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에는 어떤 술이 어울릴까?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63]막걸리, 인동주, 와인, 소곡주, 복분자주

등록 2004.07.16 13:44수정 2004.07.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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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산 막걸리에 진달래 꽃잎과 민들레를 띄워 봤던 올 봄.
백아산 막걸리에 진달래 꽃잎과 민들레를 띄워 봤던 올 봄.김규환
어차피 먹는 술 즐겁게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기만 할까 보냐. 기분 좋게 먹으면 오히려 긴장도 풀리고 변화를 줘 활력을 주니 간경화 걸릴 염려도 없다. 우리는 보통 간경변(肝硬變)은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걸로 알고 있다.


의사 말을 들어 보면 실제 간경화는 마음의 응어리가 쌓였는데도 풀지 못했거나 백방의 노력을 기울여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 생긴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말짱했던 젊은 사람이 픽픽 쓰러져 작별 인사 한번 못하고 영영 헤어지는 일을 종종 접한다.

건전한 술 문화를 실천해 보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사람이 술을 먹다가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고 낮술은 제 어미 애비도 몰라 본다고 한다. 얼마나 고주망태가 되었으면 그럴까. 2차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리는 길어지고 3, 4차로 이어지면 다음날은 아침부터 삐걱이고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아무리 즐거워도 혼자 먹지 말고 세상사 힘들어도 반드시 친구를 불러 함께 마시면 큰 탈은 없다. 또한 같이 어울리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본인의 불건전한 술 문화가 가정 불화의 주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건강 상태에만 있지 않다. 첫 단추도 중요하고 인내도 필요하다. 아쉬운 자리에서 파할 줄 아는 절제력도 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딸기의 하나로 담근 복분자주
딸기의 하나로 담근 복분자주김규환
오만가지 술이 있다. 소주, 막걸리, 맥주 등 서민 주(酒)에 전통 술과 와인에서 고급 양주까지 다 들먹이려면 하룻밤으로 부족할 것이다. 기름진 안주에 독주를 마시고 가벼이 한잔 걸치고 들어가는 맥주,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요즘엔 부부가 포도주로 금실을 좋게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술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홍어는 무슨 술과 먹으면 어울릴까? 홍어를 먹으면 입 천장이 벗겨지거나 몇 점 먹기 전에 화들짝 놀라 멀리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때 홍어와 궁합이 딱 맞는 술을 한잔 부어 주면 그만인데 우린 마땅한 걸 아직 찾지 못했다. 그냥 막걸리나 마시는 것이 다다.


막걸리만 먹으랄 수도 없고 난관이다. 좋은 막걸리면 모르겠는데 향토주(鄕土酒) 또는 특산품이는 미명하에 인삼, 더덕, 잣 등 향(香)을 첨가하는 것까지는 봐 주겠다. 하지만 본래 인삼, 더덕, 잣보다 향이 더 진해 술맛을 앗아감은 물론 안주 맛까지 버리곤 한다.

더군다나 요즘 막걸리는 효소를 다 죽여 놓아 예전 그 맛을 찾기 쉽지 않을 뿐더러 기본도 없는 술이 전국을 넘나들며 달짝지근하게 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에 방부제를 듬뿍 넣었으니 근 보름간 밖에 둬도 상하지 않는다. 이런 술은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그 다음날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지만 먹을 당시부터 기분을 잡치기 때문이다.


삭힌 흑산도 홍어 한 접시
삭힌 흑산도 홍어 한 접시김규환
“어디 좋은 막걸리 없수?” 가양주(家釀酒)에 가까운 막걸리가 있다. 지방에서 몇 번 모임을 치르던 중 광주에 사는 회원이 목포까지 5리터짜리 막걸리 통 두개를 들고 왔다. 상표랄 것도 없이 ‘백아산生 동동주’라고 써있는 게 아닌가.

백아산이면 고향 마을 앞산이고 ‘생(生)’자 까지 붙었으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평소 내가 먹는 술을 서울에서 내려온 우리에게 대접하기 위해 가져온 술이라니! 광주 전남 상수원인 동복댐과 주암댐이 있는 화순의 최상류 골짜기가 백아산이다. 유기농 불미나리와 인진쑥 즙 생산지가 바로 그곳이다.

우리 나라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지역 맑은 물에 주인이 15년 전부터 효모를 직접 배양하고 좋은 누룩으로 만들어 살균 처리하지 않은 효모와 전통이 살아 있는 술 백아산 막걸리. 술맛 볼 줄 아는 회원들은 야외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때 나에게 부탁을 하곤 한다. 도매가로 택배를 받아 먹는다.

차갑게 해서 플라스틱 잔을 반납하고 양재기나 스테인레스 국그릇에 콸콸 가득 따라 쭈욱 한잔 마시면 먼저 질겅질겅 씹었던 홍어 향에 누룩이 만나 감미로운 조화를 부린다. 수염이 젖으면 스윽 닦아주면 그마저 안주지.

홍어회나 홍어삼합, 무침, 홍어 애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홍어탕과 홍어앳국은 막걸리도 좋지만 소주 한잔 턱 털어 넣어야 배부르지 않고 소주 특유의 맛과 어울려 진하게 울려 퍼진다. 여기에 목포 일대 명물이 된 인동주(인동초 줄기와 잎을 말려 조금 첨가한 술)의 쌉쌀함을 맛보라.

피 같은 와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피 같은 와인을 따르고 있습니다.김규환
요즘 잘 나간다는 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굳이 보르도나 보졸레 누보, 샤또, 메독 등 프랑스산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내나 남편을 하루 소믈리에로 고용하여 집에서 즐기자. 단지 다소 떫은 맛이 강한 화이트보다는 레드와 로제를 권하고 싶다. 두 발효 식품의 만남과 그 빛깔에 넋이 나간다. 만원 이하 포도주도 괜찮다.

여기에 우리 전통 명주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름 하여 ‘앉은뱅이술’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소곡주(素麯酎)다. 백제 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술이다. 금강 하구 서천군 한산면(한산 모시와 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 갈대밭 장면 촬영지로 유명하다)의 퇴적층에서 생산된 멥쌀로 밑술을 담그고 다시 저온에서 120일간 찹쌀밥을 쪄서 숙성하여 증류한 술이다.

아! 한산 소곡주
아! 한산 소곡주김규환
18도짜리도 좋지만 특히 칼바람 부는 추운 한겨울에는 푹 삭힌 김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홍어찜에 43%짜리 ‘불소곡주’를 한잔 들이키면 찜이나 탕을 처음 먹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다. 홍어 원래 맛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입안에 알코올이 확 달아나는 휘발의 기쁨이랄까. 혀에 남는 뒤끝마저도 보드랍다.

위에서 나는 백아산 막걸리와 목포인동 막걸리, 와인과 한산소곡주를 말하였다. 본디 술은 물맛이라고 하지만 원형에 가까운 전통을 지녔다는 점에서 똑같다. 또한 발효로 만들어진 술이다. 여기에 홍어까지 곁들여졌으니 ‘백수광부’의 처도 함께 할 것이다. 복분자술도 먹어 볼거나.

전주 삼천동, 효자동 일대에 있는 맑은 술은 거의 투명합니다. 근데 거기선 이걸 동동주라고 부릅니다.
전주 삼천동, 효자동 일대에 있는 맑은 술은 거의 투명합니다. 근데 거기선 이걸 동동주라고 부릅니다.김규환
목포 인동주마을에서 먹었던 시원한 느낌의 인동주
목포 인동주마을에서 먹었던 시원한 느낌의 인동주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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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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