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세례, 물세례 관객이 즐겁다

[공연리뷰] <관객모독>(극단 76단, 피터 한트케 작, 기국서 연출)

등록 2004.07.20 15:58수정 2004.07.2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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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잔혹'의 의미가 거세되어 '황당'의 의미로 왜곡된 채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 76단이 공연하고 있는 <관객모독>은 엽기적이다.

배우들은 극적 사건을 연기하지 않고 시종일관 '새로운 연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듣거나 보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배우들의 질문에 답하고, 배우들이 쏟아내는 욕을 듣고, 물세례를 받으면서 극의 일부가 된다. 기승전결의 잘 짜인 극적 구도나 극적 상황을 예상한 관객이라면 <관객모독>은 충분히 엽기적이다.


관객에게 욕을 하고 물을 뿌리는 행동이 여느 공연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했다면 관객은 당황하여 심하게 항의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탓인지 <관객모독>의 관객은 은근히 그 상황을 즐긴다. 다른 공연에서처럼 환하게 조명이 켜진 무대의 상황을 어두운 객석에 앉아 유리한 상황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유도에 따라 극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예를 들면 '극중 극' 장면에서 관객의 요구에 따라 배우가 자유롭게 연기하는 즉흥극의 모습이 그렇다. 반대로 배우의 요청에 따라 관객이 자리에 일어나 소리도 지르고 욕을 하는 것 또한 관객이 극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다. 그렇기 때문에 객석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밝다.

무대는 사각의 낮은 단 위에 배우들이 앉는 의자 네 개가 전부다. 연극적 상황이 연출되지 않고 배우의 쏟아지는 대사만을 고려해 보았을 때 무대의 모양이나 소도구의 배치와 사용은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극 중 대사처럼 무대는 어디든 상관없다. 맥주집이어도, 시장 통 이어도, 광장이나 학교여도 상관없다. 모욕을 당하면서 극에 참여할 수 있는 관객만 있다면 말이다.

<관객모독>의 핵심은 '언어'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한다. 대화, 연설, 스포츠 중계, 사투리, 외국어, 랩, 감정을 만들어 내는 연극적 관습의 여러 화법을 동원하여 배우, 관객, 무대가 해체된 이 새로운 연극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배우의 대사는 강세가 변화되고, 휴지를 변화시키면서 공연 내내 변주된다. 이는 언어의 본래의 가치인 의미의 전달을 혼란시켜 관객으로 하여금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자각시키기 위함이다.


<관객모독>은 독일의 극작가 피터 한트케의 작품이다. 1966년, 25세 젊은 작가의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때 '언어극'이자 기존 연극형태에 반하는 '반연극'으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는 1978년 기국서의 연출로 극단 76단에 의해 초연되었고 이후 이 작품은 극단 76단과 연출가 기국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초연된 78년은 유신 말기의 '대통령 긴급조치 시대'로 관객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쏟아지는 이 작품이 이 때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지금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올 초 기획 공연된 '연극열전' <관객모독>의 연장선에 있다. 정재진, 기주봉 등 초연 배우들이 공연했던 전작과 달리 모든 배우들이 젊은 배우들로 바뀌었다. '연극열전'의 <관객모독>을 본 관객들도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싱싱한 작품을 전작과 비교해 가며 감상할 수 있다. 또 작품 말미에 쏟아지는 욕은 그때, 그때의 사회 상황과 맞물려 내용이 바뀌는데 이것도 전작과 비교해서 보면 보는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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