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뗘먹고 가면 안 되끄라우?”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61]비 오는 날 돼지기름으로 부쳐준 부침개

등록 2004.07.09 15:31수정 2004.07.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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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초가집에서 비오는 날 전을 부치시는 어머니. 아직도 그 생생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돌 위에 사각 후라이팬을 걸고 호박꽁댕이로 돼지기름을 고루 펴서 숯불로 부침개를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 식용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들 그렇게 했답니다. 참 보드라웠는데...
우리 초가집에서 비오는 날 전을 부치시는 어머니. 아직도 그 생생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돌 위에 사각 후라이팬을 걸고 호박꽁댕이로 돼지기름을 고루 펴서 숯불로 부침개를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 식용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들 그렇게 했답니다. 참 보드라웠는데...김용철
비가 오면 초가집 처마 밑에 짚시랑물(낙숫물의 사투리) "똑! 똑! 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맑아진다. 마루께로 나가 엎드려서 ‘또르르, 또르르’ 동그랗게 말렸다가 ‘팅’하며 이내 사라지는 물방울을 보면 더욱 눈도 즐겁다.


끈적끈적한 이불을 말릴 겸 아궁이에 저녁 때 지폈던 양의 절반만큼만 군불을 때고 들어 오니 덥다기보다 몸이 상쾌했다. 낮에 밥을 데워서 먹었기에 미지근한 방이 기분 좋게 따끈해졌다. 아랫목에 누워서 파리가 천장에 몇 마리 붙어 있는지 세어 보는 재미에 빠지다가 스르르 잠에 빠진 오후. 깨어 보면 얼굴에 파리똥을 지지리도 많이 갈겨 놓았다.

점심을 먹고 자도 여름은 길기만 하다. 아직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당은 질컥인다. 뭘 먹을까? 우리 동네에선 지짐을 ‘떡자반’이라 했다. 부침개를 부쳐 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장마철이라 동네 우물에서 길러온 마실 물도 흙탕물에 가까운 맑지 않은 물이라 손이 가질 않는다.

“인났냐?”
“응.”

어린 나는 비 올 때면 꼴만 한번 베어 놓고 맘껏 자도 되었다. 여름철엔 쇠죽 쑤는 일도 쉽다. 지푸라기를 주지 않기에 풀만 북북 썰어 넣고 보리 처질거리를 넣고 푹푹 끓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코가 늘어져라 자 보는 것이다.

“엄마 근디 어디 갔다 왔능가?”
“솔(부추) 밭에 댕겨 왔다.”


이런 부침개가 생각나십니까? 파르스름한 전이 참 맛이 좋았죠.
이런 부침개가 생각나십니까? 파르스름한 전이 참 맛이 좋았죠.김규환
어머니는 늘 비 오는 날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삭(부엌) 재로 그릇을 닦고 삶아서 소독을 하셨다. 집안일을 마치고 도롱이를 쓰고 산자락에 붙은 두어 평 되는 자그마한 부추 밭에 가셨다. 소쿠리에 부추를 잘라 담고 재를 뿌려 주고 내를 건너 집으로 오신다.

“엄마, 뭐 먹을 것 없능가?”
“떡자반 해 줄거나?”
“잉.”


옆집이나 다른 지역은 석유곤로 위에 프라이팬만 올리면 되었으니 간단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서 부침개 한번 해 먹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소금 단지에 넣어둔 돼지 비계를 한 덩어리 꺼내 오신다. 프라이팬을 가열하면 비계에서 빠져 나오는 기름으로 식용유를 대신했던 시절이다. 뒤뜰 담을 타고 오르는 조선애호박을 하나 따서 꼭지를 매단 채 호박 겉을 잘라 오신다.

까만 프라이팬은 사각이다. 양쪽에 손잡이도 있었다. 널찍하기가 요즘 것 세 장은 너끈할 정도로 드넓다. 대사치를 때나 비가 안 올 때는 밖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했지만 그 날은 나무청을 정리하고 부엌에 돌로 프라이팬을 걸어 불을 땐다. 불을 사를 당시는 세게 때지만 차차 숯에 불이 붙으면 부채로 살살 붙여가며 전을 부친다. 부채질은 내 몫이었다.

위에 올려졌던 돼지 비계가 녹으며 ‘지글지글’ ‘자르르’ 흘러내리자 어머니는 호박 꽁댕이를 둘둘 돌려 기름이 고루 퍼지게 하고 큼지막하게 썬 부추와 호박을 채 썰고 매운 풋고추를 잘게 썰어 씨까지 넣은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푹 퍼서 올린다.

