 고대부터 알려진 반신반귀(牛神半鬼). 원래는 빛처럼 빠른 사람 또는 신으로 받들어지는 사람을 뜻하는 신성한 초자연적 존재로 여겨졌으나 때때로 악귀나찰(惡鬼羅刹)과 동일시됨.)도 무섭다 할 정도로 표독스러워졌다.
그러나 그 눈빛은 금방 사라졌다.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이 보이자 절로 풀어진 것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이 어미가 금방 밥을 지어오마.”
“어머니! 저 배 안 고파요.”
“안 고프긴. 저녁 먹을 시간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금방 밥을 지을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아니에요. 저, 금방 가봐야 해요.”
“아니야, 아무리 급해도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지어오마.”
“어머니…! 안 그래도…”
이회옥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모친이 벌써 전각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고, 곱게 치장한 무언화가 보였기 때문이다.
“너 혹시…, 모두 들었느냐?”
“……!”
곽영아의 물음에 조연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봉목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모녀의 인연을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때때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의모에게 왜 그런가를 물은 바 있었다. 그날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에 눈물짓고 있었던 것이다.
“음! 내 아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고 싶구나. 기다리기 지루할 텐데 네가 내 대신 있어 주겠니?”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고맙구나. 어디 못 가게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예! 걱정 마셔요. 소녀가 꽉 붙들어 놓을게요.”
말을 마친 연화부인은 헌화전에 딸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언제들이 닥칠지 모르는 철기린에게 줄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신선한 재료가 늘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곽영아가 흥분된 마음으로 쌀을 씻을 때 조연희는 전각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궁금증 때문이었다.
“저어! 의모께서 소녀더러… 어머! 공자님은…?”
“낭자는 누구…? 어라! 낭자는…? 조 낭자가 어떻게 여길…?”
조연희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회옥은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화려한 치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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