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3

멈춰버린 그림자

등록 2004.07.15 08:57수정 2004.07.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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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약을 너무 많이 탄 거 아니야? 여기서 죽어 버리면 곤란하다고."

머리가 부셔져 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끔적이는 옆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끔적이는 손발이 어쩐지 부자유스러운 느낌이 들어 힘을 약간 주어보았다. 끔적이는 꽁꽁 묶여 있었다.


"숨쉬는 것을 확인하고 있으니 여기서 송장 치진 않을 거요. 무슨 남정네가 그리 소심하시오."

끔적이는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알아볼 양으로 잠이 든 척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계집도 잡았고 사내놈도 잡았으니 돈이나 받고 후딱 여길 떠야되지 않겠소?"

그 때 끔적이의 귀에 문여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들, 돈은 받았네만."


"받았는데 뭐요?"

"절반만 받았다네. 나머지는 이 놈들을 사대문 밖으로 옮겨와야 준다는구먼."


"뭐요?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무슨 수로 이 사람들을 사대문 밖으로 데리고 나간단 말이오?"

여자의 소리가 앙칼지게 울려 퍼졌다.

"일을 도울 사람 둘을 이리로 보낸다 하니 기다리자고."

사당패들은 무료하게 잡담을 나누며 기다렸고 끔적이는 묶인 것을 풀기 위해 손을 조심스레 움직여 보았다.

"어림없소.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기다리시오."

눈치를 채었는지 여인의 말과 함께 앞을 볼 수 없도록 끔적이의 얼굴에 무엇인가가 씌워졌다.

-------

"이보게 백포교!"

핼쑥한 얼굴로 퇴청하는 백위길의 앞을 별감 강석배가 막아섰다.

"무슨 일이오? 난 바쁘다오."

백위길은 달갑지 않다는 듯 강석배를 지나쳐 가려 했다. 강석배는 백위길의 팔을 단단히 틀어잡았다.

"이보게, 내 말 좀 들어보게. 애향이에 관한 일일세."

백위길은 깜짝 놀라 강석배를 쳐다보았다.

"실은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애향이를 다른 곳으로 보냈네. 한양은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피해 있으라고 언질을 줬었는데 내 말을 안 듣고 한양으로 왔다가 행방이 묘연해졌다네."

백위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누가 애향이를 해하려 했다는 말입니까? 그 자가 누군지 요절을 낼 입입니다."

강석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만 자네가 애향이를 구하려면 한가지 일을 좀 해줘야겠네. 지금 당장 자네 포장(捕將)을 찾아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으니 애향이를 살려달라 애원하게."

백위길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오?"

"혹시 자네 포장에게서 오월이와의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백위길은 박춘호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오월이를 양반의 첩으로 들여앉힌 일을 기억해내었다.

"그 일을 박포장에게 상기시키며 애원하면 될 걸세. 한시가 급하니 어서 서두르게!"

백위길은 강석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분명 강석배도 애향이를 아끼고 있었고 어찌 보면 그에게 있어 백위길은 보기 싫은 연적(戀敵)일런지도 몰랐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나...... 그렇네, 나도 애향이를 좋아하네. 이런다고 애향이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아네. 허나 애향이가 죽어 가는 모양도 볼 수 없네."

"그런데 어찌해서 우리 포장이 이 일을 안단 말이오?"

강석배는 처량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자네는 이미 우리 제의를 여러 번 거절했네. 괜히 여러 것을 따져 생각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급한 일이나 해결하게나."

백위길은 강석배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해진 강석배는 백위길에게 소리쳤다.

"이 사람! 어서 서두르게! 내가 괜히 보기 싫은 자네를 잡고 이런 말을 하는 줄 아는가! 서두르지 않으면 애향이가 죽는단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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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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