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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이 벌판에서 지시를 내린 날로부터 한달째가 될 때 강 장수는 탐색인원을 뽑아 에리두로 떠났다. 은 장수, 두두, 천체선인이었다. 천체선인은 천부경에 정통해 별의 운행, 달의 형태, 해의 색깔 등으로 앞으로의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있고, 그래서 그 지형과 천체에 대한 사전답사를 위해 함께 동행한 것이었다.
닷새 뒤 그들 일행이 돌아왔다. 에인은 그들이 성문 가까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전 참모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각자 자기 일을 하던 참모들이 전달을 받은 즉시 모두 일손을 놓고 바쁘게 집무실에 모여들었다. 그새 집무실은 긴 탁자에 의자들이 놓여져 참모들이 둘러앉기만 하면 곧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마침내 모두 자리를 채웠다. 에인이 방금 도착한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천체선인부터 보고를 하시오. 그래, 그곳 날씨는 여기보다 좋던가요?"
"예, 우리가 간 뒤로 날씨는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여행자에게 날씨가 좋았다면 첫 번째의 행운은 가져온 셈이구려."
"예, 하지만 그곳 지형은 이곳과 사뭇 달랐습니다. 첫째로 에리두는 바다를 낀데다 내륙으론 큰 호수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안개가 잦다는 증거였고 실재로 또 그러했습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끼는 일이 많았습니다."
두두가 보완했다. 한번 부상을 당한 뒤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녀석은 말하는 태도도 전과 달랐다.
"안개는 은폐에 도움이 될 것이오. 그럼 가까운 곳에 진지를 구축할 만한 곳은 있던가요?"
에인의 질문에 천체 선인이 대답했다.
"강은 바다가 가까울수록 사구나 갈대밭이 많았고 또 그런 지역일수록 인적이 드물어 임시주둔지는 어디든 손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고하셨소. 그럼 이제 강 장수 얘기를 들어봅시다."
에인은 어서 빨리 전문가의 이야기부터 듣고 싶어 그렇게 강 장수를 지목했다. 하지만 그의 보고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다.
"우선 에리두 성은 성곽이 높은데다 해자까지 있었습니다. 해자가 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성곽이 그처럼 높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가 준비했던 사다리는 짧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야 다시 개조하면 되지 않습니까?"
"새로 개조한다고 해도 성벽을 타고 넘기엔 수월치 않아보였습니다. 왜냐하면 해자 역시 폭이 넓어 사다리를 건다 해도 성벽 위까지는 닿을 수 없고, 또 많은 양의 사다리는 운반에도 번거로워 보행속도를 지체시킬 수 있습니다."
"사다리는 그렇다 치고 그럼 성안은?"
"성 안에는 어떤 강적도 막아낼 수 있는 정예군사 수백 명이 항상 상주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강적이라도 강 장수를 당할 자야 없겠지요."
에인은 마뜩치 않아 그렇게 말했던 것인데 고지식한 장수는 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장군님, 자기 자리에서 막는 것과 뜨내기가 치고 드는 데는 그 강적의 힘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강 장수, 왜 그렇게 맥 빠지는 소리를 하오?"
에인이 마침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강 장수는 그의 눈을 더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님, 제 말은 치밀한 작전이 우선하지 않으면 박힌 돌을 빼내기가 수월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디 가능한 작전부터 말씀해보시구려."
그러자 강 장수는 다른 참모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대강의 상황을 알려드렸으니 의견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말해보시오."
은 장수가 나섰다.
"제가 보기엔 군사를 밖으로 유인해서 치는 방법밖에 없는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예군사는 밖에서 치고 보병은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작전 외에는 그 성을 함락시키기가 힘들 것 같았습니다."
"한데 유인한다고 밖으로 얼른 나와 줄까요?"
책임선인이 물었다.
"전쟁을 미리 선포하는 방법도 있지요. 그러면 그들은 성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거나 혹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밖으로 나와서 응전할지도 모르지요."
역시 은 장수가 대답했다.
"그것도 한 수단이긴 하지만 적절한 방법은 아니오."
강 장수가 나섰다. 그러자 에인이 다시 강 장수에게 물었다.
"대충 의견들을 들었으니 이제 강 장수의 생각을 말해보시구려."
"먼저 성내에 첩자를 심어서 정확한 상황파악을 한 뒤 작전을 세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강 장수의 이번 의견에도 에인은 회의적이었다.
"그 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누가, 어떻게 첩자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오?"
"두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 밖의 목부가 신선한 양젖을 공급하기 위해 매일 아침 성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성내 사람들은 외국 과일을 선호해서 그 과일을 실은 외국 배가 들어올 때는 과일을 운반하는 마차들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그냥 성문을 통과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강 장수 말은 목부나, 과일 운반 꾼이 되어서 안으로 침투한다는 말인데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느닷없이 두두가 나섰다. 모두 두두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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