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부침개가 생각나십니까? 파르스름한 전이 참 맛이 좋았죠.김규환
어머니는 늘 비 오는 날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삭(부엌) 재로 그릇을 닦고 삶아서 소독을 하셨다. 집안일을 마치고 도롱이를 쓰고 산자락에 붙은 두어 평 되는 자그마한 부추 밭에 가셨다. 소쿠리에 부추를 잘라 담고 재를 뿌려 주고 내를 건너 집으로 오신다.
“엄마, 뭐 먹을 것 없능가?”
“떡자반 해 줄거나?”
“잉.”
옆집이나 다른 지역은 석유곤로 위에 프라이팬만 올리면 되었으니 간단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서 부침개 한번 해 먹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소금 단지에 넣어둔 돼지 비계를 한 덩어리 꺼내 오신다. 프라이팬을 가열하면 비계에서 빠져 나오는 기름으로 식용유를 대신했던 시절이다. 뒤뜰 담을 타고 오르는 조선애호박을 하나 따서 꼭지를 매단 채 호박 겉을 잘라 오신다.
까만 프라이팬은 사각이다. 양쪽에 손잡이도 있었다. 널찍하기가 요즘 것 세 장은 너끈할 정도로 드넓다. 대사치를 때나 비가 안 올 때는 밖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했지만 그 날은 나무청을 정리하고 부엌에 돌로 프라이팬을 걸어 불을 땐다. 불을 사를 당시는 세게 때지만 차차 숯에 불이 붙으면 부채로 살살 붙여가며 전을 부친다. 부채질은 내 몫이었다.
위에 올려졌던 돼지 비계가 녹으며 ‘지글지글’ ‘자르르’ 흘러내리자 어머니는 호박 꽁댕이를 둘둘 돌려 기름이 고루 퍼지게 하고 큼지막하게 썬 부추와 호박을 채 썰고 매운 풋고추를 잘게 썰어 씨까지 넣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푹 퍼서 올린다.
‘차~’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튀자 국자로 한번 펴주고 주걱으로 꾹꾹 눌러 고루 펴주니 콧구멍이 벌렁벌렁 아우성이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내음이 집집마다 솔솔 났던 그날 난 옆에서 어머니를 거들며 언제 저걸 한점 떼어 먹어 보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눈을 한번 똑바로 쳐다봐도 아직 눈짓이 없는 걸 보니 조금 더 참아야 하나 보다. 나는 비만 오면 고기 먹고 싶어 부황이 날 지경이었다. 언제 먹어 보나 애가 탄다.
“엄마….”
“언넝 주막에 가서 아부지 모시고 와라.”
“한 점 뗘먹고 가면 안 되끄라우?”
“핑 댕겨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멀리 출타하시기 전에는 아버지가 먼저 한 점이라도 드시게 하셨던 어머니였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뛰어서 동네 주막에 가보니 아버지께서는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오시는 중이었다.
“지가 들고 가끄라우?”
“됐다.”
뛰어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연기가 자욱하게 감나무 배나무 사이에 걸려 있었다.
“엄마, 갔다왔어라우.”
“닉 아부지는?”
“곧 오실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