‘차~’ 하는 소리와 함께 기름이 튀자 국자로 한번 펴주고 주걱으로 꾹꾹 눌러 고루 펴주니 콧구멍이 벌렁벌렁 아우성이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내음이 집집마다 솔솔 났던 그날 난 옆에서 어머니를 거들며 언제 저걸 한점 떼어 먹어 보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눈을 한번 똑바로 쳐다봐도 아직 눈짓이 없는 걸 보니 조금 더 참아야 하나 보다. 나는 비만 오면 고기 먹고 싶어 부황이 날 지경이었다. 언제 먹어 보나 애가 탄다.

“엄마….”
“언넝 주막에 가서 아부지 모시고 와라.”
“한 점 뗘먹고 가면 안 되끄라우?”
“핑 댕겨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멀리 출타하시기 전에는 아버지가 먼저 한 점이라도 드시게 하셨던 어머니였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뛰어서 동네 주막에 가보니 아버지께서는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오시는 중이었다.

“지가 들고 가끄라우?”
“됐다.”

뛰어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연기가 자욱하게 감나무 배나무 사이에 걸려 있었다.

“엄마, 갔다왔어라우.”
“닉 아부지는?”
“곧 오실 것이요.”

보통 날이 맑거나 잔칫집에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주머니 여럿이서 함께 수백장을 부쳤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 날이 맑거나 잔칫집에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주머니 여럿이서 함께 수백장을 부쳤던 기억이 납니다.김용철
벌써 두 장은 옆에다 두고 세 장째 부치고 계셨다. 밀가루는 누르스름하다. 부추는 파르르 골고루 퍼지고 호박 채는 노랗게 박혀있다. 풋고추도 설컹설컹 익었다.

그 사이 동생은 몇 점 얻어 먹고는 알딸딸한지 맵다고 물을 찾는다. 한 장을 작은 채반에 툭 올려 아버지 드시라고 마루에 올려 놓고 나는 어머니 옆에서 젓가락질을 하기로 했다. 큼직한 전을 손바닥만하게 떼어 둘둘 말아서 한입 가득 넣었다.

“후후.”
“후후. 뜨거!”

뭐랄까. 보드랍다 할까. 야들야들하다고 할까. 부드러운 기름에 부추, 호박, 밀가루가 아삭아삭 씹혔다. 밀가루가 입 속에 엉겨 질컥거리지도 않고 사르르 녹아 목구멍 속으로 흘러내렸다. 오로지 씹히는 건 풋고추뿐이다. 간도 맞아 아무 것도 찍지 않아도 좋았다.

한 장을 날름 먹어치우고 손이 또 부지런히 움직였다. 설강에 덮어둔 고추장을 가져와 찍어 먹으니 더 맛이 났다. 석장을 먹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루로 나가 보니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막걸리를 들고 계셨다. 그토록 행복한 날이었다.

녹두빈대떡도 생각이 나는 철입니다. 먹을 때만 뜨겁지 먹고나면 요즘철에 몸이 오히려 시원해진다죠? 가까운 시장으로 달려가십시오.
녹두빈대떡도 생각이 나는 철입니다. 먹을 때만 뜨겁지 먹고나면 요즘철에 몸이 오히려 시원해진다죠? 가까운 시장으로 달려가십시오.김규환
나는 식용유를 무척 싫어한다. 기름으로 튀기거나 볶은 건 입에 맞지 않아 아예 먹지 않는다. 먹어도 만든 사람 정성을 물리기 두려워 딱 한번 먹어 보고 만다. 국물에 길들여진 때문인가. 어머니 그 손맛을 못 잊어서인가.

그런데 비 오는 날은 상황이 다르다. 자장면도 비 오는 날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만 오면 고무줄처럼 당기는 게 있다. 바로 기름기다. 삼겹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비 오는 날 기름기가 땡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비 올 때 먹는 기름진 음식은 왜 그리 맛있는가?

비 오는 날 먹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따끈한 수제비 국물? 나에겐 별로다. 삼겹살 기름기 빠지도록 지글지글 구워 쌈에 소주 한잔 마셔도 좋으리라. 해물파전 도톰하게 부쳐 막걸리 한 사발 마셔도 어울리지. 또 없을까?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미숫가루 한 그릇 달짝지근하게 타서 얼음 동동 띄워 후루룩 마셔도 그만이다. 후텁지근한 날 몸과 맘이 축 늘어지는데 조선애호박 잘게 썰어 빈대떡 부쳐 먹을까. 아니지 솔(부추)을 듬뿍 넣고 전을 부치자. 배 깔고 화투 패나 한번 돌렸으면 좋겠구만…. 감자나 삶아 껍질 벗겨가며 추억으로 가볼까. 보리밥에 시원한 열무김치 넣고 둘둘 비벼도 괜찮겠다.

어머니 계실 때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 자주 있었는데 제가 중2 가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뒤로 그 정겹던 일은 사라졌습니다.
어머니 계실 때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 자주 있었는데 제가 중2 가을에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뒤로 그 정겹던 일은 사라졌습니다.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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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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